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각적 환각 환자들은 때때로 환각 중에 글자, 인쇄된 선, 음표, 숫자, 수학기호 같은 다양한 부호를 본다고 한다. 자연계에는 없는 무늬인데 환각에서 보인다는 것은 우리가 원래 뇌에서 그런 무늬를 좋아하거나 잘 만들기에 그것을 표출해 기하학적 무늬나 숫자를 그런 식으로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눈에 보이는 대상의 가치는 대상 자체보다는 보는 사람의 시선의 자질에 달려 있다.” _ 알랭 드 보통

예술이 가상화의 세계, 환각의 즐거움이라면 여러 가지 다양한 환각 중에서 어떤 식의 환각일 때 우리는 즐거워할까? 거기에도 뭔가 규칙이나 원리가 있지 않을까?

예술에서 배경이 되는 규칙에 대한 탐구는 별로 보지 못했는데 라마찬드란 박사는 <명령하는 뇌, 착각하는 뇌>에서 예술의 원리를 뇌 과학 측면에서 조망한다.

사실 시각디자인 책에도 뇌 과학의 원리가 꽤 등장한다. 객관화하기 힘든 개인적인 감각의 창의적 분출이라 생각했던 예술마저 뇌 과학 측면에서 그 배경을 설명하려는 시도가 있다는 것이 나는 참 좋았다.

물론 예술의 전모를 과학으로 온전히 설명하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그런 분야마저 탐구하고 해석해보고자 노력한다는 자체가 얼마나 참신한가?

이런 시도가 예술에는 별로 영향을 미치지 않을지 몰라도 우리가 우리 자신을 이해하는 것에는 많은 도움을 줄 것이다. 나는 이런 시도가 더 많아져 요리가 주는 맛의 환각도 제대로 이해하는 시기가 빨라졌으면 좋겠다.

아무런 규칙이 없어 보이는 시각예술에서 쾌감의 원리, 패턴을 알아보자.

예술의 바탕이 되는 쾌감의 기본 패턴
뇌는 복잡한 자극보다 약간 정형화 또는 단순화된 패턴의 자극을 좋아한다. 사실 자연은 아주 랜덤하고 복잡하다. 그런 자연을 있는 그대로 판단하고 기억하기 힘들다. 그래서 뇌는 그 속에 숨겨진 패턴을 찾아 단순화시키려 노력한다.

뇌의 시각인식의 첫 단계도 전체적인 모양을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외곽선의 추출과 인식이기도 하다. 이런 단순화를 통해 패턴(절대표상)을 찾으면 절대표상과 차이점만 기억하면 되므로 정보는 많이 단순화되고 간편해진다.

뇌가 사용하는 간편화의 기본적인 방법이 그룹화(같은 것끼리 묶기)와 분리(핵심요소만 남기고 제거)이고 대칭, 반복, 리듬을 이용해 단순화하는 것이다. 뇌의 이런 작업 방식의 특징은 환각에서 마저 나타난다.

시각적 환각 환자들은 때때로 환각 중에 글자, 인쇄된 선, 음표, 숫자, 수학기호 같은 다양한 부호를 본다고 한다. 자연계에는 없는 무늬인데 환각에서 보인다는 것은 우리가 원래 뇌에서 그런 무늬를 좋아하거나 잘 만들기에 그것을 표출해 기하학적 무늬나 숫자를 그런 식으로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현관과 주방의 타일, 커튼과 벽지의 무늬, 옷의 체크무늬 등 생활 속의 여러 문양은 환각에 흔히 등장하고 고대의 미술, 도자기, 건축 등에 수만 년에 걸쳐 거의 모든 문화에서 나타난 것이기도 하다.

결국 우리 뇌에 내재된 시각의 모듈에 이런 기능이 있고, 환각에서 자주 등장하고 그래서 우리는 인류 역사의 첫 순간부터 지금까지 계속 존재해 온 것인지도 모른다.

신경학자들은 시각 뉴런 집단에 일어나는 자기조직화 활성을 시지각의 선행조건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자발적인 자기조직화는 눈의 결정체 형성, 파도의 넘실거림과 소용돌이, 여러 화학적 반응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이런 자기조직화가 시각에서 여러 기하학적 도형과 무늬를 만들고 환각으로 표출된다면 이를 아는 것이 우리가 신경계 작동의 원리와 예술의 원리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디자인의 원리에 흔히 적용되는 것이 ‘게쉬탈트 원리(gestalt principles)’이다. 근접성(Proximity), 유사성(similarity), 방향의 연속성(continuation), 폐쇄(closure), 공동운명(uniform destiny) 등이 포함된다.

