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사과의 단맛과 신맛에 향을 합해서 사과 맛이라고 인식하지, 사과의 맛과 향을 따로 구분하여 인식하지 못한다. 식품에서 맛과 향은 구분하기 힘들고 별로 구분할 필요도 없는 감각이다.

어떤 음식이던 쉰내 혹은 묵은 냄새가 나면 실패한 것이다. 사람들은 아주 약한 묵은내도 금방 알아채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신선한 재료를 그렇게 칭찬하는 것은 특별한 영양보다는 이 묵은 냄새를 싫어하기 때문이다.

사실 이 묵은내를 없애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향신료를 첨가하는 것이다. 서양에서는 로즈마리 같은 향신료가, 우리나라에서는 고추나 후추가 특효이다. 이 보다는 효과가 적지만 소금 또한 훌륭한 재료이다. 여전히 묵은 맛이 나긴 하지만 그래도 훨씬 먹을만 해진다. 소금이 좋은 풍미를 부각시키고 나쁜 맛을 눌러주지만 자체의 짠맛을 드러내지 않는다. 이런 소금의 비밀 작용을 알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공감각을 이해해야 한다.

맛은 감각세포의 사구체 영역에서 1차 연합을 이루어 각각의 감각연합에 전달된다. 여기까지는 독립된 감각이지만 후각, 미각, 청각, 시각, 촉각의 정보가 모두 모이는 곳이 있다. 바로 전두엽 중에서 눈 위쪽에 있는 안와전전두피질(OFC)라는 곳이다. 이곳에서 좋은 맛인지 나쁜 맛인지를 판단하는데 이쪽에는 맛과 향에 의해 동시에 자극받는 신경세포도 흔하다.

사실 입으로 느끼는 것만을 맛이라 하면 단맛, 짠맛, 신맛, 쓴맛, 감칠맛 5가지이다. 그러면 수만 가지 요리의 다양한 맛은? 단지 ‘향’이다. 음식을 먹을 때 입 뒤로 코와 연결된 작은 통로를 통해 냄새물질이 휘발하여 느끼는 향이 수만 가지 맛의 실체다. 그런데 우리는 사과의 단맛과 신맛에 향을 합해서 사과 맛이라고 인식하지, 사과의 맛과 향을 따로 구분하여 인식하지 못한다. 식품에서 맛과 향은 구분하기 힘들고 별로 구분할 필요도 없는 감각이다.

그리고 ‘맛(taste)’과 ‘향(flavor)’의 합에서 끝나지도 않는다. 맛은 식품을 섭취할 때 느끼는 감각의 총합이다. 맛에 촉감(물성)마저 연결되어 단맛은 동일한 액체라도 점도가 더 높은 것으로 느끼게 하고 신맛의 경우 점도가 낮은 것으로 느끼기도 한다. 즉 미각, 후각, 촉각, 온도감각, 통각에 감정, 분위기, 쾌감과 문화까지 합해져서 맛을 만든다. 가장 복합적인 공감각의 현상이다.

안와전두피질과 전전두엽은 이렇게 감각을 통합하여 감각을 통합하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 넣는다. 그런 과정에 감각의 모호화는 맛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고 시각과 청각 또한 그러하다. 예를 들어 ‘맥거크 효과 McGurk effect’가 있다. 어떤 사람이 크게 ‘가’ 소리를 내는 비디오를 보여 주고 이후에 비디오에서 ‘가’ 음을 지우고 ‘바’라는 소리를 더빙 한 후 눈을 감고 듣게 하면 당연히 ‘바’라고 들린다. 그러나 눈을 뜨고 원래 ‘가’라고 보면, 귀는 ‘바’라는 소리를 듣고 있는데도 눈은 사람의 입이 ‘가’라고 말하는 것이 보인다. 두뇌는 이런 모순되는 상황을 해결하기 위하여 사실이 아닌 무언가를 만들어낸다. 그래서 눈을 뜨고 있을 때 듣게 되는 소리가 ‘다’이다. 두뇌는 우리가 듣는 것과 보는 것 사이에서 타협, 즉 통합을 시도한다.

이곳의 세포는 후각을 담당하는 세포에 미각의 신호도 같이 연결되어 있어 동시에 자극을 받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향은 맛에 의해 강도가 크게 달라진다. 간단한 실험은 껌에 멘톤이라는 향기 성분을 넣고 씹기 시작하면 2분이 지나면서 설탕의 농도가 떨어지기 시작한다. 이때 실제 향(멘톤)의 양은 그대로 유지되지만 소비자는 향이 급격히 약해진다고 느낀다. 향의 강도가 향 자체 농도보다는 감미에 더 많은 영향을 받는 것이다.

당(감미)과 향에 산까지 추가한 실험을 통해서도 유사한 결과가 보고됐다. 실험 시작에서는 딸기 향, 감미료, 산미료 모두를 혼합된 상태로 시료를 공급하다가 어떤 순간에는 특정 성분의 공급을 차단하는 실험이다. 당과 산을 계속 공급하면서 딸기향만을 차단하면 딸기향이 전혀 없는 상태인데도 한동안 딸기향이 없다는 것을 거의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런데 향은 공급하면서 산을 제거하면 향이 40% 이상 약해졌다고 느낀다. 당을 제거하면 결과는 훨씬 심각하다. 향과 산이 있는데도 향이 없어졌다고 느낀다. 향이 있더라도 당과 산 두 가지를 없애면 당, 산, 향까지 모두 없앤 것과 별 차이가 없어진다. 물론 향을 제거하고 시간이 많이 지나면 향이 없다는 것을 알겠지만 한동안은 그것을 인식하지 못한다. 결국 안와전두피질의 공감각 현상에 단맛이 감소했는데 향기가 감소했다고 느끼는 이유와 소금을 조금 넣었는데 모든 맛이 확 살아나는 이유, 조직감에 따라 맛이 완전히 다르게 느껴지는 이유가 있는 셈이다.

이런 통합의 사례는 우리가 영화를 볼 때 일어나는 현상을 통해 금방 알 수도 있다. 스크린에서 배우가 이야기 하는 장면에서 배우의 입이 비춰진 스크린에서는 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실제 소리는 배우의 입과 전혀 무관한 위치인 극장 안 사방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나온다. 그런데 우리는 뇌는 우리의 귀가 듣고 있는 낱말과 화면의 배우의 입술을 관찰한 결과를 결합하여 대화가 스크린에서 나온다고 믿게 만든다.

최낙언 (주)시아스 이사
서울대학교와 대학원에서 식품공학을 전공했으며, 1988년 12월 제과회사에 입사해 기초연구팀과 아이스크림 개발팀에서 근무했다. 2000년부터는 향료회사에서 소재 및 향료의 응용기술에 관해 연구했다. 저서로는 ‘불량지식이 내 몸을 망친다’, ‘당신이 몰랐던 식품의 비밀 33가지’, ‘Flavor, 맛이란 무엇인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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