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열은 확실히 다양한 성분을 만들어낸다. 커피원두, 찻잎, 바닐라와 카카오 열매의 날것에는 향기성분이 적지만, 볶은 커피에는 1000여 가지 휘발성 물질, 홍차는 470여 종, 구운 빵은 400종 이상의 냄새성분이 발견된다.

세상 냄새의 대부분은 식물이 만들었지만 우리가 즐기는 식품 향의 대부분은 발효나 요리를 통해 인간이 만든 것이다. 우리가 먹는 음식 중에 날것으로 먹어도 맛과 향이 좋은 것은 채소와 과일 정도이고 나머지는 발효나 가열을 통해 맛과 향을 높인 것이다. 인류가 처음에는 요리를 통해 소화하기 좋고 병원균을 없애는 측면을 중요시했겠지만, 지금은 오로지 맛 때문에 요리를 하는 측면이 더 많은 것 같다.

가열은 확실히 다양한 성분을 만들어낸다. 커피원두, 찻잎, 바닐라와 카카오 열매의 날것에는 향기성분이 적지만, 볶은 커피에는 1000여 가지 휘발성 물질, 홍차는 470여 종, 구운 빵은 400종 이상의 냄새성분이 발견된다. 초콜릿(코코아)도 처음부터 그런 맛을 가진 것이다. 카카오 콩은 강한 쓴맛을 가지고 있으며 맛과 향도 별로인데, 이것을 맛있는 디저트로 바꾸려면 코코아를 바구니에 담아 바나나 잎으로 덮어 발효시키고 건조과정을 거친 뒤 볶아야 한다. 차(茶)는 로스팅하기 전에 약간의 발효를 하기도 하고, 바닐라는 반드시 발효와 숙성을 거쳐야 제 향이 난다.

가열은 실로 엄청난 변화이다. 향과 색이 변하고 물성마저 변한다. 캐러멜 반응, 마이야르 반응, 지질의 열분해, 황 함유 물질의 변화 등 복잡한 반응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너무 복잡한 변화라 그 반응의 전모가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고, 여기에 관여하는 화학변화는 대단히 복잡하여 온도와 시간 등 조건에 따라 완전히 바뀐다.

온도는 분자의 진동 정도이다. 온도에 따라 진동의 정도가 증가하여 고체에서 액체, 액체에서 기체로 변한다. 로스팅은 온도를 높여 분자 간에 격렬한 충돌을 유도하는 현상이다. 고체 또는 액체인 성분이 가열로 인해 마구 충돌하여 반응물을 만들고 심지어 일부 성분이 기체로 변하여 소실되는 것마저 감수하는 격렬한 현상이다. 그래서 순식간에 색과 향이 만들어진다.

가열은 충돌 횟수와 에너지를 높이므로 온도가 높고 시간이 길수록 많이 만들어진다. 하지만 일정 온도 이상에서는 향기성분의 휘발이 일어나고 파괴도 일어난다. 그래서 최적의 온도와 시간이 있는 것이다. 문제는 물질마다 생성 및 파괴 곡선이 다르다는 것이다. 어떤 물질이 파괴되는 온도에서 왕성히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이론적으로 최적점을 정하기는 힘들다.

가열의 의한 대표적인 반응 : 당류+아미노산, 당, 지방

A. 마이야르 반응 : 당류+아미노산
식품 성분 중에서 당류와 아미노산이 고온에서 반응하여 향이나 색소물질이 만들어지는 것을 마이야르 반응이라고 한다. 이 반응은 선사시대부터 조리에 이용되어 왔지만, 루이스 마이야르라는 화학자가 1910년대에야 체계적으로 정리하기 시작하였다.

당류 중 분자 내에서 알데하이드기를 가지고 있거나 용액 속에서 알데하이드기를 형성하는 환원당이 그것과 친화력이 있는 아미노산의 아민과 반응하고 일련의 계속된 반응을 통해 다양한 맛, 냄새, 색소 분자가 만들어진다. 이 과정은 알칼리 환경에서 더욱 촉진되며 요리의 맛과 향의 근본이 된다. 이 반응을 통해 수 백 가지의 향기물질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구운 빵, 비스킷, 구운 고기, 연유, 볶은 커피, 군고구마, 군밤, 호떡, 부침개, 튀김 등의 로스팅 향이 이 마이야르 반응으로 만들어진다.

이 반응은 아직 그 전모가 완전히 밝혀지지 않은 복잡한 반응이다. 100도 정도에서는 반응이 미약하고 160도 이상에서 제대로 발생하기 시작하여 190도 정도에서 가장 활발하고 이 이상의 온도에서는 탄 냄새가 심해진다. 이 반응을 촉진하기 위해 설탕, 꿀, 메이플 시럽이 추가되기도 하는데, 과당 성분이 있으면 7배까지도 반응이 잘 일어나기 때문이다.

기질의 농도가 너무 낮거나 물이 많으면 반응이 잘 일어나지 않는다. 생선을 구울 때 물기를 제거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고 건조된 생두에서 수분이 더 감소한 후에야 본격적으로 향이 발현되는 이유기도 하다. 수분이 많으면 물이 100도에서 기화되면서 많은 열을 빼앗기 때문에 품온이 올라가지 않고 반응이 약해진다. 수분이 증발한 이후 반응이 본격적으로 일어난다.

