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이 맛을 잘 설명하지 못하지 않느냐는 말을 가끔 듣는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과학이 맛의 30% 이상은 설명하는 것 같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은 그 30%의 10% 즉, 과학이 설명하는 맛의 이야기의 3%도 알고 있지 못한 것 같다. 하여간 과학이 맛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이유의 상당부분이 향과 얽혀 있다. 왜 향을 과학적으로 이해하기 힘든지 아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과학적 접근이 힘든 이유 1. 너무나 사소한 양
커피 한 모금(10g)을 마셨다고 생각하자 _ 10g 커피
이 중 0.1%가 향기성분이라면 0.01g을 마신 것이다 _ 0.01g 커피 향
이 중 1%만 휘발하여 코로 전달되었다고 하자 _ 0.0001g 커피 향이 코로 전달
향기물질은 분자량이 26~300 사이이므로 200이라 가정하면 향료 200g은 아보가도르수 만큼의 향료분자가 존재한다 _ 6.02 × 10^23 향료 분자 수
코에 들어간 커피 향은 0.0001g 이므로 _ 3.01 × 10^17 향료 분자 수
이중 4%가 후각세포에 닿는다면 _ 1.2 × 10^16
즉 12,000,000,000,000,000(1경2000조)개의 분자가 코에 존재하는 1000만개의 후각세포 중 일부를 자극한 결과이다. 실제 분자 숫자를 계산해 보니 사과를 한 입 베어 먹을 때 휘발하는 분자 개수면 생생한 감각을 하기에 충분한 숫자라고 생각되지 않는가?

그림. 냄새분자가 코로 전달되는 경로

 

수천 ㎞ 밖에서 고향인 냇물로 찾아가는 연어나 수 ㎞ 밖에서 암나비를 찾아가는 수나비의 능력도 이런 향기물질의 숫자에 의한 것이다. 보통 식품에 포함된 향은 백만분의 일 단위인 ppm 수준이다. 양은 작지만 숫자는 어마어마한 것이다.

동물 중에서 개 등 네 발 달린 짐승 중에는 인간보다 후각이 매우 민감한 것들이 많은데, 알고 보면 이들이 인간에 비해 덜 둔감한 것이지 놀랍게 민감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개가 인간에 비해 냄새에 민감한 것은 단지 인간에 비하여 후각세포가 많기 때문이다. 면적도 10배, 밀도도 10배쯤 된다. 이런 개의 코도 ㎝당 냄새 분자가 최소한 수만 개는 넘어야 감지한다.

향은 이처럼 적은 양의 분자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라 분석도 쉽지 않고 다루기도 쉽지 않다. 그리고 적은 양보다 훨씬 심각한 어려움은 그 역치의 엄청난 차이에 있다.

과학적 접근이 힘든 이유 2. 역치가 너무 다양하다
역치(閾値ㆍthreshold)는 생물체가 자극에 대한 반응을 일으키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농도이다. 이 역치가 같다면 농도만 알면 된다. 하지만 향의 역치 차이는 무려 100만 배에 달한다. 매니큐어를 지우기 위해 쓰이는 아세톤의 냄새는 꽤 심한 편이다. 하지만 우리가 먹는 음식 속의 향기성분은 이보다도 훨씬 강력하다. 흔한 박하의 멘톨도 375배나 강하고 부틸머캅탄은 5만 배나 강하다. 따라서 향에서 중요한 것은 함량보다 역치인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분자의 특징에 이런 역치의 차이를 설명할 특별한 요소는 없다. 역치는 단지 후각세포의 세포막에 존재하는 G수용체(GPCR)와 결합력이 강한 것이고, 이 감각세포와 뇌의 후각부위가 민감하게 연결된 차이가 있을 뿐이다.

후각세포의 G수용체는 열쇠(짝이 되는 향기물질)로 켜지는 스위치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스위치는 한 번 켜면 계속 켜져 있는 스위치가 아니고, 냄새물질과 결합한 동안만 켜 있는 스위치이다.

모든 분자는 격렬하게 진동하고 움직인다. 그러다 요행히 짝이 되는 G수용체와 결합하여 스위치를 켰지만 금방 떨어져 나가려는 성질도 가졌다. 수용체와 냄새분자는 정전기적 힘에 의해 결합하는데 자석의 작용과 비슷하다. 가까운 거리에 위치하여 방향과 모양이 적절한 경우에만 결합한다. 자력이 강하면 강하고 튼튼하게 결합하듯 냄새분자와 G수용체가 결합력이 강하면 오래 결합한다.

그리고 모든 분자는 끊임없이 진동한다. 즉, 모든 것을 계속 흔들어 분리되려고 한다. 그리고 주변의 분자는 모든 방향으로 항상 움직이고 있고, 이웃과 충돌한다. 이런 요동과 충돌은 분자의 공유결합을 깰 정도로 강하지는 않지만, 다른 분자가 살짝 달라붙은 정전기 결합은 충분히 떨어뜨릴 수 있다. 그래서 아주 짧은 간격을 두고 붙었다 떨어지기를 반복한다. 결합력이 강하면 분리될 빈도는 당연히 낮아지게 되고 강한 신호를 주게 된다.

