커피, 숭늉, 두부 등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가열하여 만들어진 것이고 가열하여 만들어진 향은 금방 사라진다는 것이다. 커피전문점에서 커피를 볶거나 원두를 추출한 때의 향은 대단하다. 제과점에서 빵을 굽는 냄새도 대단하다. 그런데 이런 것은 갓 만들었을 때만 유효하고 시간이 지나면 금방 사라진다.

왜? 로스팅 향의 결정적인 물질은 질소나 황을 함유한 물질이 많고 이것은 후각 수용체와 결합력이 매우 강하다. 정말 미미한 향으로 그렇게 강력한 느낌을 주는 것이다. 따라서 ppb 수준으로 이들 물질이 조금만 변화되어도 우리는 전혀 다른 향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래서 숭늉은 상품화하기 힘든 것이다. 가장 고소한 느낌은 사라지고 쉰 듯한 느낌이나, 아주 약해진 고소함만 남는다. 두부도 끓여서 막 만들 때는 맛이 있다. 그러나 이 맛도 로스팅 향이 주는 맛이라 금방 사라진다.

커피의 전형적인 숙성 곡선(신선한 품질 유지기간) 

 
자료 : 더 알고 싶은 커피학, 히로세 유키오

일부 제품이 숙성하면 맛이 좋아지는 이유는
보통은 신선한 것이 맛있는데 묵은지, 된장, 와인, 위스키 등은 발효가 끝난 다음에도 꽤 오래 숙성이 되어야 맛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된장은 3년이 돼야 하고 위스키는 10년을 넘어야 제 대접을 받기도 한다. 모든 식품이 오래 숙성하면 맛이 좋아질까? 아니다. 식품은 오래 되면 나빠지고, 좋아지는 경우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경우에만 가능하다.

식품은 오래 두면 변하기 마련인데 제대로 통제하지 않으면 급격히 나쁜 쪽으로 변한다. 밀폐가 부족하면 공기 중의 산소에 노출되면서 산패가 심해지고, 수분이 증발해서 말라버리기도 하며, 휘발성 성분이 증발해서 향기가 사라져 버리기도 한다. 심지어 원치 않는 미생물에 오염되어 이취나 부패가 일어날 수 있다. 그러면 맛이 좋아지기는커녕 식품의 가치를 완전히 잃어버리게 된다.

그래서 숙성하면 맛이 좋아지는 식품도 모든 조건을 제대로 갖추어질 때만 가능한 것이지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다. 적당한 용기에 담아 적절한 온도와 환경에서 보관해야 한다. 온도가 너무 높거나 자외선 같은 빛이 들어가면 식품성분이 분해되어 원하는 성분은 감소하고 원치 않는 성분은 증가할 수 있다. 그래서 젓갈은 토굴에서 숙성시키기도 한다.

그런데 숙성하면 맛이 좋아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숙성하는 기간 동안 향기성분이 늘어날까? 어떤 성분은 늘어나고 어떤 성분은 줄어드는데 전체적으로는 감소한다. 와인 숙성과정에서 아로마 손실이 일어나면서 숙성된 향을 얻는 것이다. 그래서 아무 포도주나 숙성하지 않고 적합한 것을 골라 숙성을 한다. 타닌 성분이 많고, 품종 특성이 약한 포도주가 적당한 것이다. 그리고 오크통에서 담가 오크 나무의 향으로 아로마 손실을 보상하는 것이다.

오크통에서 나오는 독특한 향은 사용할수록 감소하기 때문에 1~3번만 사용 가능하다. 그래서 굳이 번잡한 오크통 대신에 스테인리스 탱크에 오크 칩을 넣어도 같은 효과가 나오는 것이다. 오크 나무의 향기성분이 천천히 녹아 나오면서 알코올과 반응하여 더욱 품위 있는 향으로 변하는 것이다.

결국 숙성은 발효과정에서 생기는 지나치게 자극적인 저분자 물질을 줄이는 과정이기도 하다. 양주는 아주 극한까지 분해가 일어난 상태이다. 향기성분은 분자량이 17~300까지의 물질로 분자량이 적은 것은 휘발성이 강하여 강한 첫인상을 주지만 지나치게 자극적이다. 분자량이 클수록 휘발성이 줄어들어 감지되는 향이 줄어들고 중간크기의 분자가 대체로 가장 우아한 향취를 지닌다.

술이 숙성되면 저분자의 반응성 분자들이 다른 분자와 결합하여 자극성이 줄고 온화한 풍미의 분자로 변환된다. 지방족 알데하이드가 알코올과 반응하면 알코올의 자극 취가 감소하는 것처럼 특히 케톤과 알데하이드류의 분자가 이런 작용을 한다. 이런 반응은 알코올의 함량이 높을수록 잘 일어난다.

숙성 중 가장 크게 변하는 맛은 적포도주에서 쓴맛과 떫은맛의 감소이다. 페놀 화합물은 색소와 타닌성 물질을 구성하면서 포도의 풍미와 바디감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들은 레드 와인과 화이트 와인의 향 차이를 설명하기도 한다. 그런데 과도한 타닌은 쓴맛이 강해서 부정적인 영향이 커진다. 타닌은 소량의 산소가 있으면 아세트알데하이드의 도움으로 안토사이아닌과 타닌의 중합반응을 일으킨다. 타닌은 중간크기의 애매한 용해도를 가질 때 쓴맛이 크며, 중합반응으로 분자가 커지면 오히려 혀의 미각 수용체에 반응하지 못하여 쓴맛이 사라진다. 맛도 부드러워지는 것이다.

오래 숙성해서 좋은 것은 이처럼 나름 뚜렷한 이유가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식품은 이러한 과정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이러한 숙성 조건을 갖춘 것도 아니다. 막연히 숙성을 오래할수록 좋아질 것을 기대하는 것은 부질없는 것이다.

산소에 노출된 샤르도네 포도주의 품질 변화

 
자료 : 과실주 개론, 김영준 외

 
최낙언 시아스 이사

최낙언 시아스 이사
서울대학교와 대학원에서 식품공학을 전공했으며, 1988년 12월 제과회사에 입사해 기초연구팀과 아이스크림 개발팀에서 근무했다. 2000년부터는 향료회사에서 소재 및 향료의 응용기술에 관해 연구했다. 저서로는 ‘불량지식이 내 몸을 망친다’, ‘당신이 몰랐던 식품의 비밀 33가지’, ‘Flavor, 맛이란 무엇인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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