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은 음식의 일부…생선의 소금이 와인을 쓰게 할 수도, 와인의 철분이 생선을 비리게 할 수도

▲ 보통 생선요리에는 레드 와인 대신에 화이트 와인을 권하는데, 레드 와인과 소금이 만나면 타닌이 더 쓰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와인을 말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음식과의 궁합이다. 궁합을 따지는 데에는 나름 이유가 있다. 보통 생선요리에는 레드 와인 대신에 화이트 와인을 권하는데, 레드 와인과 소금이 만나면 타닌이 더 쓰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소금에 절인 굴비, 간고등어, 간장게장, 젓갈류에는 타닌이 적은 화이트 와인이 적당하다. 생선의 소금이 와인을 쓰게 할 수도 있고 와인의 철분이 생선을 비리게 할 수도 있다.

2009년 일본 주류회사의 연구로 약 2㎎/ℓ 이상의 철 이온이 포함된 와인을 생선요리와 같이 먹으면 와인의 철 이온이 생선의 맛을 죽이고 비린 맛을 낸다는 것이 밝혀지기도 했다. 일반적으로 화이트 와인이 레드 와인보다 철분이 적기 때문에 생선에는 화이트 와인이 무난하다. 철분이 음식 맛을 버리는 경우는 사실 예전에는 많았다.

스테인리스가 일반화되기 전에 사용된 칼은 철분이 초미량씩 녹아나오는 경우가 많았는데, 특히 산성음식과 접촉할 때 그랬다. 칼의 강철에 식초가 조금이라도 닿으면 날이 잉크처럼 검게 변한다. 철은 식초가 들어간 음식과 상극인 셈이다. 그래서 프랑스는 요즘에도 샐러드 채소를 나이프로 자르지 않는다고 한다. 생선요리도 그렇다. 오래 전부터 사람들은 생선에 레몬이 어울린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데 레몬을 뿌린 생선에 쇠로 된 칼이 닿으면 맛이 망가진다. 레몬의 산이 강철과 반응하여 쓴 금속성 뒷맛을 남김으로써 생선의 섬세한 맛을 덮어 버린다. 예전에 부자들이 은 나이프를 쓴 이유이기도 하다.

스테인리스강은 크롬 합금으로 매우 단단하고 산화 크롬막을 형성하여 녹이 슬지 않고 철분이 누출되지 않는다. 이런 스테인리스강이 본격 생산된 것은 2차 세계대전 이후이다. 그래서 서민도 나이프가 음식 맛을 버릴까봐 걱정할 필요가 없어졌다. 그래서 미량의 철분도 음식 맛을 버릴 수 있다는 사실을 잊은 경우가 많다. 지금도 칼을 갈자마자 고기를 썰어보면 고기에서 비린내가 날 수 있다.

음식의 궁합은 생각보다 중요하며 와인의 경우 이런 매칭이 많이 연구되어 있다. 매칭의 기본은 균형이다. 음식과 와인 맛의 바디감을 조화시키는 것이다. 어느 한쪽이 압도하지 않도록 동급 바디감을 가진 것을 짝을 지운다. 힘 있는 것은 힘 있는 것끼리, 섬세한 것은 섬세한 것끼리 맞추는 것이다. 이런 음식의 바디감은 여러 요소가 작용하지만 지방을 주된 요소로 생각하고 조리법과 소스를 고려하면 판단이 쉽다.

와인의 바디감은 포도의 품종, 알코올 함유량 등에 따라 달라진다. 예를 들어, 알코올 12% 이하의 와인들은 대부분 가벼운 바디감을 가지고 14% 이상은 무거운 바디감을 가진다. 그리고 산도와 타닌 등이 많으면 바디감이 증가한다. 이런 바디감을 서로 맞추면 잘 어울리게 된다.

그리고 레몬이나 식초 같은 산도가 높은 요리 재료들은 산도가 높은 와인과 어울린다. 요리의 산도가 와인의 산도를 부드럽고 둥글게 느껴지게 한다. 하지만 지나치게 시큼한 요리는 균형 잡힌 맛의 와인을 평범하고 밋밋하게 만들 수도 있다. 달콤한 요리는 드라이한 와인을 더욱 시게 느끼게 할 수 있다. 와인에 약간 달콤함이 있다면 무척 좋은 궁합이 된다.

와인의 타닌은 요리의 지방, 소금, 그리고 향신료의 영향을 받는다. 스테이크처럼 기름 성분이 많은 요리는 타닌의 느낌을 줄여준다. 하지만, 아주 짠 음식은 타닌의 느낌을 높여서 떫은맛으로 느끼게 할 수 있다. 매우 스파이시한 풍미는 타닌과 높은 알코올에 좋지 않게 반응하는 경향이 있고, 과실 느낌이 많거나 약간 달콤한 와인과 더 어울린다.

와인의 숙성에 따라 바디와 풍미가 변한다. 숙성 할수록 젊음의 패기는 점차 진정되고 타닌은 부드러워지며 와인은 섬세하고 우아해진다. 그런 와인을 돋보이게 하려면 요리는 아무래도 지나치게 풍성하고 강한 풍미 보다는 미묘한 느낌이 빛나도록 단순함이 어울린다.

