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에는 하루에 커피를 두 잔 이상을 마시면 자궁암을 20% 줄일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단기간의 동물실험도 아니고 무려 6만 명이 넘게 17년 동안 추적 조사한 결과라고 한다. 그러면 이 이야기를 듣고 커피를 안 마시던 사람이 커피를 마셔야 하는 걸까?

1902년 독일 베를린대학의 형법 및 국제법 교수 프란츠 폰 리스트(Franz von liszt)는 한 실험에서 주목할 만한 결과를 얻었다.

어느 날 강의 도중 두 여학생이 토론을 벌이더니 점차 언성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다른 학생들은 그 모습을 의아해하며 바라보았고, 마침내 그 둘은 멱살잡이까지 하더니 그 중 한 사람이 권총을 빼들어 상대방을 향해 쏘았다. 물론 이것은 연출된 상황이었다. 리스트 교수는 하얗게 질린 다른 학생들을 재빨리 진정시키며 상황을 설명했고, 학생들은 자기들이 보고 들은 것을 자세히 종이에 옮겨야 했다.

결과는 교수가 애초 기대한 것 그대로였다. ‘목격자’들은 나쁜 관찰자들이었다. 일어난 일에 대한 그들의 진술, 그리고 두 학생이 무슨 일로 다투었는지, 그 중 누가 먼저 폭발했고, 마침내 누가 총을 쏘았는지에 대해 그들의 기술은 거듭 틀렸다. 따라서 그들의 목격자 진술은 대체로 별 가치가 없었다. 이는 연출된 상황이 아니라 실제 상황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중세 유럽에서 마녀사냥이 한창이던 시절, 고문을 하지 않아도 실제로 자신이 마녀라고 시인하는 여자들이 많았다고 한다. 마녀로 인정하면 처참하게 고문을 당하고 죽을 것이 확실한데도 왜 자신을 마녀라고 믿고 인정한 것일까?

가장 유력한 추정은 워낙 먹을 것이 부족해 맥각병에 걸린 곡물을 먹는 바람에 마술을 부리거나 지팡이를 타고 날아다니는 등 환각에 빠지게 됐다는 의견이다. 극도의 굶주림으로 삶이 생과 사의 경계에 걸치고 비몽사몽 상태가 계속 지속되면 어떤 것이 현실이고 어느 것이 환각인지 경계마저 무뎌져 버린다. 그래서 불과 40년 전만 해도 그렇게 귀신 이야기가 많았고 <전설의 고향>과 같은 프로그램이 인기가 많았다.

경험의 진위도 그렇고 해석의 진위도 판별이 어렵다. 흔히 비만 아동이 성적이 좀 낮다고 한다. 패스트푸드가 비만을 일으키니 패스트푸드를 먹으면 성적이 낮다고 분석하기도 한다. 하지만 뚱뚱하기 때문에 성적이 낮은 것인지, 성적이 낮기 때문에 뚱뚱한 것인지, 아니면 다른 문제로 뚱뚱해지고 동시에 성적도 떨어지는 것인지 명확하지가 않다.

일반적으로 사회경제적 약자들에서 비만율이 높은 것은 부모의 보살핌이 적어서일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성적도 낮게 나오는 경향이 있다. 사회경제적 빈곤 때문에 비만과 성적 저하가 일어나는 것이지, 비만 자체가 성적을 낮추는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이야기다.

지역적으로 봐도 마찬가지이다. 비만한 사람이 많은 지역에는 식당이 많다. 그럼 식당이 많아서 비만이 늘어난 것인가? 아니면 먹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아서 식당이 증가하고 비만도 증가한 것인가? 사회 현상의 해석도 어렵고 질병의 해석도 어렵다.

일반인뿐 아니라 우리의 생명을 다루는 가장 전문가 집단인 의사도 오랫동안 원인 분석을 잘못하는 경우도 많다. 오랫동안 심장마비는 콜레스테롤 플라크가 서서히 동맥을 막고 이로 인해 심장 근육으로 가는 혈액 공급이 서서히 막히게 되어 마지막 단계에 심근경색이 발생한다고 믿은 것이다. 이것은 실로 대단한 오해였다.

