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끼 식사 전부를 하나의 믹서에 넣고 갈면 어떻게 될까? 음식의 성분과 양은 그대로 남아도 맛은 대부분 사라져 버린다.
예술의 원리마저 탐구되는 현실에서 맛에 제대로 된 이론이 없다는 것은 얼마나 안타까운 현실인가? 지금도 수만 가지의 요리가 만들어지고 새로 개발되고 있지만 맛이 없는 식품은 바로 퇴출된다. 그런데도 맛에 대한 제대로 된 설명은 별로 없다. 착각이 많을 뿐이다. 사실 맛도 완벽한 착각 즉, 환각의 예술이다.

불 끄면 사라지는 색은 확실히 뇌가 만든 것이지 실제로는 없는 것이다. 아주 넓은 파장의 빛이 지구의 표면에 닿는데 우리는 그중에서 아주 좁은 범위의 파장을 3가지 시각수용체를 통해 차이를 감지하고 뇌의 V4영역에서 색을 입혀야 우리는 비로소 세상을 색으로 감지한다. 실제 파장만 약간 다르지 색은 없는 것이고 우리가 보는 색은 오로지 뇌에서 만든 것이다.

맛 또한 마찬가지다. 설탕이 단 것이 아니라, 우리의 혀의 미각수용체 중 단맛을 감지하는 수용체가 설탕과 결합할 뿐이다. 그리고 수용체는 뇌에 다른 수용체와 똑같은 전기적 신호를 보낸다. 단지 뇌의 목적지가 다를 뿐이다. 그래서 똑같은 글루탐산을 감지할 수 있는 수용체라도 혀에 있으면 감칠맛, 내장에 있으면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감칠맛, 뇌의 시냅스에 있으면 단지 흥분성 신경전달물질일 뿐이다. 이처럼 색이나 맛은 우리의 몸이 그렇게 느끼는 것이지 실제 그 물질이 가지고 있는 특징이 아니다.

분자에는 맛도 향도 색도 없다. 수천만 가지 화학물질 중에서 극히 일부 생존에 필요가 있는 분자만 해당하는 감각수용체를 만들어 내 몸이 그렇게 느낄 뿐이다. 우리 몸이 왜 그런 물질만 그렇게 느끼도록 진화했을까 하는 것이 올바른 질문이지, 이 물질이 왜 달고 짠맛이 날까 하는 것은 완전히 틀린 질문이다. 세상에 인간을 위해서 만들어진 것은 없다. 우리가 찾아서 느끼고 쓸 뿐이다. 자연의 극히 일부인 내게 필요한 것만 실용적으로 느낀다.

이런 기능은 오랜 진화의 세월로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만들어진 것이고, 유지하는데 비용도 많이 든다. 따라서 생존에 적절한 신호만 감지한다. 더구나 우리는 식품의 본질인 98%는 느끼지 못하고, 고작 2%만을 맛과 향 그리고 색으로 느끼면서 감탄하고 실망한다. 지나치게 환각에 몰입된 것이다.

세상에 정말 다양한 음식이 있다. 그런데 한 끼 식사 전부를 하나의 믹서에 넣고 갈면 어떻게 될까? 음식의 성분과 양은 그대로 남아도 맛은 대부분 사라져 버린다. 음식의 가치가 성분이거나 안전, 영양, 건강 등이라면 우리는 이런 식품을 택해야 한다. 이 음식은 보관과 취급도 편하고 음식물 쓰레기도 안 나오는 가장 친환경적인 식품이기도 하다. 더구나 음식을 갈아먹으면 포만감도 가장 오래 유지되기에 다이어트에도 좋다.

그런데 왜 식품의 성분이 가치의 전부인양 하면서 이런 음식은 견디지 못하는가? 믹서에 갈 때 사라지는 것은 성분이 아니라 정보다. 성분은 음악의 ‘도레미파솔라시’나 피아노 건반에 해당하는 것이고, 감동은 음의 배열 즉, 연주에서 나온다. 믹서로 음식을 갈면 이런 리듬은 사라지고 음의 평균이 ‘파’라고 계산하여 계속 ‘파’만 치면서 이 노래가 좋지 않느냐고 하는 셈이다.

식품에 성분(효능)만을 찬양하는 사람은 그림의 가치가 물감과 종이에 있다고 하는 것과 같다. 물론 물감의 선명하고 화려한 색상 자체에도 약간의 감동은 있지만 대부분의 감동은 물감이 멋진 그림으로 조화되었을 때 있는 것이다. 그것도 경험한 감동의 일부일 뿐이다. 예전에 TV나 비디오가 나왔을 때 모두들 금방 영화관은 사라질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영화관은 더 번창했다. 영화관은 단순히 내용만 이해하는 곳이 아니라 영화관이라는 문화를 소비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음악은 작은 스피커로 즐길 수 있지만 많은 비용과 시간을 들여서 직접 콘서트 현장을 찾기도 한다. 여건에 맞게 자유롭게 즐길 뿐 진위를 따지지 않는다. 가수 노래를 직접 들어야 진짜고, TV 속 소리는 가짜라고 하지 않는다. 오감 중에서 시각과 청각은 이렇게 진위를 따지지 않고 자유롭게 즐기는데 미각과 후각은 한편으로 즐기면서 한편으로 진위 여부를 따지느라 시끄럽다. 실제로는 차이가 없는데도 말이다.

이제 식품도 좀 다른 환각의 예술처럼 제대로 이해하는 시도가 늘었으면 좋겠다. 아무 차이 없는 성분에 매달릴 것이 아니라 우리가 왜 유독 그런 음식을 좋아하고 그럴 때 맛있다고 하는지 우리 DNA에 내제한 맛의 쾌감의 구조에 대한 과학적인 탐구를 시작했으면 좋겠다.

 
최낙언 시아스 이사
최낙언 시아스 이사
서울대학교와 대학원에서 식품공학을 전공했으며, 1988년 12월 제과회사에 입사해 기초연구팀과 아이스크림 개발팀에서 근무했다. 2000년부터는 향료회사에서 소재 및 향료의 응용기술에 관해 연구했다. 저서로는 ‘불량지식이 내 몸을 망친다’, ‘당신이 몰랐던 식품의 비밀 33가지’, ‘Flavor, 맛이란 무엇인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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