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약 40만종의 냄새물질이 있다고 한다
커피에서 발견된 향기물질만 해도 생두에서 300여종, 볶은 커피에서 발견된 것은 800종이 넘는다. 1950년대 들어 분석이 본격적으로 이뤄지면서 시간이 갈수록 그 숫자가 늘어 1000여종이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식품 속 냄새물질만 해도 1974년에는 2600종, 1997년에는 8000종의 휘발성 물질이 확인돼 대략 1만종의 냄새물질이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렇게 향료물질의 종류가 많은 것은 후각 수용체의 종류가 많은 탓이다. 자연의 수많은 색은 불과 3가지 수용체의 조합으로 감지하는 것이라 3원색만 있으면 모두 조합할 수 있는데, 후각은 수용체의 종류가 시각보다 130배 많은 400종 가까이 된다. 따라서 원향만 400개라고 할 수 있다.

그럼 세상에는 몇 종의 냄새가 있을까? 원향만 400가지인데 이것의 조합으로 만들어지는 향의 종류는 너무 많다. 사과 향, 딸기 향, 장미 향, 우유 향 등 이름으로 세어도 끝이 없다. 사과도 종류에 따라 향이 다르며, 같은 사과도 숙성 정도에 따라 다르니 과연 향의 종류를 셀 수가 있을까? 향의 종류는 ‘그냥 정하기 나름이다’라고 할 수 있다.

최근(2014.3, 사이언스) 인간은 1조개의 냄새를 구분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미국 록펠러대 신경유전학연구소 레슬리 보스홀 교수팀은 성인집단을 대상으로 후각능력 평가시험을 진행한 결과, 사람은 그동안 받아들여져 온 학설보다 1억배 더 많은 1조가지 이상의 냄새를 구별할 수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발표했다. 지금까지는 이들 후각 수용체에 의해 인간이 약 1만가지 냄새를 구별해낼 수 있다는 1920년대 이야기가 통설로 받아들여졌다.

연구팀은 다양한 냄새가 나는 분자 128개를 10개, 20개, 30개 단위로 섞어 혼합 샘플 3개를 만든 뒤 20~48세 성인 26명을 대상으로 냄새를 맡도록 했다. 그 결과, 피실험자들은 샘플끼리 향기가 비슷해도 혼합 성분이 절반 이상 겹치지 않는 경우 차이를 쉽게 구별했고, 반대로 절반 이상 겹치면 구별에 어려움을 겪었다. 연구팀은 이를 토대로 경우의 수를 파악해 인간이 최소 1조가지 이상의 냄새를 구분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처럼 냄새는 종류가 많은데 분류마저 불가능하니 과학적으로 다루기가 참 힘들다.

커피에서 확인된 휘발성 물질의 숫자

 
자료 : Coffee flavor chemistry, Ivon flament

향은 분류가 불가능하다
세상에 색은 많지만 색은 분류가 된다. 따라서 노란색 계통, 파란색 계통 그리고 중간의 녹색 계통 등으로 단순화가 가능하다. 향도 색처럼 분류가 가능하면 그나마 소통하기가 원활할 것이다. 하지만 분류가 불가능하다. 냄새 분류는 18세기 이후 꾸준히 시도됐다가 지금은 포기한 상태이다.

독일 생리학자 한스 헤닝(Hans Henning)이 1916년에 발표한 분류법은 경험상의 자료를 바탕으로 했고 편리한 시각적 표현, 즉 ‘냄새 프리즘(Odor Prism)’이 겸비돼 있어 관심을 끌었다. 그의 냄새 프리즘은 기하학적으로 깔끔하게 잘 정리돼 있다. 프리즘의 여섯 모서리에는 각각 구체적인 냄새 특징이 놓여 있다. 헤닝은 모든 냄새가 프리즘 상에 위치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각 모서리로부터의 거리는 그 냄새 특징의 상대적 기여도를 가리킨다.

처음에는 열광했지만 이내 그의 이론이 번거롭고 시험할 수 있는 예측을 제시하기에는 너무 애매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리고 유럽의 탁상공론적인 냄새 분류법의 전통에 종지부를 찍었다. 보편적인 냄새 분류법의 추구는 철학적 추론에서 실험적 연구로 완전히 바뀌었고, 이후에는 유럽보다 미국에서 연구가 활발히 이뤄졌다. 시대에 뒤처지긴 했지만 냄새 프리즘은 상징적인 존재로 현대 백과사전과 교과서에 계속 남아 있다.

이후 여러 가지 분류법이 등장했지만 어떤 경우에도 여러 사람이 공유할 정도로 체계적인 분류법은 개발되지 못했고, 오늘날 연구원들은 과거의 포괄적인 분류법 같은 것을 제시하려 하지 않는다. 이처럼 향은 종류가 많고 분류마저 되지 않으므로 개별적으로 다루어야 한다. 도저히 과학적 또는 수학적 도식으로 쉽게 처리가 불가능한 것이다.

