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훈 교수의 농식품 비즈니스 이야기 25.

▲ 저녁식사 전 타파스 바에서 음료와 함께 타파스를 먹고 있는 스페인 사람들
세계 최대의 포도 생산국이며, 3위의 와인 생산국, 세계 최대의 올리브유 생산국이자 유럽의 과일창고, 미식의 나라, 뜨거운 태양, 정열과 시에스터의 나라. 스페인을 표현하는 다양한 수식어이다. 2014년 TV프로그램 ‘꽃보다 할배’에서 스페인 편이 방영된 이후 유럽의 변방이었던 스페인은 한국인들이 가장 가고 싶어 하는 여행지, 독특한 식문화를 경험해 보고 싶은 나라로 손꼽히고 있다. 그 여파로 최근에는 서울 시내에 스페인 음식점의 숫자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최근 국내 외식업에서 가장 주목 받고 있는 몇 가지 문화 코드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바로 ‘스페인’이다. 스페인의 식문화가 왜 주목 받을까?

풍성한 식재료의 나라 스페인
먼저 자연 환경을 보자. 스페인은 전형적인 지중해성 기후를 가지고 있다. 여름엔 건조하고 엄청난 양의 일조량을 자랑한다. 겨울엔 우기에 들어가지만 기후가 온난하여, 오히려 스페인 여행은 겨울이 더 낫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스페인 남부는 여름에 기온이 무려 45℃에 육박한다. 스페인 남부의 엄청난 일조량과 뜨거운 햇볕은 과일의 당도를 극단으로 끌어 올려 일반적인 레드 와인을 생산하기 어렵다. 그래서 남부에서는 주정을 강화한 셰리 와인들이 주로 생산된다. 물론 스페인의 보르도라고 불리우는 중북부 리오하 지방에서는 훌륭한 품질의 레드 와인도 생산되고 있다. 스페인 남부의 과일 생산자들은 높은 일조량과 토양의 특성으로 인해 어떻게 하면 과일의 당도를 낮출 수 있을지 고민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과일의 당도를 올리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우리 농업인들의 상황과는 너무나 달라 헛웃음이 나오기까지 한다.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을 겨울에 방문하면 온 동네가 오렌지와 귤이 주렁주렁 달린 나무로 가득 차 있는 모습에 충격을 받게 된다. 스페인 남부에는 오렌지 나무나 귤나무가 주로 정원수와 가로수로 심어져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을되면 가장 흔한 가로수인 은행나무에서 은행이 떨어지듯, 스페인 남부에서는 길거리에 귤과 오렌지가 떨어져서 굴러다닌다. 그런데 아무도 주워가지 않는다. 이 가로수에서 떨어지는 귤과 오렌지는 당도가 떨어지는 품종이고, 나중에 수거해서 가공하여 마아말레이드나 화장품 원료로 활용한다. 온 거리가 오렌지와 귤로 가득 차 있는 광경을 보면, 이곳이 얼마나 과일이 풍성한 곳인지 실감할 수 있다.

▲ 김치전으로 튀김옷을 만들어 입힌 새우튀김(식당-La Azotea)
스페인의 독특한 식문화
스페인은 식사 패턴이 우리와 매우 다르다. 스페인의 지인들에게 우리나라는 보통 아침식사를 7시쯤, 점심을 12시, 저녁을 6시나 7시쯤 먹는다고 하니, “너네는 영국이랑 비슷한 식사 패턴을 가지고 있군”이라고 한다. 대부분의 스페인 사람들은 ‘아침Desayuno’을 일단 7시쯤 가볍게 먹는다. 출근하고 나면, 11시쯤 ‘아점Almuerzo’을 먹는다. 그리고 오후 두 시쯤 되면 ‘점심Comida’을 먹는다. 점심은 보통 전채, 메인, 그리고 디저트와 커피까지 주로 3품 코스 요리로 식사를 한다. 그리고 6~7시에는 ‘점저Merienda’를 먹는데 간단한 음료와 타파스Tapas 요리를 먹으며 저녁 먹을 준비를 한다. 점저를 끝내면, 저녁 9시에 이제 ‘저녁Cena ’식사를 하는데 역시 고기요리를 중심으로 한 성대한 식사를 한다.

