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단계적 처리에 익숙해져서 뇌의 되먹임 구조에 별로 주목하지 않는 것 같다. 하지만 생물학적 현상은 우연히 있는 것이 드물다. 뇌의 신경망 연결은 기본적으로 되먹임 구조로 되어있다고 하니 우선 되먹임 구조에 주목해야 할 것 같다. 뇌의 기능은 하드웨어적 즉, 신경세포의 배선에 의한 것이지 의지로 가능한 것이 아니다. 정말 다양하게 배선된 시냅스망의 범주에서 선택이 가능할 뿐이다.

따라서 냄새의 피로현상, 감각 채움 현상 등이 뇌 안에 무슨 또 다른 지능체(의식)가 있어서 가능한 것이 아니고 오로지 신경세포의 시냅스의 연결을 통해 행해진다. 우리의 생각과 행동은 나름 체계도 있고 일관성도 있어서 뇌의 중앙에 책임을 맡고 통제하는 요소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자연스럽지만 사실상 책임을 지는 중앙장치는 없고 분산되어 있다. 오히려 인터넷의 작동과 비슷하다. 여러 모듈이 있고 지켜야할 기본 규칙만 지키면 하나의 유기체처럼 자유롭고 자연스럽게 작동한다.

세계적 철학자이자 인지과학자인 대니얼 데닛은 감각질 같은 것은 없다고 했다. 즉 뇌의 한가운데 앉아 뇌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관찰하고 통제하는 ‘난쟁이(homunculus)’같은 의식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예전에 사람들은 흔히 감각 입력들이 모이고 통합되고 상영되는 내적 자아의 공간이 있다고 믿어왔다. 하지만 그는 실제 뇌에는 그런 장소가 없으며, 의식은 뇌의 정보가 다양한 메커니즘을 통해 분산적으로 처리되고, 연속적으로 생성ㆍ편집되는 이야기들의 흐름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우리는 보통 스스로를 ‘단일한 의식을 가진 행위자’라고 느낀다.

데닛의 설명에 따르면, 그런 착각에 빠지는 이유가 뇌에서 수많은 원고(또는 이야기)가 병렬적으로 처리되는 과정에서 하나의 이야기만 채택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미국 드라마 제작은 한 편의 에피소드를 위해 여러 명의 작가가 각자의 스토리로 경쟁하고 경합을 통해 최고의 스토리가 선정되면, 나머지 모든 작가가 합류해 세련되게 다듬는다고 한다. 우리의 뇌도 무수한 선택이 가능하지만 기억이 만든 뇌의 회로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흐름대로 흐른다. 딱히 통합의 주체가 없고 매번 스토리가 편집되고 달라지지만 적절히 인과관계가 추적되므로 우리는 마치 단일한 의식 즉, 내부에 모든 것을 관찰하고 통제하는 작은 난장이가 있는 것처럼 행동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우리가 자유롭게 생각한다고 착각하지만 경험이 만들어 놓은 수많은 시냅스 경로 가운데 한 가지가 선택된 것이다. 뇌는 철저히 하드웨어인 생물학적 기반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생각하고 그 의미를 판단해야 할 것 같다. 내가 보기에 생물학적 실제이지만 별로 중요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되는 것이 ‘되먹임 구조’이다. 시각의 모든 모듈은 되먹임 구조로 되어있다. 그중 가장 놀라운 되먹임은 외측 슬상핵(LGN)에 되먹임이다. 각막의 화소수는 1억2600만 화소지만 126:1로 축소되어 실제 뇌로 전달되는 것은 불과 100만 화소이다. 백만 화소로 레티나 화질을 구사하는 증강 시각인 것이다. 정말 놀랍지 않는가? 지금 당신의 눈앞에 펼쳐진 이 선명한 세상이 800만 화소의 휴대폰 카메라의 해상력보다 훨씬 형편없는 화소수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에 대해서 말이다.

눈에 시신경이 1억2000만 개가 있지만 실제 시각영역으로 전달되는 것이 100만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생리학 교과서에서나 찾아볼 수 있고, 전혀 널리 알려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도 놀랍기는 하다. 그런데 LGN에는 눈에서 온 정보 외에 시각피질에서 오는 정보가 무려 400만이 추가된다고 한다. 눈에서 오는 정보 100만 화소에 시각피질에서 오는 400만 화소를 추가하여 500만 화소 정보를 다시 1차 시각 피질에 보낸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황당한 사건인가? 눈에서 오는 신호는 고작 20%이고, 80%는 뇌에서 온 신호를 바탕으로 우리의 시각의 인식이 시작된다니 말이다. 정말 놀라운 피드백이다. 이런 피드 루프는 뇌의 어디에나 있다. 맛에서도 그렇다.

후각은 후각 망물에서 편도체, 편도체에서 다시 선조체로 연결되고, 선조체에서 다시 전두엽 피질로 이어진 신호가 쾌감중추와 심지어 후각 망울까지 다시 이어진다. 수많은 되먹임 루프가 형성된 것이다. 여기서 놀라운 효과가 일어날 수 있다. 편도체와 해마에서 전달된 포만감을 알리는 호르몬 신호가 음식 냄새와 결합하면서 몸에서 느껴지는 감각이 달라진다. 다시 말해서, 필요하면 뇌는 강하게 냄새를 느끼고 필요하지 않으면 냄새를 약하거나 무관심하게 느끼는 것이 피드백 회로에 의해 하드웨어적으로 뇌에 배선되어 있다는 것이다. 입력이 결과이고 결과가 입력을 제어하는 관계인 셈이다.

 
최낙언 시아스 이사
최낙언 시아스 이사
서울대학교와 대학원에서 식품공학을 전공했으며, 1988년 12월 제과회사에 입사해 기초연구팀과 아이스크림 개발팀에서 근무했다. 2000년부터는 향료회사에서 소재 및 향료의 응용기술에 관해 연구했다. 저서로는 ‘불량지식이 내 몸을 망친다’, ‘당신이 몰랐던 식품의 비밀 33가지’, ‘Flavor, 맛이란 무엇인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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