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육류가 비난을 받은 것은 아주 오래된 일이고, 생선은 중금속에 대한 걱정, 밀가루, 옥수수 등 곡류의 문제점을 주장하는 책도 많다. 이 와중에 채식의 비난마저 등장했으니 더 이상 믿고 기댈만한 식품이 완전히 없어진 셈이다.
세상에는 수천, 수만 가지 건강법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것들은 모두 생생한 체험담으로 사람들을 혹하게 한다. 하지만 사실 그것들은 대부분 플라세보 효과이다. 가짜 약조차 효과가 있는데 건강법으로 효과를 본 체험자가 없을리 있겠는가? 효과를 본 사람은 그것이 진짜 효과가 있다고 철석같이 믿게 되어 주변 사람에게 알리고, 그렇게 다시 효과를 봤다고 믿는 체험자가 증가한다. 이런 식으로 체험담은 증가하는 것이다.

효과를 보지 못한 사람조차도 자신만의 문제인가 하고 침묵한다. 결정적으로 그 건강법을 만든 사람은 자신의 방법이 정말 놀라운 효과가 있다고 착각하게 된다. 그럴 즈음에 의심을 가진 사람도 체험을 시작하고, 효과를 보던 사람도 효력이 떨어지면서 사라지는 것이 바로 건강법이다.

양의사는 한의사를 엉터리라고 하고, 한의사는 양의사를 엉터리라고 한다. 이것도 역시 체험담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다. 한약을 먹고 탈이 난 사람은 다시는 한의원에 가지 않고 양의사를 찾아간다. 그렇다 보니 양의사는 한약을 먹어 탈이 난 사람들만 보게 된다.

반대로 병원을 다녔는데도 병이 잘 고쳐지지 않으면 한의원에 찾아간다. 이처럼 양의사는 한약의 부작용만 보게 되고, 한의사는 의사가 못 고친 것을 고친 것만 강하게 기억한다. 따라서 서로가 서로의 실력을 불신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도 못 고친 환자는 민간요법을 찾는다. 그중에는 당연히 치료 효과를 본 사람이 나온다. 그 사람은 계속 찾아오고 효과가 없는 사람은 떠난다. 효과 있는 사람만 계속 따르게 되는 민간요법의 개발자는 현대의학과 한의학도 포기한 환자를 치유한 기적의 치유법을 개발했다고 생각한다.

아베 쓰카사는 책에서 첨가물은 모든 식품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마법의 물질이라고 했다. 훌륭한 영업사원 답다. 하지만 진실은 아니다. 영업사원이 제출한 샘플이 실제 제품에 적용될 확률은 5%도 되지 않는다. 95% 이상이 탈락한다. 연구원은 여러 원료를 구하고 최적의 조건과 배합을 찾아 무수한 실험을 한다. 이런 원료와 공정의 조합을 통해 가장 목표에 근접한 해결책을 찾는다. 그렇게 제안된 원료 중에 효과가 있어 사용될 확률이 5%도 안 되지만 영업사원은 채택된 경우만 통보를 받기에, 자신의 원료를 넣기만 하면 문제가 해결되는 것인 양 착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채택이 안 되면 다른 경우는 효과를 봤는데 그 경우는 연구원이 제대로 실험하지 않은 탓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아베 쓰카사는 정확히 영업사원 만의 관점인 셈이다.

이처럼 수많은 건강식품과 건강법으로 기가 막힌 효과를 봤다는 체험담은 무수히 많아도 항상 소리 없이 사라진다. 과학적으로 통계를 내면 플라세보 효과보다 뛰어나지 않다. 이것이 건강정보의 함정이고 체험담의 함정이다. 체험담이란 전문가의 의견보다 훨씬 믿을만한 정보는 아니다. 하지만 설득력과 뉴스성은 최고다.