1980년 심근경색 초기 몇 시간 안에 혈관조영술을 시행한 결과와 심근경색 환자의 부검 결과를 종합해보면, 환자들의 대부분에서 플라크는 별로 크지 않거나 중간 정도였지만 갑자기 찢어지거나 침식돼 있음이 밝혀졌는데, 이것이 심근경색의 가장 근접한 원인이었던 것이다. 동맥의 20%만 좁아졌다고 하더라도 한순간에 갑자기 혈관 벽에 금이 가고 그곳에 혈전이 형성되면 벼락처럼 심근경색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가임기 여성은 남성에 비해 고혈압 환자가 적고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도 낮은 편이다. 그러나 일단 폐경기에 이르러 여성호르몬 수치가 떨어지며 혈압과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가 급상승하고 심혈관질환 위험도 높아진다. 당연히 폐경기 여성에게 여성호르몬을 보충하면 심혈관질환 위험을 낮출 것이라는 기대를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체계적인 실험결과는 기대를 배신했다. 유방암, 심장병, 뇌졸중 위험이 높아진 것이다.

이에 포기하지 않고 2006년에는 또 다른 연구가 실시됐다. 비영리기관인 크로노스 장수연구소가 참가자들의 체중과 혈관상태까지 꼼꼼히 미리 점검하면서 실험했으나, 이번에도 호르몬 요법은 심장병 위험을 나타내는 지표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했고 치매 예방효과도 없었다. 폐경의 증상으로 여성호르몬 수치도 줄고 심혈관질환이 증가한 것인지 폐경으로 여성호르몬이 줄어서 심혈관질환이 증가한 것인지 매우 당연해 보이는 원인이 실제 원인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카페인의 독성에 대한 이야기가 아주 많았다. 그런데 최근에는 하루에 커피를 두 잔 이상을 마시면 자궁암을 20% 줄일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단기간의 동물실험도 아니고 무려 6만 명이 넘게 17년 동안 추적 조사한 결과라고 한다. 그러면 이 이야기를 듣고 커피를 안 마시던 사람이 커피를 마셔야 하는 걸까?

밥을 빨리 먹는 사람이 건강할까, 아니면 밥을 천천히 먹는 사람이 건강할까? 밥을 빨리 먹는 사람이 오히려 건강한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소화력이 받쳐주는 사람은 빨리 먹을 수도 있고 천천히 먹을 수도 있다. 하지만 소화력이 떨어지는 사람은 밥을 빨리 먹기 힘들다. 그런데 빨리 먹는 사람 중에 건강한 사람이 많다고 밥을 빨리 먹는 것이 건강에 좋다고 우기면 곤란하다.

커피를 마셔서 자궁암에 덜 걸린 것이 아니고 건강하기 때문에 자궁암에 덜 걸린 것이고, 커피를 마셔서 오래 산 것이 아니고 오래 산 사람들이 커피도 좋아한 것이라면 이 이야기를 듣고 커피가 몸에 좋은 것이라 착각하고 억지로 커피를 먹는다면 어떻게 될까?

천천히 먹을 수밖에 없는 사람에게 밥을 빨리 먹으라고 강요하는 셈이고, 도로 중 횡단보도에서 사고율이 높으니 횡단보도를 없애라는 주장인 셈이고, 충치가 늘어 치약의 소비량이 증가했다고 치약 때문에 충치가 늘었다고 하는 것과 같다.
이처럼 직접 경험한 것도 원인의 해석은 쉽지 않다. 그런대 우리는 개인적인 체험과 해석을 단지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말한 것이라고 그냥 믿는 경향이 크다.

최낙언 시아스 이사
서울대학교와 대학원에서 식품공학을 전공했으며, 1988년 12월 제과회사에 입사해 기초연구팀과 아이스크림 개발팀에서 근무했다. 2000년부터는 향료회사에서 소재 및 향료의 응용기술에 관해 연구했다. 저서로는 ‘불량지식이 내 몸을 망친다’, ‘당신이 몰랐던 식품의 비밀 33가지’, ‘Flavor, 맛이란 무엇인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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