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은 햇빛의 에너지, 이산화탄소와 물을 이용해 포도당을 만들고 산소를 배출한다. 이것을 광합성이라고 하고 세상의 모든 생물은 이 포도당을 시작물질로 하여 살아간다. 하지만 식물이 포도당으로 가지고 있는 양은 그렇게 많지 않다. 포도당을 직선으로 길게 이어서 만든 셀룰로오스 형태로 단단한 구조체를 만들기도 하고 나선의 형태로 길게 이어서 전분을 만들기도 한다. 세상의 시작물질이기도 하고 세상에서 가장 많은 유기물이 바로 포도당이기도 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술로 만들어 즐길 수도 있다.

감자의 속을 광학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세포의 구조와 그 안에 전분 구조체를 볼 수 있다. 하지만 이것까지가 광학현미경의 한계이다. 이것은 포도당이 수만~수백만 개 이상이 합해진 구조이고 실처럼 가는 선까지 확대해야 비로소 포도당이 드러난다.

포도당의 크기는 불과 0.5nm로 전자현미경으로도 볼 수 없는 작은 크기이다. 포도당 덩어리인 전분이 입안에서 달지 않은 것은 이처럼 큰 덩어리로 뭉쳐있기 때문이고, 우리가 술을 만들거나 소화를 시키려면 다시 포도당 분자로 분해해야 한다. 이것을 당화라고 한다. 전분은 나선형으로 분자의 사슬 간에 결합이 약해 효소를 통해 분해가 가능하지만 셀룰로오스는 직선형으로 서로 단단히 결합하여 효소를 통해 분해할 수가 없다. 그래서 셀룰로오스는 아주 특이한 생물 이외는 이용할 수 없다

▲ 포도당 결합으로 만들어진 전분 구조체
발효의 시작 ‘당화’
꿀이나 과일을 이용해 술을 만들 때는 곧바로 술효모를 이용하여 만들 수 있지만 쌀, 보리 같은 곡물을 사용할 때는 전분을 당으로 전환시키는 과정이 필수이다. 이 과정에는 아스페르길루스Aspergillus와 같은 곰팡이가 사용된다. 진핵생물군의 하나인 균류(Fungi)에는 효모와 같은 단세포도 있지만 곰팡이, 버섯과 같은 다세포 생물도 있다. 알코올 발효는 결국 균류의 도움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우리가 전통주를 담글 때에 누룩을 사용하는 것도 이 당화와 발효를 위한 것이다. 전통의 누룩보다는 개량의 누룩이 효율이 좋고, 누룩보다는 효소만을 분리한 것이 더욱 효율이 좋다. 그리고 효소는 정제를 하지 않는 조효소보다는 효소의 함량을 높인 정제 효소가 더욱 좋을 수밖에 없다

우리는 효소가 만능의 가위로 생각하여 전분을 분해효소라고 하면 무작정 닥치는 대로 분해할 것으로 기대하지만 전분은 직선결합과 사이드결합이 있고 크기에 따라 잘 분해되지 않는 부위도 있다. 그런 원리를 이용해 난분해성 전분을 만들기도 한다.

▲ 전분의 분해 과정
포도당이 피루브산으로 분해되는 해당과정은 생명의 공통과정
분해된 포도당은 피루브산으로 분해된다. 발효의 향을 공부하는데 굳이 왜 이런 것을 알 필요가 있을까하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실 이것은 우리 몸에서도 일어나고 거의 모든 생명체에서 일어나는 생명의 가장 기본적이고 근본적인 반응이다. 내가 이 글에서 여러 가지 생소하고 어려워 보이는 생화학 경로 등을 보여주지만 굳이 그것을 보여주는 것은 그게 꼭 커피나 술에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생명 현상에서도 아주 의미가 있는 경로들이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가르쳐줄 때는 그것이 어떤 의미이고 어디까지 적용되는 것인지 말해주지 않았기에 우리는 그것에 흥미를 느끼기 힘들었고 외면한다. 그래서 익숙하지 않아 단지 그림의 나열일 뿐인데도 어렵다고 느낀다. 사실 나는 한 번도 술을 담가 보지 않았고 커피를 볶아 보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것은 생명과학의 원리나 식품화학의 원리 그리고 커피의 화학이나 발효의 화학이 정확히 같은 원리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조금만 깊숙이 그 원리를 알고자 하면 만날 수밖에 없는 지식들이다.

피루브산이 알코올로 변환되는 것이 술이다
인류가 늑대를 길들인 뒤 수백 가지 품종의 개를 만들어낸 것처럼 야생의 효모를 길들여 오늘날 다양한 특성의 균주를 얻었지만 효모의 본질적인 특성을 만들어낸 것은 아니다. 즉 에탄올 생산 효율을 높이고 내성(에탄올 농도가 올라가면 효모도 죽는다)을 키우기는 했지만 에탄올을 만드는 능력 자체는 1억여 년 전 효모가 획득한 것으로 추정된다.

에탄올은 다른 미생물을 죽이는 강력한 살균제다. 높은 농도의 알코올을 견디는 특성이 있어서 널리 쓰인다. 와인 생산자들이 필요로 하는 술효모는 주로 발효 효율을 높이고, 와인의 향미를 증대시키며, 생산이 용이하고, 건강에 유용한 물질을 만드는 특성이 있는 것이다.

실제로 이런 특성을 고려한 다양한 술효모가 개량되었는데 예를 들면, 특별한 당류를 만들어 풍미는 높이는 효소, 산도를 조절하는 효소, 글리세롤을 만드는 효소, 페놀물질을 만드는 효소 등을 조절하여 풍미가 좋은 술을 만들 수 있게 하는 술효모이다. 또 건강을 고려하여 라스페라톨과 같은 건강에 좋은 물질을 더 많이 만드는 균, 에틸 카바메이트(ethyl carbamate) 같이 건강에 나쁜 물질을 덜 만드는 균도 만들어졌다.

술효모에 필요한 특성

항목

적합한 특성

발효의 특성

알코올을 견디는 힘이 높을 것
발효의 효율이 높을 것
균이 빨리 자라고 빨리 발효가 일어날 것
낮은 온도에서도 발효가 되는 것이 유리

풍미의 특성

다양한 향미 물질의 생산
높은 글리세롤의 생산
이취 성분을 적게 만들 것

기술적 특성

유전성 안정성이 높아 균의 변화가 적을 것
적은 질소 함량에서도 잘 자랄 것
거품이 가급적 적게 생길 것

건강상 특징

에틸 카바메이트를 적게 만들 것
아민류를 적게 만들 것, 아황산염을 적게 만들 것
라스베라톨은 많이 만들 것

▲ 원료에 따른 발효방법의 차이
 
최낙언 시아스 이사
최낙언 시아스 이사
서울대학교와 대학원에서 식품공학을 전공했으며, 1988년 12월 제과회사에 입사해 기초연구팀과 아이스크림 개발팀에서 근무했다. 2000년부터는 향료회사에서 소재 및 향료의 응용기술에 관해 연구했다. 저서로는 ‘불량지식이 내 몸을 망친다’, ‘당신이 몰랐던 식품의 비밀 33가지’, ‘Flavor, 맛이란 무엇인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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