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나나는 5~25℃로 온도가 올라갈수록 급속하게 향을 많이 만든다. 10℃ 이하에서 오래 보관하면 60%까지도 향 생산이 줄어든다. 5도 이하에서 보관하면 적합한 향이 생성되지를 않고 냉해를 받는다.
향은 품종, 영양, 환경, 성숙도, 보관 등의 영향도 받는다. 품종이 다르면 향이 다르다는 것은 너무 잘 알고 있지만 같은 환경에 따라 향이 다르다는 것을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 또한 동일한 식물에서 나온 것도 부위마다 다르다. 양파의 경우는 껍질마다 향기성분의 농도가 다르기도 하다. 고추, 당근도 끝 부위와 줄기 부위가 다르다. 향기의 농도가 다를 뿐 아니라 향조마저 다르다. 그래서 식물마다 이용하는 부위가 달라진다. 수확도 정성과 기술이 필요한 것이다. 이것에 대해 좀 더 알아볼 필요가 있다. 커피도 품종마다 다르고 같은 품종도 환경에 따라 향이 다르기 때문이다.

품종이 달라지면 향기물질의 비율이 달라지고 향조가 달라진다. 모든 생물의 대사는 기본적으로 공통성이 있다. 카페인이나 바닐린의 경우 커피나 바닐라의 아주 독특한 대사산물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대사의 중간산물이나 대부분의 생명체가 이들 물질을 생산한다. 하지만 다른 생명은 만들자마자 연달아 다른 물질로 전환하고 식물에 따라 중간에 머무르고 정도의 차이가 있는 것이다. 과일이나 채소의 향기성분을 조사하면 수십~수백 가지이지만 양으로는 아주 적다. 그런데 식물에 따라 그 비율이 다른데 아주 사소한 양의 차이로 냄새가 결정적으로 차이가 나는 경우가 많다. 식물에 따라 대사과정이 조금 다른데 생성물도 조금 다르다. 하지만 그 조금이 향일 경우에는 많은 향조의 차이를 일으키곤 하는 것이다

영양이 풍부하면 식물이 잘 자라고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 같은 1차 대사산물이 많이 만들어진다. 하지만 이것은 아직 향이 아니다. 향기물질을 만들 기본 자원은 증가하지만 향이나 색소 같은 2차 대사산물이 많이 만들어지려면 또 다른 과정을 거쳐야 한다.

토양의 황산염(sulfateㆍSO2) 양의 차이에 따라 양파, 마늘, 양배추, 겨자 등의 향이 크게 변하는 것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양파 등의 특징은 황 함유 전구물의 양에 따라 다르므로 토양의 황산염 양에 영향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 만약에 지나치게 부족한 환경에서 자라게 되면 특유의 향과 최루성이 부족하게 된다. 물론 이들 물질이 부족하다고 성장에까지 완전히 영향을 받는 것은 아니지만 향은 덜 필수적인 2차 대사산물이라 적어진다. 따라서 토양의 영양관리를 통해 향도 어느 정도 조정이 가능하다. 가열 취나 거친 맛을 좀 줄이려면 황의 함량을 줄이면 된다.

용수와 기후도 영양의 일종이다. 풍부하면 식물의 성장에 좋지만 향까지 좋다는 보장은 없다. 오히려 식물은 웃자라고 향은 부족하기 쉽다. 물이 모자라면 과일이나 채소의 크기는 작아도 향은 강렬한 경우가 많다. 향이 2차 대사산물이고 스트레스에 대응하는 물질이기도 하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운 현상이다. 기후(온도)도 스트레스로 작용하기 쉽다. 온도가 낮으면 냉해를 극복하기 위해 분자량이 적은 물질을 많이 축적한다. 물에 분자량이 적은 물질이 많을수록 빙점강하가 일어나 쉽게 얼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저분자 물질이 맛과 향의 원천이기도 하다. 하지만 무작정 저온이 유리한 것은 아니다. 식물의 대사는 효소에 달려있는데 온도가 높아질수록 효소는 활발히 작동해 많은 대사산물이 만들어진다. 결국 낮에는 온도가 높아 1차 대사산물을 많이 만들고 밤에는 온도가 낮아 2차 대사산물을 많이 만드는 경우 향이 좋은 경우가 많다. 일교차가 큰 것이 식물에게는 스트레스겠지만 인간의 입과 코를 즐겁게 할 수 있다.