저온에서 장시간 처리한다고 이런 향기물질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전자레인지는 내부 온도가 먼저 올라가 스팀이 발생하여 표면 온도가 높아지지 않기에 이런 반응이 일어나지 않는다. 생선이 구워지지 않고 삶아지는 셈이다. 수비드(sous vide) 요리가 물성은 완벽한데 향이 부족한 이유이기도 하다.

쇠고기의 단백질 중 미오신은 50℃에서 변성되고, 식중독균은 55℃에서 죽으며, 액틴은 65.5℃에서 변성된다. 55~65℃ 사이이면 미오신은 변성되고 식중독균은 죽으나 액틴은 변성되지 않기에 부드러운 조직이 된다. 65℃ 이하에서 오랜 시간을 두고 익히면 고기 전체가 완벽한 미디엄 레어로 되어 육즙이 하나도 증발되지 않고, 타지 않은 스테이크가 된다. 하지만 고온에서 만들어지는 향기물질이 없어서 수비드로 조리한 고기를 다시 팬에 살짝 굽거나 토치로 겉을 그슬리곤 한다.

B. 캐러멜 반응 : 당류(탄수화물)만 있을 때
캐러멜 반응은 아미노산 없이 당류만을 가열했을 때 일어나는 화학작용을 일컫는다. 이 반응을 통해 무색무취한 당에서 놀랍게 다양한 향이 만들어진다. 당을 가열하면 단맛은 줄어들고, 색깔이 짙어지며 향이 강해진다. 반응이 지나치면 쓴맛도 강해진다. 캐러멜은 대개 설탕으로 만드는데, 설탕은 구성 성분인 포도당과 과당으로 분해된 후 새로운 분자들로 재결합된다.

과당을 ‘환원당’이라고 하는데, 분자 내에 알데하이드 구조가 있어 반응성이 크기 때문이다. 포도당, 설탕이 캐러멜화 되는 온도는 160℃로 맥아당의 180℃보다는 낮지만 과당 110℃에 비해 훨씬 높은 까닭이 여기에 있다.

캐러멜 반응을 직접 알아보는 것은 간단하다. 설탕을 물과 섞은 다음 물이 증발하고 녹은 설탕이 갈색이 될 때까지 가열하는 것이다. 물은 설탕이 포도당과 과당으로 더 잘 전환되도록 해주고 타지 않게 해준다. 설탕을 끓여 물이 적어지면 온도는 100℃ 이상으로 올라간다. 113℃이면 당 농도가 85%에 도달하고 퍼지를 만들 수 있다. 132℃에서는 당도 90%로 태피를, 149℃ 이상이면 거의 100%에 가까운 당 농도이고 식었을 때 바스러지는 하드캔디를 만들 수 있다.

캐러멜 반응에 의해 생기는 향에는 여러 향들이 포함되어 있는데, 버터와 밀크 향, 과일 향, 꽃향기, 단내, 럼주 향, 구운 향 등이 대표적이다. 반응이 지나치면 단맛은 없고 신맛, 나아가 쓴맛과 거슬리는 태운 맛 등이 더 두드러지게 된다.

C. 지방이 분해되면서도 향이 만들어진다
지방 자체는 맛이 없고 느끼하지만 지방이 많은 식품을 ‘고소하다’, ‘풍부하다’, ‘부드럽다’ 하면서 좋아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혀로 느끼지 못해 내장기관 등 우리 몸 여러 부위로 지방을 느낀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지방이 요리 과정에서 여러 가지 향을 만든다는 것이다. 가열을 하면 지방의 일부가 분해되고 불포화지방이 감소하면서 여러 가지 색과 향기물질이 만들어진다.

옛날 짜장 맛이 아니야! 옛날에 돼지기름으로 볶았을 때는 맛이 있었는데, 예전에 부침개는 맛이 있었는데 지금은 왜 맛이 없지? 비밀은 바로 기름이다. 소기름(우지), 돼지기름(돈지)으로 튀기던 것이 식물성 유지를 사용하면서 맛이 없어진 것이다. 사실 소고기 향과 돼지고기 향의 주인공이 지방이다.

지방 자체는 향이 없지만 식품 중에 포도당 같은 당과 시스테인 같은 황 함유 아미노산과 함께 고온으로 가열되면 고기 향이 만들어진다. 소기름을 만나면 소고기 향, 돼지기름을 만나면 돼지고기 향, 닭기름을 만나면 닭고기 향이 되는 것이다. 야채를 튀겨도 소기름에 튀기면 은근한 소고기 향이 생기고 돼지기름에 튀기면 은근히 돼지고기 향이 생겨서 맛있던 것이 식물성 기름을 사용하자 이런 향이 생기지 않아 맛이 떨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향기성분은 기름에 잘 녹는 성분들이라 기름에 향이 아주 잘 포집된다. 기름이 있으면 향도 많이 만들어지고, 향기가 날아가지 않고 기름 속에 갇혀있게 되어 훨씬 풍부한 향을 즐길 수 있다. 그래서 마블링이 좋은 고기를 구우면 맛이 있는 것이다.

 
최낙언 시아스 이사
최낙언 시아스 이사
서울대학교와 대학원에서 식품공학을 전공했으며, 1988년 12월 제과회사에 입사해 기초연구팀과 아이스크림 개발팀에서 근무했다. 2000년부터는 향료회사에서 소재 및 향료의 응용기술에 관해 연구했다. 저서로는 ‘불량지식이 내 몸을 망친다’, ‘당신이 몰랐던 식품의 비밀 33가지’, ‘Flavor, 맛이란 무엇인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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