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집에서 요리할 때 느끼는 기쁨은 마치 거실에서 현악 4중주를 연주하는 것과 같다
최근 몇 개의 요리책을 펴낸 독일의 물리학자 마이어 라이프니츠는 음악을 요리에 비유한바 있다. “최고급 식당의 식사를 대규모 콘서트에 비한다면, 집에서 요리할 때 느끼는 기쁨은 마치 거실에서 현악 4중주를 연주하는 것과 같다”고 했다.

미국의 초기 역사 200여 년 동안 음식 만들기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는 아주 현실적이었다. 25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실컷 먹는 것은 괜찮지만 음식에 대해 법석을 떠는 것은 좀 사치스럽고 퇴폐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었다. 물론 지난 20년 동안 이러한 경향이 역전돼 지나친 식도락에 관한 초기의 우려들이 어느 정도 들어맞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요즈음에는 음식광·포도주광들이 생겨나 요리를 맛보는 즐거움을 마치 신흥 종교의 예식만큼이나 진지하게 여기기도 한다. 요리잡지가 성황이고, 수많은 요리사들이 텔레비전에서 갖가지 요리쇼를 인기리에 진행하고 있다. 지난 몇 십 년에 걸친 미국 생활양식의 변화 가운데 음식에 관한 태도만큼 놀랍도록 급격히 변한 것은 없을 듯하다.

먹는다는 것은 성행위와 마찬가지로 우리 신경체계 속에 내재된 기본적인 즐거움의 하나이다. 식사시간에 사람들은 가장 행복하고 마음 편해한다.

음식을 만든다는 것도 몰입해 세밀하게 주의를 기울인 결과, 식재료의 특징을 좀 더 자세히 구별할 수 있게 됐다. 소금은 육류를 보전시켜 주고, 계란은 음식물의 겉에 입히거나 재료를 서로 붙일 때 좋으며, 마늘은 그 자체의 향은 강하지만 의약적 효과가 있는 데다 적당한 양을 사용하면 다양한 음식에 미묘한 맛을 더해준다는 사실 등을 알아냈다.

이러한 원칙들이 바로 다양한 요리법으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은 요리법의 다양성이야 말로 상대적으로 제한된 수의 식용재료를 가지고도 거의 무한하리만큼 광범위한 몰입의 경험을 이끌어 낼 수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고급 요리에 대한 관심은 높아졌으나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풍성한 즐거움을 느끼는 방법에는 거의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저 생물학적 요구에 따라 먹는 행위를 플로우의 경험으로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우선 자기가 무엇을 먹는가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정성들여 장만한 요리를 알아주는 기색조차 없이 손님이 꿀꺽꿀꺽 삼켜버린다면 실망스러울 뿐 아니라 놀랍기까지 할 것이다. 이는 값진 경험을 그저 낭비해 버리는 무신경의 극치라고 할 수 있다. 분별력 있는 미각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다른 모든 기술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노력을 투자해야 한다. 그러면 투자한 에너지의 몇 배의 즐거운 보상이 되돌아온다.

음식을 진정으로 즐기는 사람은 시간이 감에 따라 특정 요리에 대한 관심이 생기고, 그러다 보면 각 지방의 요리법뿐만 아니라 그 지역의 분위기를 배우게 된다. 재료와 어울리는 조합, 어디서 구하는지, 대체품은 무엇인지 등등이다.

스포츠·성·심미적 시각 경험 등 신체적 기술과 관련된 다른 모든 플로우 경험과 마찬가지로, 먹는 행위도 우리가 통제를 할 수 있다면 더 큰 즐거움이 될 수 있다. 단지 유행 때문에 미식가나 포도주 감별사가 되고자 한다면, 또는 외부로부터 강제된 목표의 일환으로 기술을 터득하고자 한다면 미각은 잘 발달되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탐구심과 호기심으로 먹는 일이나 요리에 접근하고, 자신의 전문기술을 과시하려 하기보다는 경험 그 자체를 위해 음식의 여러 잠재성 등을 찾아내고자 한다면, 잘 개발된 미각은 플로우를 경험할 수 있는 많은 기회를 제공해 준다.

우리의 육체는 감각기관을 사용할 때마다 긍정적인 느낌을 만들어 우리 자신의 온 전체가 아름다운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진화돼 왔다. 신체에 내제된 플로우의 잠재성을 깨닫는 것은 비교적 쉬운 일이다. 특별한 재능이 없어도 되고, 많은 돈을 소비하지 않아도 된다.

이전에 간과해 버렸던 우리의 신체적 능력 가운데 한 두 가지를 탐사해 봄으로써, 누구라도 자신의 삶의 질을 크게 향상시킬 수 있다. 누구나 훌륭한 운동선수, 무용가, 화가, 연주자가 되기는 힘들어도 여러 분야의 애호가가 되는 것은 분명 가능한 일이다. 자신의 신체적 기능을 통해 즐거움을 찾는 기술만 발견해도 가능한 일이다.

최낙언 시아스 이사
서울대학교와 대학원에서 식품공학을 전공했으며, 1988년 12월 제과회사에 입사해 기초연구팀과 아이스크림 개발팀에서 근무했다. 2000년부터는 향료회사에서 소재 및 향료의 응용기술에 관해 연구했다. 저서로는 ‘불량지식이 내 몸을 망친다’, ‘당신이 몰랐던 식품의 비밀 33가지’, ‘Flavor, 맛이란 무엇인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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