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훈 교수의 농식품 비즈니스 이야기 14.

국내 식품시장에서 시장조사를 통해 소비자들이 원하는 제품을 출시하였음에도 실제 잘 팔리지 않는 사례가 많다. 먼저 제빵시장을 보자. 달지 않은 유럽식 건강빵에 대한 소비자들의 요구에 맞춰 제빵기업들이 당도가 낮은 식사대용 건강빵을 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들은 오히려 건강빵을 외면했다. 저염빵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국내 제빵 시장은 여전히 당도가 높은 빵의 소비가 주를 이룬다.

 
소비자 대상 조사와 실제 시장에서 반응
최근 서울대와 농촌진흥청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기존의 선입견과는 달리 빵은 쌀의 대체재가 아닌 것으로 나타났다. 라면과 즉석밥은 쌀을 대체하지만, 빵과 쌀의 구매는 서로 관련성이 약하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여전히 국내 소비자들은 빵을 간식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밥은 밥대로 먹어야 하고, 빵은 간식이니 단맛이 나는 빵을 먹는 것이다.

이번엔 요거트 시장을 한 번 살펴보자. 미국과 유럽을 휩쓸고 있는 그릭요거트는 국내 시장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하고 있다. 작년 이 칼럼에서 내가 그릭요거트의 열풍을 예상했으나 결과는 완전히 빗나갔다. 소비자 대상의 조사에서 소비자들은 설탕이 들어가지 않은 무설탕 요거트를 요구했다. 그래서 주요 기업들은 역시 무설탕 요거트를 출시했지만 시장 반응은 썩 시원치 않다. 다양한 형태의 기능성 요거트들이 출시되었지만 소비자들은 평소 즐겨먹던 것을 찾는다. 이를테면 딸기맛 요거트가 최고의 인기를 끌고 있다. 맥주 시장도 유사하다.

국내산 맥주가 맛이 없다는 소비자들의 불평으로 주요 국내 맥주 기업들은 연이어 양질의 진한 에일 맥주를 출시했지만 소비자들은 외면했다. 그렇다고 수입 에일 맥주 브랜드들이 크게 성공한 것도 아니다. 국내 맥주 시장에서 에일 맥주의 점유율은 여전히 4% 내외일 뿐이다.

획일화된 국내 소비자들의 소비 성향
이러한 사례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여기에 두 가지의 중요한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첫째,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시장조사 결과를 곧이곧대로 믿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소비자들은 단지 원칙만을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도 건강빵이 필요하고, 무설탕 요거트가 필요하다는 것이지 그것을 구매하겠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즉, 구매에 있어서 좀 더 많은 옵션을 가지고 싶다는 것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두 번째 중요한 의미는 우리 소비자들의 식품 소비 패턴은 아직까지 획일적이라는 점이다. 빵과 요거트는 여전히 달콤한 간식이어야 하고, 맥주는 힘찬 건배와 함께 시원하게 들이켜야 하는 것이다. 옥수수는 찰옥수수가 제일 맛있고, 막걸리는 반드시 아스파탐이 적당히 들어간 생(生)막걸리여야 한다.

유럽의 슈퍼마켓에 가면 토마토만 해도 예닐곱 종류가 있고, 사과도 십여 종류가 진열되어 있다. 여러 가지 색과 모양의 과일들을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참으로 재미가 있다. 사실 멀리 유럽까지 갈 필요도 없이 일본의 슈퍼마켓에만 가 봐도 각 제품군별로 많은 선택의 여지가 있고, 소비자들의 다양한 니즈를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 슈퍼마켓에 가보면 상황이 다르다. 토마토는 기본적으로 찰토마토가 기본에 방울토마토가 추가된 정도다. 짭짤이 토마토를 볼 수 있는 날은 아주 운이 좋은 날이다. 옥수수도 어느 샌가 ‘찰’옥수수 한 종류 밖에 없다. 사과도 요즘엔 부사 말곤 찾아보기 힘들다. 더 정확히는 소비자들은 무슨 품종인지도 잘 모르고 먹는다. 우리도 좋은 치즈를 먹고 싶다고 이야기 하지만, 제대로 발효된 치즈는 실제 잘 팔리지 않는다. 슬라이스 가공 치즈가 내 입에 편하니 그것만 찾게 되고, 판매대 위에 좋은 품질의 다양한 치즈가 올라갈 공간은 사라지게 된다.

신선식품도, 가공식품도 지나치게 획일적이다. 굉장히 아이러니하다. 소비자들은 계속 새로운 것을 요구하지만 실제 새로운 제품이 나오면 실패한다. 그러다 보니 슈퍼마켓의 매대는 계속 획일적인 상품으로 채워진다.

 
품질보다 영업력이 좌우하는 국내 식품시장
소비자들의 획일적인 소비성향은 단지 슈퍼마켓의 판매대를 지겹게 만드는 것 이상의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 한 제품군에서 소비자들의 니즈가 다양하지 않으면 그 제품군을 생산하는 기업들은 비슷한 종류의 제품을 내 놓고 서로 경쟁하게 된다.

