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실 햄버거와 라면 같은 식품이 우리의 욕망을 가장 정직하게 반영한 식품이다. 햄버거와 라면을 만들기 시작한 것은 햄버거 가게와 라면 공장일지 모르지만, 현재의 햄버거와 라면을 만든 것은 바로 우리이다.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음식이 있다. 그런데 한 끼 식사를 통째로 믹서에 넣고 갈아서 먹으면 어떻게 될까? 음식의 성분과 양은 그대로 남아도 맛은 대부분 사라져 버린다. 음식의 가치가 성분이거나 안전, 영양, 건강 등이라면 우리는 이런 식품을 택해야 한다. 이 음식은 보관과 취급도 편하고 음식물 쓰레기도 안 나오는 가장 친환경적인 식품이기도 하다. 더구나 음식을 갈아 먹으면 포만감도 가장 오래 유지되기에 다이어트에도 좋다.

그런데 왜 식품의 성분이 가치의 전부인양 하면서 이런 음식을 먹지 않는 것인가? 식품에 성분(효능)만을 찬양하는 사람은 그림의 가치가 물감과 종이에 있고, 음악의 가치가 악기에만 있다고 하는 것과 같다. 물감의 선명하고 화려한 색상 자체에도 약간의 감동은 있지만, 대부분의 감동은 물감이 멋진 그림으로 조화되었을 때 있는 것이다.

세상에 어떤 식품공학자도 갈아놓은 사과를 다시 아삭아삭한 사과로 만들지 못하고, 천연의 섬세함을 살리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가 하루 3끼 먹는 것은 대부분은 천연 그대로이거나 극히 일부 가공한 것이다. 가공식품은 그 나름의 강점이 있을 때만 통한다. 라면이 싸고 간편해서 좋아한다는 것은 터무니없는 생각이다. 수만 번의 실험을 통해 최고의 맛의 조합을 끌어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사실 햄버거와 라면 같은 식품이 우리의 욕망을 가장 정직하게 반영한 식품이다. 햄버거와 라면을 만들기 시작한 것은 햄버거 가게와 라면 공장일지 모르지만, 현재의 햄버거와 라면을 만든 것은 바로 우리이다. 지금 제품보다 몸에 좋게 만들면 잘 팔릴 것이라는 기대에 아주 다양한 제품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모두 실패했다.

식품의 역할은 필요한 영양분을 제때 필요한 만큼 공급하는 것이고, 맛은 먹을 것을 부추길 수단이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맛의 쾌감을 극복하지 못해 항상 과식하고 과식 때문에 일어난 문제를 식품 성분 탓이라고 하면서 세월만 낭비하고 있다. 우리는 보통 하루에 약 1.7㎏, 1년이면 630㎏을 먹는다. 먹는 것이 그대로 우리 몸에 쌓인다면 하루에도 몸무게가 1.7㎏ 이 늘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 몸의 체중은 놀랍게도 일정하다.

1년에 700㎏을 먹는 사람의 체중이 500㎏을 먹는 사람에 비해 체중이 몇 십 킬로그램씩 느는 것이 아니고 건강을 유지하는 한 1㎏ 이내만 늘어나고 끝난다. 먹는 양의 변동에 비해 체중은 놀랍게도 일정하고 1년에 0.50~1㎏ 정도씩만 늘어난다. 그런데 우리는 이것을 고마워하지 않고 엄청나게 먹는 것에 비해 아주 조금 늘어난 체중만 원망하고, 얼마동안 조금 덜 먹었는데 왜 체중이 안 빠지냐고 짜증낸다.

사실 첨가물에 대한 불량지식의 근본을 추적하면 미국의 비만문제로 수렴한다. 미국은 먹어도 너무 먹었고, 1950년대의 비만율이 이미 우리나라 앞으로 30년 후의 예상 비만율 보다 높았다. 먹는 양을 줄이는 문화를 구축하기보다는 과학을 빙자한 성분놀이로 어떤 성분이 비만을 유발하고 어떤 성분이 다이어트에 좋고를 따지며 세월을 보냈다.

그리고 칼로리와 성분에 따른 다이어트 효과의 지식으로 무장하고 1980년부터 범국가적으로 다이어트 운동을 실시한 결과, 미국인의 비만율은 폭발적으로 증가하였다. 우리의 몸과 욕망을 더 잘 알아야 할 문제를 식품 성분의 문제로 착각한 나머지 상황만 극도로 악화시킨 것이다. 비만으로 발생한 건강문제를 온갖 식품 성분, 첨가물의 문제인양 호도하여 문제 해결의 초점만 흐리고 있다.

설탕, 소금, MSG가 건강에 나쁘다는 이야기를 앞으로 100년 한다고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내 몸의 욕망이 관리되지 않고 우리의 환경은 오히려 더 많은 소비를 부추기기 때문이다. 바로 맛의 경쟁이다. 맛의 경쟁은 한편 자극성의 경쟁이라 더 많은 설탕, 소금, MSG, 향신물질을 의미한다. 처음 맛있던 음식도 몇 번 먹다보면 평범해지고, 평범해지면 더 자극적인 것을 찾는다. 맛보다는 몸에 편안함을 경쟁하여야 해결의 가능성이 높다.

한꺼번에 소금의 양을 줄이면 바로 맛이 없어져 견디기 힘들지만 조금씩 줄이면 자연스럽게 넘어간다. 외식이 많은 요즘은 집에서만 노력한다고 될 일이 아니고 사회 전체의 식문화를 개선해야 하는 것이다. 국그릇의 크기를 자연스럽게 점점 줄이는 문화, 맛보다 몸에 편한 음식을 높이 평가하는 문화가 실질적인 해결책일 것이다.

최낙언 시아스 이사
서울대학교와 대학원에서 식품공학을 전공했으며, 1988년 12월 제과회사에 입사해 기초연구팀과 아이스크림 개발팀에서 근무했다. 2000년부터는 향료회사에서 소재 및 향료의 응용기술에 관해 연구했다. 저서로는 ‘불량지식이 내 몸을 망친다’, ‘당신이 몰랐던 식품의 비밀 33가지’, ‘Flavor, 맛이란 무엇인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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