결합시간을 좌우하는 결합력은 분자마다 차이가 매우 심하다. 그리고 감지한 신호는 효소의 양에 따라 증폭하는 정도가 달라진다. 또 신경세포의 취합과정에서 증폭 또는 억제가 일어난다. 이런 결합력 차이, 증폭 정도, 신호 연합, 노이즈 제거, 콘트라스트 강조 과정에 의해 반응이 1~100만 배 차이가 발생한다.

그림. 구운 고기에서 발견된 향기물질의 작용기별 역치의 범위

 
자료 : Food chemistry 4판, H.D. Belitz 외

아래 표는 술에 존재하는 향기물질의 역치 차이이다. 술에서 에탄올의 역치는 100㎎/ℓ 즉, 0.1g/1000g, 0.01g/100g이다. 알코올이 0.01%는 있어야 냄새로 감지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정도는 놀랄 정도로 약한 것이다. 흔한 향기물질인 리모넨은 0.01㎎/ℓ이니 에탄올보다 1만 배 강한 것이고, Methylthiol은 0.00002/ℓ이니 5000만 배 강하고, 1-p-Menthene-8-thoi은 0.0000002/ℓ이니 50억 배나 강한 것이다. 사실 알코올은 다른 향기물질에 비하면 무향이라고 할 정도로 향이 약하다.

그러면 필젠(Pilsener) 맥주에서 맥주 향을 좌우하는 물질은 무엇일까? 놀랍게도 알코올이다. 다른 향기물질에 비해서는 놀랍게 많은 양이라 향기에 기여도(Aroma value)가 1639로 1등이다. 두 번째로 기여하는 향기물질은 β-다마세논 Damascenone으로 기여도가 575이다. 그런데 양은 0.032ppm이니 에탄올의 1/13만에 불과하다. 맥주에 에탄올 다음으로 비율을 차지하는 향기물질이 3-Methylbutanol(49.6ppm)인데 기여도는 9번째에 불과하다. 이 물질도 양은 β-다마세논의 2만 배가 넘게 많지만 β-다마세논에 비해 역치가 1만7800배나 작기(향이 강하기) 때문에 기여도는 1/11에 불과하다.

이처럼 향은 향료물질의 양보다는 역치가 훨씬 중요한 역할을 한다. 향이 워낙 미량으로 작용하기에 분석하기도 힘들고 분석을 했다고 해도 물질마다 역치가 워낙 차이가 많아서 역치를 반영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이 향료를 과학적으로 처리하기 쉽지 않은 이유가 된다. 하지만 이 정도는 극복하기 힘든 진짜 어려움은 아니다.

표. 향기물질의 역치

화합물질

역치 (ppm)

Ethanol

100

Maltol

9.0

Furfural

3.0

Hexanol

2.5

Benzaldehyde

0.35

Vanillin

0.02

Raspberry ketone

0.01

Limonene

0.01

Linalool

0.006

Hexanal

0.0045

2-Phenylethanal

0.004

Methylpropanal

0.001

Ethylbutyrate

0.001

(+)-Nootkatone

0.001

(-)-Nootkatone

1.0

Filbertone

0.00005

Methylthiol

0.00002

2-Isobutyl-3-methoxypyrazine

0.000002

1-p-Menthene-8-thiol

0.00000002

자료 : Food chemistry 4판, H.D. Belitz 외

표. 필젠(Pilsener) 맥주의 주요 향기물질

향기물질

농도(ppm)

기여도

Ethanol

4080

1639

(E)-β-Damascenone

0.0023

575

(R)-Linalool

0.045

321

Acetaldehyde

5.1

204

Ethyl butanoate

0.198

198

Ethyl-2-methylpropanoate

0.0032

160

Ethyl-4-methylpentanoate

0.00028

93

Dimethylsulfide

0.059

59

3-Methylbutanol

49.6

50

2-Methylbutanol

14.4

45

Ethylhexanoate

0.205

41

4-Hydroxy-2(or 5)-ethyl-5(or 2)-methyl-3(2H)-furanone

0.019

17

2-Phenylethanol

15.1

15

4-Hydroxy-2,5-dimethyl-3(2H)-furanone

0.312

13

Diethoxyethane

0.050

10

3-Methylbutanal

0.004

10

3-Methyl-2-buten-1-thiol

0.00001

8

3-(Methylthio)propanol

0.991

4

3-Hydroxy-4,5-dimethyl-2(5H)-furanone

0.001

3

Butyric acid

1.8

2

Ethyloctanoate

0.160

2

3-Methylbutyric acid

0.855

1

4-Vinyl-2-methoxyphenol

0.137

1

자료 : Food chemistry 4판, H.D. Belitz 외

 
최낙언 시아스 이사
최낙언 시아스 이사
서울대학교와 대학원에서 식품공학을 전공했으며, 1988년 12월 제과회사에 입사해 기초연구팀과 아이스크림 개발팀에서 근무했다. 2000년부터는 향료회사에서 소재 및 향료의 응용기술에 관해 연구했다. 저서로는 ‘불량지식이 내 몸을 망친다’, ‘당신이 몰랐던 식품의 비밀 33가지’, ‘Flavor, 맛이란 무엇인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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