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새가 단순히 감각의 결과물이 아니고 코로 맡은 냄새를 바탕으로 미러링으로 그 냄새를 파악한다는 것의 강력한 증거는 환후이다. 시각의 환각이 환시라면 후각의 환각이 환후이다. 사실 보통 사람이 보통 상황에서 냄새를 상상하는 능력은 너무나 약하다. 거의 없다고 할 수도 있다.

우리가 어떤 장면(시각)이나 소리(청각)를 상상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냄새(후각)는 거의 상상해 내지 못한다. 하지만 상상으로 냄새를 맡는 능력도 현실이고 환후도 현실이다. 다음은 <환각>에 등장하는 고든 C.가 고백하는 자신의 환후 증세이다.

“눈앞에 없는 물건의 냄새를 맡는 것은 내 삶의 일부였다. 예를 들어 오래전에 돌아가신 할머니를 생각하고 있으면, 할머니가 애용하던 분가루 냄새가 즉시 나의 감각기관에 완벽하게 되살아난다. 누군가에게 라일락이나 특정한 꽃에 대해 편지를 쓸 때 나의 후각은 어느덧 그 향기를 만들어낸다. 그렇다고 해서 ‘장미’라는 단어를 쓰면 그 향기가 난다는 말은 아니다. 장미든 무엇이든, 그와 연관된 구체적인 사건을 회상해야 그런 효과가 일어난다. 나는 이런 능력을 아주 당연하게 여겼고, 10대 후반이 되어서야 그것이 모두에게 있는 정상적인 능력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지금은 그 능력이 나의 특별한 뇌에 주어진 멋진 재능이라고 여긴다.”

헤더 A.는 후각을 잃어 자신의 삶이 근본적으로 피폐해졌음을 깨닫고 사람, 책, 도시, 봄날의 냄새를 그리워했다. 그는 행여 잃어버린 감각이 되돌아올지 모른다는 기대를 버리지 않았다. 그리고 정말 몇달 후 감각이 돌아온 것 같았다. 놀랍고 기쁘게도 보글보글 끓고 있는 모닝커피의 냄새가 코끝을 자극했다. 그는 내친김에 여러 달 전에 끊었던 파이프 담배를 빨아보았다. 떨리는 가슴을 안고 신경과 의사를 찾아갔지만, 세밀하게 검사를 받은 후 회복의 기미는 없다는 말을 들었다. 환후를 경험한 셈이다.

시각과 청각은 단지 파장을 감지하는 것이다. 그래서 디지털화도 가능한 것이고 환각이 있다는 것도 이해하기 쉽다. 그런데 후각과 미각은 분자의 감각이다. 그럼에도 뇌는 태연하게 존재하지 않는 냄새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뇌에 존재하는 냄새를 만들어 내는 기능이 후각을 통해 들어오는 냄새와 일치하는 그림을 그려봄으로써 ‘아, 이것이 무슨 냄새구나’라고 판단한다는 것이 나의 추정이다. 미러링은 시각뿐 아니라 후각에도 있고 다른 감각에도 있다.

 
최낙언 시아스 이사
최낙언 시아스 이사
서울대학교와 대학원에서 식품공학을 전공했으며, 1988년 12월 제과회사에 입사해 기초연구팀과 아이스크림 개발팀에서 근무했다. 2000년부터는 향료회사에서 소재 및 향료의 응용기술에 관해 연구했다. 저서로는 ‘불량지식이 내 몸을 망친다’, ‘당신이 몰랐던 식품의 비밀 33가지’, ‘Flavor, 맛이란 무엇인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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