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훈 교수의 농식품비즈니스 이야기10

끈적하면서 미끈한 크림 질감의 붉은 빛깔이 도는 액체였다. 입에 넣으니 새콤하면서 우유 단백질의 느낌이 난다. ‘아, 요거트구나.’ 그러나 내가 알아 맞혀야 하는 것은 제품의 종류가 아니라 여기에 들어가 있는 ‘향(flavour)’이다. 나는 15명의 외국인 실험 참가자들과 섞여 있었고, 모두가 이 액체에 들어가 있는 ‘향’을 맞추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다.

 
식품의 인지에 영향을 미치는 색깔
분명히 내가 아는 향인데... 마치 잘 아는 친구의 이름이 갑자기 생각나지 않는 것과 같은 고통이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나와 다들 비슷한 고통을 겪고 있는 표정이다. 다시 그 붉은 빛깔의 시료를 한 숟갈 떠서 입에 넣었으나, 역시 어디에선가 막힌 것처럼 떠오르지 않는다. 잠시 후 네덜란드인으로 보이는 금발의 여성이 자신 없는 목소리로 “Strawberry?”라며 관능실험을 하는 과학자의 반응을 본다. 흰 머리의 과학자는 그게 바로 내가 원하던 오답이라는 듯이 고개를 좌우로 흔든다. 또 다른 여성 참여자가 자신 있게 “Raspberry!”라고 외쳤지만, 그 과학자는 입가의 미소와 함께 고개를 흔든다. 도대체 무슨 맛일까? 분명히 내가 아는 맛인데... 그 때 뭔가 내 머리를 탁치는 느낌이 있었다. 눈을 감고 시료를 다시 입에 넣었다. 곧 답이 떠올랐다. ‘페리에 생수를 처음 마셨을 때의 그 향이구나.’ 그리고 눈을 떴다. 실험을 시작한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 두 명의 오답 이외에는 아무도 답을 하지 못했다. 나는 조용히 손을 들었다. 관능실험을 하던 유럽 최고의 향 과학자가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확신을 가지고 이 향은 라임이라고 했고, 그 과학자는 “거의 맞추었네요. 정답은 레몬향 입니다.”

내가 네덜란드 NIZO 식품연구소에서 참여했던 이 관능실험은 식품을 섭취할 때 시각에서 오는 정보와 혀와 코에서 오는 정보가 불일치할 때 발생하는 혼란에 관한 실험이었다. 사람들은 빨간색은 딸기향, 주황색은 오렌지향, 노란색은 레몬향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데, 이런 선입견은 이 색과 맛이 일치하지 않을 때는 큰 혼란이 온다는 일종의 이론이 적용된 실험이었다. 이 이론을 스트룹 효과(Stroop Effect) 이론이라고 하는데, 학습을 통해 자연스럽게 반응하게 된 행동은 이와 관련한 다른 중립적인 행동을 할 때 오히려 장애를 일으키게 된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레몬향의 음료를 마시더라도 붉은색이면 딸기 맛이라고 착각을 하거나, 무슨 맛인지 헛갈리게 된다는 것이다. 나는 이 붉은색이 주는 스트룹 효과를 피하기 위해 눈을 감았고, 그나마 비슷한 맛을 기억 속에서 찾아 낼 수 있었다. 누구나 쉽게 맞힐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실제 이 실험에 참여했던 15명은 아무도 정답을 맞히지 못하였다. 이어서 이루어졌던 파란색 음료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어려워했으나, 그나마 몇 사람은 답을 찾아낼 수 있었다. 파란색 음료의 스트룹 효과는 빨간색 보다 작기 때문이다. 파란색에 정확히 호응되는 향은 선험으로 명확하게 학습되어 있지 않아서였던 것 같다. 답은 사과향이었다.

매장에서 들려주는 음악이 구매액 좌우
이렇듯 식품의 인지에 영향을 미치는 외부의 감각 자극은 시각적인 것에 그치지 않는다. 배경음악의 템포에 따라 쇼핑 행동이 달라진다는 연구는 이미 고전이고, 이 연구결과는 대부분의 백화점과 마트에서 적용하고 있다. 백화점과 마트에서는 오전에는 느리고 우아한 음악으로, 폐장시간에는 빠른 템포의 음악으로 고객의 쇼핑 행동에 영향을 주고 있다. 이와 유사한 접근으로 Advances in Consumer Research에 게재된 Areni와 Kim의 연구(1993)는 와인 소매점에서 클래식 음악을 틀었을 때와 최신 유행곡을 배경음악으로 틀었을 때 소비자들의 행동을 두 달 동안 관찰한 필드 연구이다. 이 연구에서는 최신 유행음악보다는 클래식 음악을 틀었을 때 소비자들이 비싼 와인을 사는 경향이 높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역시 와인 소매점에서 필드 연구를 수행한 North, Hargreaves, McKendrick의 연구에서는 프랑스 음악을 배경음악으로 틀었을 때 프랑스 와인이 더 많이 팔리고, 독일 음악의 경우에 독일 와인이 더 많이 팔린다는 것을 관찰하였다. 이 연구는 1999년 Journal of Applied Psychology에 발표되었다.