이렇게 하루 다섯 끼를 먹는 것이 스페인의 일반적인 식문화이다. 그런데 저녁 식사를 마치고 나면 보통 11시나 자정이 되는데, 그게 끝이 아니다. 다시 2차로 술을 마시러 간다. 게다가 대학생들은 거기서 끝나지 않고 새벽까지 3차, 4차로 옮기며 밤새 수다를 떨고 춤을 추며 논다. 이렇다 보니 식당들도 점심 때 1시 반이나 2시에 문 열었다가 4시에 닫고, 다시 저녁 7시 반이나 8시에 문을 연다. 타파스 바Tapas bar는 더 빨리 문을 열어 ‘점저 Merienda’ 손님들을 받고 자정 넘어까지 영업을 한다.

스페인의 식문화가 이런 특성을 가지고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밤 문화가 발달하였다. 유럽에서 이렇게 밤늦게까지 먹고 노는 나라는 스페인과 이태리 정도 밖에 없다. 특히 스페인 사람들은 밤새 자지 않고 노는 것으로 유명하다. 유럽 대부분의 국가에는 해질녘이 되면 집에서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며 저녁을 보내기 때문에 거리가 한산해지는데 반해, 스페인의 밤거리는 서울 못지않게 밝고, 활기가 넘친다. 스페인 사람들도 우리처럼 1차, 2차, 3차로 옮겨 가며 식사와 술을 즐기는 것을 좋아한다. 이런 스페인 사람들의 성향은 타파스Tapas라고 하는 독특한 식문화를 형성하게 한다.

▲ 이베리코 베이컨을 얹은 잡채튀김(식당-Disfrutar)
타파스는 뚜껑을 의미하는 단어이다. 즉, 제대로 된 식기에 코스 정찬으로 먹는 것이 아니라 조리용 작은 솥의 뚜껑 위에 음식을 조금만 얹어서 맛보기로 손님들에게 제공하던 형태가 아예 문화로 정착된 것이다. 그래서 타파스Tapas는 특정한 음식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작은 양의 음식을 손님들이 다양하게 먹을 수 있도록 제공하는 것을 의미한다.

어떤 측면에서 타파스Tapas는 우리나라 특유의 ‘반찬’ 문화와 유사하다. 그러나 우리의 반찬은 주식과 함께 어우러지는 다양한 음식들을 지칭하는데 반해, 타파스Tapas는 주식과 함께 먹는 용도가 아니라는 점에서 반찬과는 차이가 있다. 여러 가지 타파스Tapas를 주문해 식탁 위에 다양하게 늘어놓고 친구들과 함께 먹는 스페인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마치 한국에 온 듯한 생각이 든다. 물론 타파스Tapas에는 와인나 맥주가 빠질 수 없고, 스페인 사람들은 밤새 여러 타파스 바Tapas bar를 옮겨 가며 다양한 타파스Tapas를 즐기며 시간을 보낸다.

이런 타파스Tapas 문화는 스페인 남부에서 시작되어 스페인 전역으로 퍼졌다. 지금도 스페인 남부에서는 동네 타파스 바Tapas bar에 들어가서 맥주 한 잔을 시키면 인심 좋게 타파스Tapas 한 접시를 떡하니 내 놓는다. 물론 공짜다. 우리나라도 기본 안주 한 두 접시 내어 놓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스페인에서도 그러하다.

이런 타파스Tapas에는 그 어떤 식재료를 활용한 요리라도 다 올라올 수 있다. 소와 돼지의 내장뿐만 아니라 닭 피로 만든 선지도 타파스Tapas로 제공된다. 문어, 도미, 아귀, 한치 등 다양한 해산물도 즐긴다. 연어, 대구와 청어를 제외한 다른 생선을 식재료로 거의 쓰지 않는 다른 유럽의 국가들과는 확연히 다른 식문화를 가지고 있다. 이런 스페인의 식문화의 근간에는 무엇보다도 스페인에서 생산되는 다양하고 풍성한 식재료와 함께 다양한 음식을 즐기는 스페인 사람들의 미식가적 기질이 깔려 있다.

스페인 속의 한식
스페인 사람들의 음식에 대한 개방적인 태도는 ‘분자요리Molecular Cuisine’라고 하는 새로운 요리 장르를 만들어 냈다. 요즘은 ‘진보적 요리Progressive Cuisine’라고 불리는 이 분자 요리법의 개발은 수천 년 관행적으로 해온 단지 불로 조리하는 수준의 요리를 과학의 단계로 끌어 올린 20세기 외식업계의 혁신적인 사건이었다. 재료를 진공 상태로 만들어 재료 특유의 향을 극대화하여 뽑아내거나, 급냉하여 새로운 식감을 창조해 내기도 하고, 다양한 방법을 통해 재료의 물성 자체를 변이시켜 소비자들이 극한의 미식 경험을 하도록 만든다.