이 원리가 작동하는 배경에도 뇌의 간편성 추구가 들어있다. 유사성으로 그룹을 지음으로써 정보처리가 쉬워지는 것이다.

유사성으로 그룹 짓기 기능이 근본적인 이유는 잘 분간하기 어려운 숲속 배경 속에서 숨은 동물 찾기와 유사하기 때문이다. 포식자나 먹잇감이 식별되면 보상적 기쁨을 줄 것이다. 틈을 메우고 비슷한 것끼리 묶기를 좋아하는 뇌의 속성이 여기에서 기인할 것이다.

ㄱ) 격리와 대조에 의한 단순화(Simple by isolation & contrast)
녹색이 가득한 나무나 풀밭에 빨갛게 익은 과일이 있다면 바로 눈에 띌 것이다. “Less is more.” 모자라는 것이 더 낫기도 하다. 캐리커처로 윤곽만 그린 그림이 더 호소력이 있고, 피카소의 그림처럼 불필요한 요소를 제거해 명성을 얻었다.

사실 뇌세포의 가장 기본적인 간편화 전략이 ‘외측 억제(Lateral inhibition)’ 기능이다. 외측 억제와 대조는 특징만을 인지하고 기억하거나, 배경에 놓인 대상을 식별하는데 도움이 된다. 사실 우리 인간의 감각기관은 전체를 파악하는 기관이라기보다 차이를 감지하는 기관이다. 미각은 화학물질의 차이, 청각은 파동의 차이, 시각은 빛의 파동 차이를 감지한다.

ㄴ) 대칭, 반복, 리듬, 질서
반복은 한 가지만 알면 나머지는 저절로 풀리므로 간편함 때문에 뇌가 좋아한다. 반복적 요소들이 리듬 있게 배열되면 질서가 생긴다. 그래서 질서도 좋아하고 환각에서도 반복은 아주 자주 등장한다. 반복 중에서 가장 독특한 반복이 대칭일 것이다. 그리고 자연에 아주 흔한 것이기도 하다.

생명은 좌우 대칭이 많고 이 대칭은 여러 정보의 처리에 기본이 된다. 우리의 뇌가 대칭을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은 대칭 속에 내재된 건강함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미인의 얼굴에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기본조건이 대칭이다. 대칭을 아름답게 느끼고 아름다운 것은 좋은 것이라는 잠재의식을 갖고 있기 때문에 호감을 느끼게 된다. 짝짓기 게임에서 신체의 좌우 대칭이 잘 맞아야 유리하다. 비대칭은 유전적으로 불량한 출생이나 살면서 불량해진 건강상태, 기생충 등 질병에의 감염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가임기에 있는 여성은 신체가 대칭적인 남성의 냄새를 더 선호한다고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맨눈으로는 신체 양쪽의 차이를 감지하기 어렵다. 하지만 우리의 신체기관은 좌우에 미세한 차이가 있고 이 차이의 냄새를 여자들은 무의식적으로 구분한다는 것이다.

동물의 경우 신체 대칭성의 저하가 근친교배, 돌연변이 등에 의한 유전적 이상의 결과라는 것이 오래전부터 알려져 있고 대칭성이 낮으면 성장률 저하, 수명 단축, 번식력 감소의 전조가 된다. 그래서 동물도 대칭성을 좋아한다. 조류와 어류는 물론이고, 곤충들도 역시 경이로운 대칭의 몸매를 지니고 있다. 생명체만이 아니다. 자연의 모든 물질의 근본에는 대칭성이 있다.

 
최낙언 시아스 이사
최낙언 시아스 이사
서울대학교와 대학원에서 식품공학을 전공했으며, 1988년 12월 제과회사에 입사해 기초연구팀과 아이스크림 개발팀에서 근무했다. 2000년부터는 향료회사에서 소재 및 향료의 응용기술에 관해 연구했다. 저서로는 ‘불량지식이 내 몸을 망친다’, ‘당신이 몰랐던 식품의 비밀 33가지’, ‘Flavor, 맛이란 무엇인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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