어디 와인뿐이겠는가. 모든 음식에는 궁합이 있다. 단지 우리의 음식은 우리 몸에 이미 체화된 것이라 별로 의식하지 못한 것일 뿐 나름 궁합을 맞추어 먹는다. 막걸리와 같이 먹으면 홍어의 발효냄새를 잘 잡아준다는 것을 알고 홍어를 먹을 때는 유난히 막걸리를 찾는 것처럼 말이다. 와인과 양식, 아직 낯설기에 조금 유난스럽게 느껴지는 것뿐이다.

그리고 궁합도 도식적으로 이해한다고 좋은 것이 아니다. 그저 기본원리 정도를 익혀도 충분한 것이다. 같은 음식이라도 여름철이면 좀 더 가볍고 시원한 느낌의 와인이 적합할 것이고, 왁자지껄하고 산만한 바비큐 파티에서는 적당히 저렴한 와인으로도 충분히 맛있고 즐거울 수 있다. 어차피 한 끼 식사와 와인 한 잔인데 잘 맞으면 어떻고 조금 덜 어울리면 어떤가. 그 또한 추억으로 간직하면 그만이고, 남이 뭐라고 해도 내 입에 맞으면 그만이다.

사실 우리는 한상 차려놓고 먹는 스타일이라 음식과 술을 1대 1로 매치시키는 것은 힘들다. 음식은 모든 것을 포함하여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하는 것이지 개별적으로 판단하면 틀리기 쉽다. 우리나라의 맥주나 소주가 향이 별로 없어서 맛이 없다고 불만인 사람들이 많은데, 그게 우리의 음식 스타일과 맞기 때문이기도 하다.

2001년 보르도대학교의 프레데릭 브로세는 동일한 중등품 와인을 두 개의 다른 병에 담아 내놓았다. 병 하나는 고급 브랜드, 하나는 평범한 브랜드였다. 그런 후 전문가에게 맛을 보게 하자 둘을 전혀 다른 것으로 평가했다. 고급 브랜드처럼 포장한 것은 “맛이 좋고, 좋은 오크 향이 느껴지며, 복잡 미묘한 여려 가지 맛이 조화롭게 균형 잡혀 있고, 목으로 부드럽게 잘 넘어 간다”는 평을 받은 반면, 싸구려 포장을 한 것은 “향이 약하고 빨리 달아나며, 도수가 낮고, 밍밍하며, 맛이 갔다”는 평가를 받았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프랑스 요리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요리의 제왕 에스코피에는 이런 사람들의 심리적 작용을 누구보다 빨리 깨닫고 적절히 활용했다. 그는 자신의 요리에 멋들어진 이름을 붙이고 반드시 금박을 두른 은제 그릇에 담아내게 했다. 반짝반짝 잘 닦인 식기 컬렉션은 귀족들의 유산 매각 경매에서 챙겨온 것이었다. 요리에 고급스러운 이름을 붙이고, 웨이터들에게 턱시도를 입혔고, 식당 인테리어도 직접 감독했다. 요컨대 완벽한 요리에는 완벽한 분위기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비싸게 보이면 맛있게 느끼는 우리의 감각의 허점을 아주 예전에 깨달은 것이다.

그래서 가격을 높이면 오히려 판매가 잘 되기도 한다. 물론 그래서 명품은 비쌀수록 오히려 잘 팔리는 경우가 많은데 대중적인 제품인 식품마저 그런 경우가 있다. 한 실험에 따르면, 몇 주에 걸쳐 날을 바꾸어가며 카베르네 소비뇽에 각각 10달러, 20달러, 40달러의 가격을 붙였다. 방문객들은 시음대로 가서 가격이 8~60달러인 견본 와인 아홉 가지의 이름과 가격이 적힌 한 장짜리 인쇄물을 받고 그중에서 여섯 가지를 선택해 시음했다. 시음 후 어떤 와인을 구매할지 결정했다. 그런데 카베르네 소비뇽의 가격을 병당 10달러에서 20달러로 올리자 구매하는 사람이 오히려 50% 증가했다. 품질이 가격을 결정하지만 가격이 품질을 결정하기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것에 크게 불만을 가질 필요가 없다. 술을 즐겁게 마실 줄 아는 사람이 능력자이지 술에 대한 평가를 잘 하는 사람이 능력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물은 공짜였는데 지금도 물의 원가는 1ℓ에 1원에 불과하다. 하지만 500원 5000원 심지어 5만원에 팔리는 물도 있다. 가격은 원가가 아니라 소비자가 기꺼이 지불하려는 비용이다. 소비자는 자기가 만족한만큼 비용을 지불하지 원가만큼 비용을 지불하지 않는다. 원가를 낮추는 기술은 중급의 기술이고, 심리적 가치를 높이는 기술이 최고의 기술인 것이다.

 
최낙언 시아스 이사
최낙언 시아스 이사
서울대학교와 대학원에서 식품공학을 전공했으며, 1988년 12월 제과회사에 입사해 기초연구팀과 아이스크림 개발팀에서 근무했다. 2000년부터는 향료회사에서 소재 및 향료의 응용기술에 관해 연구했다. 저서로는 ‘불량지식이 내 몸을 망친다’, ‘당신이 몰랐던 식품의 비밀 33가지’, ‘Flavor, 맛이란 무엇인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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