과일은 완전히 익기 전에 수확해 후숙을 하는 경우가 많다. 나무에서 완전히 익으면 맛이 좋겠지만 보관과 수송 중에 손상되기 쉽기 때문이다. 보통 덜 익은 과일은 보관 중에도 효소가 여전히 작동해 향이 더 진해진다. 복숭아의 경우 락톤류가 특유의 달콤한 향을 주는데 숙성이 진행될수록 함량이 증가한다는 것도 확인된 바 있다. 하지만 나무에서 완전히 익히는 것에 비하면 20% 수준에 불과하다고 한다. 벤즈알데하이드도 20%, 과일 향의 주성분인 총 에스테르 양도 50%에 불과하다고 한다. 확실히 나무에서 완전히 익은 후 수확하는 것보다 향이 좋지 않은 것이다. 나무에 매달려 있을 때보다 영양분과 효소의 공급이 적기 때문인 것으로 판단된다. 예외적으로 캔털루프나 아보카도 몇 종류 정도가 나무에서 완전히 익히면 오히려 맛이 나빠져 완전히 익기 전에 수확해 후숙하는 것이 나은 정도이다.

후숙은 아주 많은 변수의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아주 신중하게 제어돼야 한다. 대표적인 경우가 바나나이다. 바나나는 5~25℃로 온도가 올라갈수록 급속하게 향을 많이 만든다. 10℃ 이하에서 오래 보관하면 60%까지도 향 생산이 줄어든다. 5도 이하에서 보관하면 적합한 향이 생성되지를 않고 냉해를 받는다. 냉해가 일어나면 세포막의 지방이 비가역적인 변화가 일어나 정상적인 호흡이 이루어지지 못한다. 보관온도가 27℃가 넘어도 향조가 이상해진다. 바나나만큼은 아니지만 다른 과일도 저장온도에 따라 향이 달라진다. 따라서 과일의 특성에 맞는 온도에 보관돼야 한다. 그리고 온도 외에 습도와 가스 등 여러 변수도 잘 제어돼야 한다.

숙성의 정도는 향뿐 아니라 조직감에 대한 영향이 크다. 어린 채소 잎은 부드럽지만 숙성이 됨에 따라 단단해진다. 그래서 채소는 완전히 성숙하기 전이 상품성이 높기도 하다. 과일은 부드러워야 향의 릴리즈가 좋아 더 맛있게 느껴진다.

허브 중에는 건들면 향을 퍼뜨리는 것이 많다. 그리고 나무와 풀은 상처가 나면 향을 내는 것이 많다. 월동을 한 노지 채소가 맛과 향이 진하고, 비료를 사용하지 않은 채소에 향이 진한 경우가 많다. 좋은 와인도 척박한 토양에서 겨우 겨우 자란 포도로 만든다. 결국 부족함과 스트레스가 식물의 향 생산을 부추기는 것이다.

영양과 날씨 등 조건이 좋으면 1차 대사산물인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의 합성이 왕성하지만 2차 대사산물은 상대적으로 적을 수밖에 없다. 곤충의 공격을 받으면 방어를 위해서, 추위가 오면 냉해에 견디기 위해 분자량이 적은 물질(예를 들어 포도당)을 많이 축적한다. 물에 분자량이 적은 물질이 많을수록 빙점강하가 일어나 쉽게 얼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들 저분자 물질이 맛과 향의 원천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무작정 저온이 유리한 것은 아니다. 식물의 대사는 효소에 달려있는데 온도가 높아질수록 효소는 활발히 작동해 많은 대사산물이 만들어진다. 결국 낮에는 온도가 높아 1차 대사산물을 많이 만들고 밤에는 온도가 낮아 2차 대사산물을 많이 만든다. 고도가 높아 일교차가 큰 것이 식물에게는 스트레스가 심하겠지만 인간의 입맛에는 좋은 산물을 만드는 것이다. 비교적 고산지대의 커피가 향이 진한 이유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현재 재배하는 것들은 대부분 개량종이다. 개량의 포인트가 향기보다는 외관이다. 그래서 겉보기에 상품성이 높은 색상과 크기 쪽으로는 많은 개선이 이루어졌으나 향은 예전만 못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리고 재배 목표도 그렇다. 향은 부산물이고 일교차가 많거나 약간 스트레스가 있는 환경에서 많이 생기는데 그냥 크기 위주로 웃자라기 때문에 2차 대사산물인 향이 충분히 생길 틈이 없다. 그냥 크기만 한 것이다. 양보다 질을 따지는 현대에 맞추어 품종이나 재배 방법에 대한 고려를 기대해 본다.

 
최낙언 시아스 이사

최낙언 시아스 이사
서울대학교와 대학원에서 식품공학을 전공했으며, 1988년 12월 제과회사에 입사해 기초연구팀과 아이스크림 개발팀에서 근무했다. 2000년부터는 향료회사에서 소재 및 향료의 응용기술에 관해 연구했다. 저서로는 ‘불량지식이 내 몸을 망친다’, ‘당신이 몰랐던 식품의 비밀 33가지’, ‘Flavor, 맛이란 무엇인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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