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실험에서 동일한 코카콜라지만 펩시콜라라고 상표를 붙인 것과 아예 아무런 상표를 붙이지 않는 것을 비교 시음했다. 그 결과는 코카콜라라는 브랜드를 붙인 제품의 압승이었다. 이처럼 상징은 우리가 구매할 때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제품의 포장지가 단지 내용물을 보호하거나 가격 등의 일반정보만을 제공한다고 생각하면 완전히 오산이다. 식품은 저관여 제품이다. 미리 무엇을 살지 정하고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매장에서 포장을 보고 내키는 대로 구매하는 제품이라는 것이다. 지금은 시장이 성숙하여 익숙한 제품이 주로 팔리기 때문에 포장의 중요성을 간과하기 쉽지만 포장의 디자인이 그렇게 간단한 역할만을 하지 않는다.

동일한 내용물도 어느 회사의 라벨을 붙이느냐에 따라 가격도 달라지지만 매출도 완전히 달라진다. 단지 제품에 대한 신뢰도가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맛도 달라진다. 코카콜라의 브랜드가 맛과 무슨 관계가 있느냐 하겠지만 맛은 겉모습에서부터 뿜어져 나온다.

한 실험에서 동일한 코카콜라지만 펩시콜라라고 상표를 붙인 것과 아예 아무런 상표를 붙이지 않는 것을 비교 시음했다. 그 결과는 코카콜라라는 브랜드를 붙인 제품이 압승이었다. 라벨을 붙이지 않은 상품이 코카콜라일 수도 있고 펩시콜라일 수도 있다는 말을 해주어도 결국 브랜드로 코카콜라가 코카콜라에 압승을 거둔 셈이다. 이처럼 상징은 우리가 구매할 때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제품 포장지를 보면 제품의 단면이나 시즐, 조리 예가 등장한다. 정보가 맛이라 그것이 제품의 선택 가능성을 가장 높여주기 때문이다. 김밥은 잘라서 단면을 보여주어야 하고, 햄버거나 피자는 내용물이 보이도록 해야 더 매력적인 것이다.

김밥이나 비빕밥은 먹기 전에 시각정보를 통해 내용물을 알고 있다. 그런데 입 안에서 어떤 것이 씹혀서 맛이 날지는 모른다. 한 입 한 입 씹으면서 달라지는 맛이 이미 시각으로 들어온 정보와 일치하기 때문에 맛을 즐길 수 있다. 이런 과정이 즐겁지 않은 사람은 비빕밥보다는 밥과 반찬이 따로 따로 제공되는 것을 즐길 수밖에 없다.

한국인은 다른 나라보다 유난히 편리성을 추구한다. 요구르트도 컵 형태로 담긴 떠먹는 것보다 원 샷으로 마시는 것을 좋아한다. 그런데 요즘 식당에는 깍두기는 먹기 편하게 잘라서 나오지 않고 원형으로 나온다. 불신 때문이다. 원형으로 나와야 반찬 재활용의 불안감 없이 맛을 즐길 수 있는 것이다. 불신이 불편함보다 맛에 미치는 영향이 큰 것이다

미국에서 아이들에게 당근이나 우유를 더 많이 먹게 할 뿐만 아니라 더 맛있게 먹게 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 맥도날드에서 나왔다고 하면 된다고 한다. 아이들은 맥도날드의 음식이 더 맛있다고 믿는다능 것이다. 성인은 비싸다고 하면 된다. 수십개의 연구들이 비싼 것을 마신다고 믿는다면, 그것이 더 맛있게 느껴진다는 것을 증명했다.

2001년 보르도대학교의 프레데릭 브로세는 동일한 중등품 포도주를 두 개의 다른 병에 담아 내놓았다. 병 하나는 고급 브랜드, 하나는 평범한 브랜드였다. 그 후 전문가에게 맛을 보게 하자 둘을 전혀 다른 것으로 평가했다. 고급 브랜드처럼 포장한 것은 “맛이 좋고, 기분 좋은 오크 향이 느껴지며, 복잡 미묘한 여려 가지 맛이 조화롭게 균형 잡혀 있고, 목으로 부드럽게 잘 넘어 간다”는 평을 받은 반면, 싸구려 포장을 한 것은 “향이 약하고 빨리 달아나며, 도수가 낮고, 밍밍하며, 맛이 갔다”는 평가를 받았다.

에스코피에는 이런 심리적 현실을 이해했다. 그래서 암시의 힘을 적극 이용했다. 그는 자신의 요리에 멋들어진 이름을 붙이고 반드시 금박을 두른 은제 그릇에 요리를 담아내게 했다. 반짝반짝 잘 닦인 식기 컬렉션은 귀족들의 유산 매각 경매에서 챙겨온 것이었다. 요리에 고급스러운 이름도 붙이고 웨이터들에게 턱시도를 입혔고, 식당 인테리어도 직접 감독했다. 요컨대 완벽한 요리에는 완벽한 분위기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우리의 감각은 상황의 영향을 강력하게 받는다는 것을 아주 예전에 깨달은 것이다.

어른들은 몸에 좋다고 하면 쓴맛이 나는 음식도 곧잘 먹는다. 이처럼 이미지가 중요한 것이다. 예전에 프로야구 초반에는 해태와 롯데가 상당한 라이벌을 형성했다. 해태 연고지에는 해태 과자가 잘 팔렸고, 롯데 연고지에는 롯데 과자가 잘 팔렸다. 과자의 선택에 지역감정을 고려하는지 전문 조사기관에 조사를 해보자 모두가 절대 아니라고 답했다. 단지 해태 연고지 사람은 해태 과자가 롯데 과자보다 더 맛이 있어서 사먹는다고 했고, 롯데 연고지에서는 롯데 과자가 더 맛이 있어서 사먹는다고 했다. 과자를 고르는데 지역감정은 전혀 작용하지 않고 단지 맛의 차이 때문이라는 결론이었다. 하지만 연고지에 따라 다른 제품을 보냈을 리는 만무하다. 그것이 가능했다면 오히려 약점 지역을 공략하기 위해서 반대로 했을 것이다. 감정이 맛을 지배한 것이다.

사실 이 정도는 약과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고급 식당에 품격 있는 인테리어와 감미로운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최고의 서비스와 최고로 맛있게 보이게 제공되는 식사를 기분 좋게 했을 때와 똑같은 음식을 갑자기 험상 궂은 사람에게 납치되어 불이 꺼진 상태로 주위에 비명소리가 들리는 데서 먹는다면 그 맛이 전에 먹은 그 맛이겠는가? 사실 앞과 동일한 상태에서 불을 끄고 깜깜한 상태로 먹기만 해도 전혀 다른 맛을 느낀다.

맛과 향이 음식 맛의 대부분이라고 생각할 때는 평소와 같은 조건이라는 단서가 붙은 상황이지 맛과 향은 너무나 많은 심리의 영향을 받는다. 그 원리는 모두 뇌에 있다. 따라서 우리가 맛을 정확히 알려면 무엇보다 뇌와 감각의 인식과정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최낙언 (주)시아스 이사
서울대학교와 대학원에서 식품공학을 전공했으며, 1988년 12월 제과회사에 입사해 기초연구팀과 아이스크림 개발팀에서 근무했다. 2000년부터는 향료회사에서 소재 및 향료의 응용기술에 관해 연구했다. 저서로는 ‘불량지식이 내 몸을 망친다’, ‘당신이 몰랐던 식품의 비밀 33가지’, ‘Flavor, 맛이란 무엇인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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