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간과 두려움과 자의식이 사라졌다는 느낌을 얻으려면 뇌의 특정회로가 차단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어떤 회로인가 하는 점이었다. 위협적 상황을 감지하고 공포를 느끼게 하는 소뇌편도의 활동이 차단돼야 한다. 공간 감각을 관장하고 자아와 세계를 명확히 구별하게 해주는 두정엽 회로도 멈춰져야 한다.
탈 억제의 기쁨의 가장 극단적인 모습의 하나가 법열의 기쁨일 것이다. 어떤 사람은 그것이 우연히 찾아오기도 하지만 대부분 사람은 극도의 수행 즉, 몰입에 의해 겨우 도달하기도 하며 끝내 도달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우연히 그걸 느낀 사람은 그로부터 신앙적인 의미를 찾기도 한다. 그런데 법열과 같이 신비하고 드문 현상도 지금은 뇌 과학이 전모를 설명하고 있다.

20년 전 제임스 오스틴 박사는 런던에서 지하철을 기다리다가 철로에서 시선을 돌려 템스 강을 바라보았다. 이 신경학자의 눈에 들어온 풍경은 평소와 다름없었다. 지저분한 지하철역, 칙칙한 건물 몇 채, 찌푸린 잿빛 하늘 등등. 그는 약간 멍한 정신으로 지금 자신이 가고자 하는 선불교 명상센터에 대해 생각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전에 겪어본 적이 없는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다.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의식과 주위 세계에 대한 의식이 새벽안개처럼 사라져버렸다. 그는 “사물의 참모습이 보였다”라고 당시를 회상한다.

“나라는 인식은 모두 사라졌다. 시간이 존재하지 않았고 영원의 느낌이 왔다. 그 전에 품고 있던 열망, 혐오감, 죽음에 대한 공포, 그리고 자아개념이 사라졌다. 나는 사물의 궁극적 본질을 파악하는 은총을 얻게 됐다.”

이런 체험을 하면 보통은 신비한 체험이니 영적 순간이라 생각할 수 있겠지만 오스틴 박사의 생각은 범인들의 반응과는 달랐다. 그는 그 순간을 초현실의 증거로 보지 않았고 신의 증거라고는 더욱 더 생각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그것이 ‘뇌가 존재한다’는 증거 즉, 그것마저 뇌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지하철역의 체험을 계기로 신비한 영적 체험을 신경학적으로 연구하게 됐다.

시간과 두려움과 자의식이 사라졌다는 느낌을 얻으려면 뇌의 특정회로가 차단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어떤 회로인가 하는 점이었다. 위협적 상황을 감지하고 공포를 느끼게 하는 소뇌편도의 활동이 차단돼야 한다. 공간 감각을 관장하고 자아와 세계를 명확히 구별하게 해주는 두정엽 회로도 멈춰져야 한다. 시간 감각을 관장하고 자기인식을 가능하게 하는 전두엽과 측두엽 회로도 분리돼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는 그런 것을 연구하여 1998년 <선과 뇌(Zen and the Brain)>라는 844쪽짜리 논문을 매사추세츠 공대 출판부를 통해 발간했다. 그리고 그 뒤로 점점 더 많은 과학자가 신경생물학 차원에서 종교와 영성을 연구하는 신경신학에 뛰어들었다.

“내 몸속에 에너지가 집중된 뒤 무한한 공간으로 뻗어나갔다가 돌아오는 느낌이 들었다. 정신의 이원세계가 이완되고 진한 애정이 느껴졌다. 내 주위의 경계를 떼어내 버리고, 명확하고 투명하며 즐거운 환희의 경지와 어떤 에너지에 닿는 느낌이 들었다. 모든 사물에 연결된 깊고 심오한 느낌도 들면서, 실은 진정하게 분리된 적이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이클 J. 베임 박사가 불교명상을 수련하면서 초월적 순간에 오는 느낌을 묘사한 것이다. 그는 14세인 1969년부터 티베트 불교 명상을 수련해왔다. 어릴 적부터 신의 존재에 대해 궁금증을 갖고 있던 그는 동료인 앤드류 뉴버그에게 자신의 뇌를 연구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래서 영적 체험 도중 뇌의 어느 부위가 활성화되는지를 알기 위해 영상기술을 활용했다.

연구를 할 때 베임 박사는 다른 티베트 불교 신자 7명을 추가했다. 모두들 숙련된 명상가였다. 촛불 몇 개만 켜고 재스민 향이 은은하게 퍼지는 작고 어두운 방바닥에 앉아 명상을 시작했다. 옆에는 노끈을 놓아두었다. 그는 본인이 말하는 진정한 내적 자아가 발현될 때까지 의식을 가라앉혔다. 그리고 시공간을 초월한 느낌이나 세상 만물의 일부가 된 느낌이 드는 영적 집중도가 정점에 이르렀을 때 옆의 노끈을 잡아당겼다. 그 순간 베임의 왼팔에 닿아 있는 정맥주사 라인에 방사성 추적자를 주입했다. 잠시 후 뉴버그는 SPECT(단일광자단층촬영) 기기로 뇌 속 피의 흐름을 추적했고, 그 피의 흐름으로 뇌 신경활동을 관찰했다.

예상대로 주의력을 관장하는 전전두엽피질이 붉게 변했다. 베임은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 두드러진 현상은 뇌의 특정 부위가 비활성화 된다는 점이었다. 뇌의 상부와 후부를 포괄하는 상두정엽의 신경다발이 어두워졌다. 공간과 시간 정보, 공간 속에서 몸의 위치와 방향에 대한 정보를 처리하는 부위이다. 결국 이 부위는 자신의 몸과 외부세계의 경계선을 인식하게 해준다.

뉴버그는 “깊은 명상에 빠질 때처럼 이 부위로 가는 감각정보를 차단하면 뇌는 자아와 비자아를 구분할 수 없게 된다”라고 말한다.

좌측 위치, 방향 영역이 작동하지 않으면 자아와 세계 사이의 경계선을 찾을 수 없게 되어 뇌는 만인 및 만물과 완전히 뒤섞인 자아를 인지할 수밖에 없어진다. 마찬가지로 우측 위치, 방향 영역에 감각정보가 주어지지 않으면 사람은 무한한 공간의 느낌을 갖게 되어 명상자는 자신이 무한대의 공간에 이르렀다고 느낀다. 그때 새로운 경험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며 영적 교감과 평화를 느끼거나 자신의 곁에 신(하느님)이 와 있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고 말한다. 뉴버그가 법열이 일어날 때 뇌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모두 정리해 정밀한 신경전달 경로 모델을 발표했다. 가장 신비한 현상 중 하나인 법열마저 구체적으로 뇌의 어떤 부위가 어떻게 작동하여 일어난 것인지 규명되고 있는 것이다.

 
최낙언 시아스 이사
최낙언 시아스 이사
서울대학교와 대학원에서 식품공학을 전공했으며, 1988년 12월 제과회사에 입사해 기초연구팀과 아이스크림 개발팀에서 근무했다. 2000년부터는 향료회사에서 소재 및 향료의 응용기술에 관해 연구했다. 저서로는 ‘불량지식이 내 몸을 망친다’, ‘당신이 몰랐던 식품의 비밀 33가지’, ‘Flavor, 맛이란 무엇인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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