매장의 이미지가 구매 행동에 영향
서울대 Food Business Lab에서도 이와 유사한 실험을 한 적이 있다. 위의 연구들은 개별 소비자들이 소매점에서 와인을 구매하는 경우였으나, 우리의 연구는 와인바에서 여러 명이 함께 모여서 주문할 때에도 이런 외부의 영향이 와인 주문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지를 관찰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어떤 음악을 틀었을 때 고객들이 프랑스 와인을 더 주문할까, 또 어떤 시각적인 자극을 할 때 프랑스 와인을 더 주문할까에 대한 필드 연구를 수행하였다. 결과를 요약하자면, 와인바에서 샹숑을 틀고, 테이블 위에 에펠탑, 프랑스 국기를 형상화한 이미지를 고객들에게 노출시켰을 때 프랑스 와인을 주문할 확률이 올라가고 술 구매 금액도 올라갔다. 소비자들이 부지불식간에 귀에 들리고 눈에 보이는 것과 일관성 있는 소비행동을 하려는 성향을 보인 것이다. 식품 선호와 선택은 외부 감각 자극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이 연구결과는 곧 학술지에 발표할 예정이다.

서울대 Food Business Lab에서는 홈쇼핑의 쇼호스트의 목소리에 대한 연구도 수행하였다. 동일한 유기농 포도를 판매함에 있어 어떤 목소리가 소비자들에게 더 매력적으로 들리고, 더 높은 가격 지불의사를 보이는 지를 실험하였다. 유기농 포도를 소개하는 쇼호스트의 목소리를 녹음한 후 동일한 목소리의 톤을 높이고 낮추는 조작을 하였다. 이 두 개의 목소리를 다시 속도를 빠르게 하고 또 반대로 느리게 하는 조작을 하였다. 음성 전문가의 자문에 근거하여 총 네개의 목소리(높고 빠른, 높고 느린, 낮고 빠른, 낮고 느린)를 만들어 구매 실험을 수행하였다. 그 결과 쇼호스트의 목소리가 높고 느릴 때 소비자들은 그 목소리가 더 매력적이고 신뢰할 만한 목소리라고 판단하고 더 높은 가격에 유기농 포도를 구매하고자 하였다. 반면에 낮고 빠른 목소리에서 소비자들은 가장 큰 거부감을 보였고 지불 의사도 가장 낮게 나타났다. 유기농 과일에 판매에 대한 이 연구의 결과는 올해 초 Society for Consumer Psychology 학술대회에서 발표되었다.

소비자의 구매행동에 영향 주는 식품포장
이런 외부의 감각 자극에 대한 소비자의 반응은 식품 포장에도 적용된다. 2009년 Journal of Marketing Research에 발표된 Deng과 Kahn의 연구에서는 포장에서 제품 사진의 위치와 무게감에 대한 실험을 수행하였다. 이 연구에서는 포장지를 전면에서 바라보았을 때 중앙을 기준으로 왼쪽과 위쪽에 제품 사진이 위치하면 소비자들은 그 제품의 무게감이 약하다고 인식하고, 포장지의 아래쪽과 오른쪽에 제품 사진이 위치하면 그 제품의 무게감이 강하다고 인식한다는 것을 발견한다. 이 놀라운 발견은 식품 포장의 경우에는 무게감을 강하게 느끼는 위치인 오른쪽이나 아래쪽에 제품의 사진이 배치되도록 디자인해야 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대체로 식품은 같은 가격이면 무거운 것이 좋기 때문이다. 이 연구 결과는 반대로 전구, 랩탑 컴퓨터, 휴대용기기 등은 가벼운 것이 좋으므로, 이런 제품의 경우는 제품 포장의 왼쪽이나 위쪽에 제품의 사진이 들어가야 소비자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식품 기업의 포장 디자인팀에서는 만약 자사 제품 포장의 디자인의 제품 사진의 위치가 혹시 왼쪽이나 위쪽에 있다면 슬쩍 그 위치를 바꾸는 것을 고려해 봐야 하겠다. 서울대 Food Business Lab에서는 여기서 한 발짝 더 나가서 다이어트 관련 식품의 포장에서도 같은 결과가 나올지 연구해볼 계획이다.

 
문정훈 서울대 교수
문정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Food Business Lab 교수는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에서 식품 마케팅ㆍ식품 및 바이오산업 전략 등을 가르치며, 농식품 분야 혁신 경영 연구를 위한 Food Business Lab.을 운영하고 있다. Food Business Lab.은 농업, 식품가공, 외식 및 급식, 유통을 포함한 먹고 마시고 즐기는 비즈니스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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