소련의 스탈린도 “한 명의 죽음은 비극이지만 100만 명의 죽음은 통계일 뿐이다”라고 말했다. 한 명의 죽음은 체험담이고 그 슬픔을 처절하게 묘사가 가능하지만, 100만 명의 죽음은 처절함의 묘사가 불가능하고 단지 숫자로 표시하고 끝난다는 것이다. 과학적 수치보다는 구체적이고 생생한 묘사에 쉽게 설득되는 것이 우리들이다.

비행기 여행을 가려 할 때 누군가 사고 사진을 보여주면서 비행기는 사고 시 생존 확률이 희박하며 참혹하기 그지없다고 말한다면 어떻게 판단하겠는가? 우리는 대부분 비행기가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여행 방법의 하나라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이용 인구와 이동거리 대비 사고율이 비행기가 가장 낮다는 것을 모른다면 비행기 여행을 주저하게 될 것이다.

식품첨가물은 비행기보다 훨씬 안전하다. 그런데 식품첨가물이 화학물질이고 다른 공업원료, 농약, 약품 등에서 화학물질 사고가 많으니 매우 위험하다는 말을 다들 잘도 믿는다. 하지만 천연을 포함한 세상 모든 물질이 화학물질이고, 첨가물은 모든 화학물질 중에서 가장 철저히 검증된 원료이다.

최근 가공식품 또는 첨가물의 체험담과 정반대의 체험담이 등장하여 인기를 끌고 있다. 바로 ‘채식의 배신’이다. 리어 키스(Lierre Keith)는 20년 간 유제품과 달걀 등 동물성 식품을 전혀 먹지 않는 극단적인 채식주의자인 ‘비건(vegan)’으로 산 경험을 바탕으로 채식주의 신화를 깨기 위해 이 책을 썼다.

16살에 신음하는 지구에 연민을 느낀 키스는 채식주의자들의 고귀한 신념에 설득 당해 비건식 식사를 시작한다. 그러나 6주쯤 지났을 때 저혈당증을 경험하고, 3개월 만에 생리가 멈추게 된다. 만성피로와 감기를 달고 살았다. 피부 껍질이 벗겨지기 시작했다. 이후엔 위 마비 증상까지 찾아왔다. 하지만 몸이 아픈 이유가 극단적인 채식 때문이라는 명확한 사실을 키스는 애써 부정하려 했다. 그저 신념과 정의로 나약한 육체를 이겨내는 데만 신경을 썼다. 그 때문에 키스는 만성 영양 부족과 저혈당증, 우울증과 초조함 등의 정서불안을 가졌으며, 평생 안고 가야 할 퇴행성 관절질환과 생식기관의 암까지 생겼다. 육식을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일견 통쾌하고, 채식주의자들에게는 당황스러운 책이다.

만약 세상에 완벽한 식품이 있다면 식품회사는 그것을 상품화할 것이다. 하지만 많이 마시라고 권하는 물조차도 한번에 10ℓ 이상 들이키면 사망할 위험이 크며 실제로도 사망사고가 곧잘 나온다. 생존에 필수적인 산소도 100% 조건에서는 몇 분 만에 과산소증으로 사망한다. 육류가 비난을 받은 것은 아주 오래된 일이고, 생선은 중금속에 대한 걱정, 밀가루, 옥수수 등 곡류의 문제점을 주장하는 책도 많다. 이 와중에 채식의 비난마저 등장했으니 더 이상 믿고 기댈만한 식품이 완전히 없어진 셈이다. 그런데도 언제까지 기적의 식품 또는 절대적 안전을 꿈꾸면서 과학보다는 누구의 체험담에 일희일비 할 것인가?

최낙언 시아스 이사
서울대학교와 대학원에서 식품공학을 전공했으며, 1988년 12월 제과회사에 입사해 기초연구팀과 아이스크림 개발팀에서 근무했다. 2000년부터는 향료회사에서 소재 및 향료의 응용기술에 관해 연구했다. 저서로는 ‘불량지식이 내 몸을 망친다’, ‘당신이 몰랐던 식품의 비밀 33가지’, ‘Flavor, 맛이란 무엇인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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