유쾌함과 불쾌함에 특별한 차이가 없다
좋고 나쁨의 기준마저 없다는 것이 향을 과학적으로 접근하는데 있어 최대 난점이 아닌가 생각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입으로 느끼는 맛의 90%는 전적으로 향의 몫이다. 그런데 향에 객관적인 좋고 나쁨의 기준마저 없다니 얼마나 난감한 일인가?

어릴 적 시골에 살던 사람에게 흙냄새는 아주 익숙한 것이다. 건조한 날씨가 계속되다가 갑자기 비가 쏟아질 때 시골 마당에서 나는 냄새가 바로 흙냄새다. 바짝 마른 밭을 갈아엎거나 잡초를 뽑을 때도 흙냄새가 난다. 하지만 흙 자체에는 냄새가 없다.

실제로 흙에서 나는 냄새는 대부분 지오스민 냄새이다. 흙속에 사는 방선균이 수분을 만나면 순식간에 지오스민을 방출하는 것이다. 순식간에 발생하는 극미량의 지오스민을 감지하는 것은 인간이 진화과정을 거치며 지오스민에 매우 민감한 후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공기 중 지오스민 농도가 0.005ppb만 넘어도 곧바로 흙냄새를 알아차린다. 이것은 최신의 정밀기기로도 측정이 어려운 적은 양이다.

지오스민은 인체에 해롭지 않고 양도 극미량이다. 하지만 자신이 마실 물에서 흙냄새가 난다면 좋아할 사람은 없다. 그런데 이 냄새를 좋아하기도 한다. 휴양림 토양에서 맡은 지오스민 냄새는 정서안정과 우울증에 효과가 있는 것이다. 실험실에서 지오스민 흡입 전후 뇌파를 분석한 결과, 델타파와 알파파가 증가해 심신이 안정되고 뇌의 이완도와 활성이 증가하는 것은 물론, 집중도는 높아졌고 스트레스는 감소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처럼 같은 물질도 마시는 물에 있으면 악취가 되고 휴양림에 있으면 우리를 기분 좋게 하는 냄새가 되는 것이다. 낙타는 지오스민을 이용해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찾는다는 이야기도 있다. 젖은 땅에서 자라는 스트렙토미세스 균에 의해 지오스민이 생성되고, 낙타는 이것을 아주 멀리서도 쫒아 오아시스를 찾으며, 낙타에 의해 포자가 널리 퍼져 나갈 기회를 갖는다는 것이다.

이처럼 향의 좋고 나쁨은 물질 자체보다 인간의 경험에 있다. 부틸산은 토사물에 있으면 악취이고 치즈에 있으면 치즈 특유의 향취이다. 디아세틸도 적당량은 우유취와 팝콘 냄새지만 과량은 악취이다. 소량의 인돌은 꽃의 향기요 진한 인돌은 불쾌한 냄새이다.

상황뿐 아니라 농도에 따라서도 좋고 나쁨이 바뀐다. 인돌의 경우 농도가 높을 때는 악취인데 희석하면 재스민 꽃향기의 일부가 된다. 동일한 물질이 농도에 따라 전혀 다른 향처럼 느껴지는 현상이 있다.

향기물질은 이처럼 물질 자체로는 좋은지 나쁜지 평가가 곤란하고 적당히 희석되어야 하며 다른 물질과 적절히 조합된 상태에서만 판단 가능하다. 좋은 냄새인지 나쁜 냄새인지의 평가가 물질 자체보다는 주변의 요소에 의해 결정이 되니 정말 향은 과학적으로 접근하기 힘든 대상임에는 분명하다.

향기물질의 희석에 따른 향조의 변화

물질

100%

→ 희석

운데카락톤

기름 내

→ 복숭아 향

다이메틸설파이드

생선조림 향, 김 향

→ 0.1%에서 익은 딸기잼, 연유 등 조리향이 연상된다.

인돌

불쾌한 인분 취

→ 0.0001%에서 재스민, 치자 등의 꽃 향

퍼푸릴머캅탄

강한 불쾌 취

→ 0.001%에서 너트, 커피를 볶을 때 나는 향

데카날

기름 내, 강한 향

→ 0.1%에서 오렌지 과일 향

 
최낙언 시아스 이사
최낙언 시아스 이사
서울대학교와 대학원에서 식품공학을 전공했으며, 1988년 12월 제과회사에 입사해 기초연구팀과 아이스크림 개발팀에서 근무했다. 2000년부터는 향료회사에서 소재 및 향료의 응용기술에 관해 연구했다. 저서로는 ‘불량지식이 내 몸을 망친다’, ‘당신이 몰랐던 식품의 비밀 33가지’, ‘Flavor, 맛이란 무엇인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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