비슷한 제품들이 한 시장에서 경쟁을 하는 상황에서는 소비자들은 비슷한 제품이라면 저렴한 제품을 선호하게 된다. 따라서 기업 입장에서 이 경쟁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가격을 낮춰야 한다. 원가를 낮춰야 하니 원료의 수준을 낮춰야 하고, 마진의 폭마저 줄여야 하는 압박을 받게 된다. 곧 시장 점유율을 빼앗는 전쟁이 시작된다. 제품의 품질보다는 영업력이 우선되기 시작한다. 시간이 갈수록 제품들은 서로 더욱 비슷해지고 신제품을 개발할 수 있는 여력은 더 줄어드는 악순환이 시작된다.

결과적으로 기업은 재무적인 압박에 시달리게 된다. 소비자들이 원하는 수준까지 가격을 내리지 못하는 제품은 시장에서 퇴출되고 시장은 규모의 경제로 가격 승부를 할 수 있는 기업들 몇 개만 살아남는 과점 시장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기업들은 국내시장이 포화상태가 되었다고 생각하게 되고, 결국은 국내시장에서 성장 동력을 잃어버리고, 해외 시장을 개척해야 한다고 이야기 한다. 이것이 현재 전반적인 국내 식품 시장의 현실이다.

포화된 식품시장을 극복하기 위한 세분화
포화된 국내 식품 시장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외국 시장을 개척하는 것은 좋은 방법이다. 하지만 포화된 국내 식품 시장을 극복하는 또 다른 방법은 각 제품별 시장이 세분화되도록 만드는 것이다.

한 제품군이 다양한 세분화 시장으로 나뉘게 되면 각 기업은 각 세분화 시장에 들어가서 경쟁할 수 있게 된다. 서로 다른 제품으로 경쟁하기 때문에 제품들 간의 직접적인 가격 비교가 불가능해지므로 기업 입장에서는 제품 원가에 대한 압박이 적어지게 된다. 소비자들의 다양한 니즈를 만족시킬 수 있는 다양한 기업이 등장하게 되고 시장에는 다양한 제품들이 출시된다. 결과적으로 소비자들의 편익이 올라가게 되고, 해당 제품군에 대한 전반적인 산업 경쟁력이 올라가게 된다. 이렇게 되기 위해선 소비자들이 해당 제품군에 대한 세련된 소비 감성과 함께 다양한 소비 욕구를 갖도록 유도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소비자 감성을 자극하는 풀 마케팅 전략
소비자들이 해당 제품군에 대하여 세련된 소비감성과 다양한 소비 욕구를 갖도록 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 식품기업들의 전체적인 마케팅 전략의 전환이 필요하다. 소매점에 대한 영업이 핵심인 푸시 마케팅(push marketing)에서 소비자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풀 마케팅(pull marketing)전략으로 전환이 이루어져야 하고, 그 이전에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다양한 퍼블리시티(publicity) 활동을 통해 해당 제품군에 대한 세련된 소비문화를 갖도록 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식품 학자들이 전 세계 식품 시장과 비교하여 한국의 식품시장을 볼 때, 우리 소비자들이 아직 이런 세련된 감성을 보유했다고 보고 있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식품 시장은 여전히 식품 안전이 핵심인 시장으로 유럽이나 일본에 비해 한 단계 아래에 있다고 판단한다. 하지만 우리 식품 시장은 일견 포화된 것으로 보이지만 여전히 성장의 가능성이 있다. 세분화된 식품 시장의 개발과 이를 위한 소비자의 세련된 소비 감성의 개발은 바로 그 출발점이 될 것이다.

소비자에게 감성적 접근 위한 콘텐츠 개발
일본식품소비자들의세련된소비감성은 ‘신의 물방울’, ‘미스터 초밥왕’, ‘따끈따끈 베이커리’등과 같은 독특한 만화콘텐츠를 탄생시켰다. 비단 만화뿐만 아니라 드라마, 영화 등으로 제작된 다양한 콘텐츠는 일본 소비자들의 식품 소비 감성을 더욱 세련되게 만들었고, 다양한 세분 시장을 만들어 내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었다. 신의 물방울 번역판으로 인해 국내 와인 소비자들의 와인에 대한 감성이 더욱 세련되어지고, 세분 시장이 만들어진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단적으로 말해 신의 물방울이 없었다면 이태리 와인을 선호하는 세분 시장은 커지지 않았다. 소비자들의 소비 감성은 이러한 콘텐츠에 의해 발전한다.

포화된 국내 식품시장의 극복은 해외 진출뿐만 아니라, 국내 식품시장의 세분화로 가능하다. 세분 시장에 대한 투자는 미래에 대한 투자이다. 소비자들의 세련된 감성을 끌어내어 시장을 세분화하는 전략은 우리가 알고 있는 기존의 시장 조사 및 개발 전략과는 분명히 다른 전략이다. 장기적이고 감성적인 접근이어야 하며, 예컨대 그에 적합한 콘텐츠 개발과 함께 소비자들과의 꾸준한 교감이 필수적이다. 이러한 장기적인 퍼블리시티 캠페인은 우리 식품 기업들의 성장과 식품 산업의 발전을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중요한 통과의례가 될 것이다.

 
문정훈 서울대 교수
문정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Food Business Lab 교수는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에서 식품 마케팅ㆍ식품 및 바이오산업 전략 등을 가르치며, 농식품 분야 혁신 경영 연구를 위한 Food Business Lab.을 운영하고 있다. Food Business Lab.은 농업, 식품가공, 외식 및 급식, 유통을 포함한 먹고 마시고 즐기는 비즈니스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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