뿐만 아니라 스페인의 셰프들은 미지의 재료와 미지의 향을 찾아 세계를 돌아다닌다. 아시아, 남미, 아프리카의 음식 문화에서 특성을 뽑아 내 스페인의 그것과 결합시켜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음식들을 창조해 낸다. 진보적 요리를 추구하고 있는 스페인의 레스토랑에는 R&D 부서가 있고, 그들은 요리사가 아닌 탐험가이며, 생화학자이며, 동시에 창조자이다.

▲ 청각과 마른 멸치를 얹은 튀김요리(식당-Disfrutar)
필자는 작년 스페인 북동부 바르셀로나에 위치한 Disfrutar라는 식당에서 식사를 하게 되었다. Disfrutar는 진보적 요리를 지향하고 있는 레스토랑으로 현재 미슐랭 가이드에 등재된 식당이다. 무려 23가지의 타파스Tapas 요리가 코스로 나오는데, 거기서 매우 흥미로운 식재료를 발견하였다. 어렸을 적 부산에서 먹던 김치에서 언뜻 보았던 청각과 비슷하게 생긴 것이 Disfrutar의 요리의 식재료로 나왔던 것이다. ‘스페인에서도 청각을 먹는단 말인가?’, ‘내가 잘못 본 것일까?’하는 생각을 하다가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Disfrutar의 홀직원에게 이 식재료가 무엇인지 물었더니, ‘Korean Seaweed한국 해초’라고 대답을 하였다. 그리고 이 식재료를 어디서 구했는지 물었더니 정확한 한국어 발음으로 ‘샘표’라고 대답했다.

스페인의 초특급 레스토랑에서 ‘샘표’라는 말을 듣게 되다니 놀라웠다. 그 직원과 대화를 좀 더 나누다가 더 재미있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식당에서 쓰는 간장은 샘표간장이며, 다양한 이국적인 식재료를 샘표가 구해서 스페인으로 보내준다는 것이다. 진보적 요리를 추구하는 많은 스페인 특급 레스토랑에서 더 이상 일본 간장을 쓰지 않고 한국 간장을 쓰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는 이야기도 해주었다. 한국 간장이 더 밀도가 높으며, 더 깊은 맛이 난다는 이야기도 빼지 않고 했다.

샘표는 2012년 스페인을 대표하는 식품 및 조리과학 연구소인 알리시아 연구소에 큰 비용을 투입하며 공동 프로젝트를 수행하였다. ‘장 프로젝트’라고 명명된 이 협업은 유럽의 젊고 유능한 셰프들을 불러 모아 한국의 장을 어떻게 유럽의 음식에 적용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과제를 던져주는 거대한 실험이었다. 그 결과물은 유럽의 대가 셰프들에게 선보여졌고, 아시아 음식이라고 하면 일본 음식만을 떠올리던 유럽의 셰프들에게 새로운 세계, 한국의 장에 대한 눈을 뜨도록 만들었다. 그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셰프들이 나중에 자신의 지역으로 돌아가 자연스럽게 한국의 장과 식재료를 자신의 요리에 적용하였고, 기존 일본의 장을 한국의 장으로 대체하기 시작하였다.

유럽의 다양한 식당에서 우리의 장이 활용되고 있다. 우리의 장 문화가 우월해서 그들에게 전달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에게 우리의 장과 식재료를 전달하면 그들의 손끝에서 우리가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음식이 튀어 나온다. 이것은 한식의 새로운 발견이며 다양성을 갖춘 발전의 시작이다. 샘표와 알리시아의 ‘장 프로젝트’는 단편적으로 보자면 한식 세계화의 기여로 여겨지지만, 실은 그것은 한식의 발전에 큰 기여를 한 새로운 시도였다. 샘표의 새롭고 장기적인 시각에 박수를 보낸다.

 
문정훈 서울대 교수
문정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Food Business Lab 교수는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에서 식품 마케팅ㆍ식품 및 바이오산업 전략 등을 가르치며, 농식품 분야 혁신 경영 연구를 위한 Food Business Lab.을 운영하고 있다. Food Business Lab.은 농업, 식품가공, 외식 및 급식, 유통을 포함한 먹고 마시고 즐기는 비즈니스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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