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구
제주대 해양의생명과학부
석좌교수
입하(立夏)의 절기도 지나고 도시에선 여름에 들어섰다. 연둣빛 잎사귀가 짙푸른 색깔로 채색되어 가며 한낮의 더위는 한 여름으로 치닫고 있다. 그러나 설악산의 5부 능선 이상에선 진달래 등 봄꽃이 피어나고 연한 연둣빛 잎새가 얼굴을 내밀고 있다. 정상 부근에는 나뭇가지에서 아직 잎사귀를 피우지 않은 나무도 있고 애타게 봄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 산행은 장수대에서 시작하였다. 이른 아침 도착하여 숲속으로 들어섰다. 맑은 바람이 얼굴에 스친다. 설악으로 들어서는 발걸음은 언제나 가볍다. 수많은 나무계단을 따라 30여 분 오르면 대승폭포에 이른다. 우리나라 3대 폭포 중의 하나라 하지만 떨어지는 물의 양이 적어 그렇게 매력적이진 않다. 그러나 사방을 둘러보면 짙푸른 숲이 물결쳐 오고 어디선지 불어온 산바람이 나의 친구가 된다.

나의 친구 산바람을 맞으며 안산(1430.4m)을 향하여 가파른 오르막 산길을 올랐다. 5부 능선 쯤 올라섰을 때 올라온 산기슭을 내려다본다. 산기슭엔 여름철의 짙푸른 잎사귀가 바람에 춤을 추지만 여기서부턴 연둣빛 잎새의 숲을 이루고 있었다. 연두 빛은 아기의 손처럼 부드럽다. 이제야 봄날을 맞이하고 있는 숲을 따라서 안산에 올라섰다. 정상부근엔 아직도 회색빛 나뭇가지에 잎사귀를 내밀지 않은 나무도 있었고 손톱처럼 아주 적은 잎새를 막 내밀기 시작한 나뭇가지도 있었다.

 
정상에서 봄날의 숲을 만나고 하산을 시작하였다. 십이선녀탕 계곡을 향하여 내려갔다. 계곡의 물소리가 들리면서 시원한 산행을 할 수 있었다. 두문폭포와 복숭아탕의 시원한 물줄기를 만났다. 굵은 땀방울을 흘린 산객에게 최고의 선물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시원하게 흐르는 물줄기 옆 너른 반석에 앉아 「봄날의 사랑 이야기」란 시를 읊어본다.

사랑은 장미처럼
활활 불타지 않아도 좋으리

사랑은 목련처럼
눈부시지 않아도 좋으리

우리의 사랑은 장미처럼
봄의 들판의 제비꽃처럼
사람들의 눈에 안 띄게
작고 예쁘기만 해도 좋으리

우리의 사랑은 그저
수줍은 새색시인 듯
산 속 외딴 곳에
다소곳이 피어 있는
연분홍 진달래꽃
같기만 좋으리

이 세상 아무도 모르게
우리 둘만의 맘속에서만
살금살금 자라나는
사랑이면 좋으리

--- 시인 정연복, 봄날의 사랑 이야기 ---

나는 시인 정연복 님의 봄날의 사랑 이야기를 읊으며 미림씨에게 봄날의 편지를 쓰고 있다. 지난 봄날에 다 전하지 못한 봄날의 사랑을 설악산을 오르며 되 뇌이고 있다.

설악은 언제나 내 가슴을 뛰게 한다. 묘한 매력이 있는 산이다. 요즘의 설악은 공존의 계절을 맞이하고 있다. 산기슭은 여름으로 달려가고 있지만 5부 능선에선 이제 봄을 맞이하고 있다. 지나간 봄에 못 다한 사랑이 있다면 정상으로 오르면서 봄날의 추억을 느끼면 좋다. 봄날의 사랑 이야기란 시만 읊어도 설악의 사랑이 피어나고 설악의 숲에 불어오던 바람은 어디론가 새로운 사랑을 향하여 여행을 떠나고 있는 듯 보였다. 

김현구
제주대 해양의생명과학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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