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에 정말 다양한 맛있는 음식이 있다. 하지만 한 끼 식사 전부를 믹서에 넣고 갈아서 먹어보면 모두 비슷한 맛이 될 것이다. 분명 음식의 맛 성분과 향 성분도 그대로이고 양도 그대로인데 맛이 사라져 버린다. 맛이 음식의 성분이 아니라는 결정적인 증거이다.

촉각 즉, 식감은 다양한 맛의 효과가 있는데 자체로 또는 다른 감각과 연합한 정보로 맛에 영향을 준다. 촉각 또한 제품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믹서로 갈면 맛을 구분하기 힘들어진다. 나이가 들면 더 힘들어진다. 그나마 사과, 딸기는 워낙 갈아서 먹는 것에 익숙하여서 구분이 되지만, 오이나 시금치는 거의 구분이 되지 않고, 고기도 갈아 놓으면 잘 알아채기 힘들다고 한다.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먹는 것은 분명이 맛에 부정적인 효과를 준다.

물성을 가진 것은 또 다른 효과가 있는데 목 넘김과 입 안을 가득 채움의 효과이다. 미뢰는 혀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목 천장에도 있고 목젖에도 있다. 그래서 입 안 가득 음식을 채워서 먹는 것이 쾌감이 크고, 면류는 목 넘김에서 큰 쾌감을 느끼는 사람도 많다. 이래저래 다이어트가 힘든 이유가 많은 것이다

성분이 같다고 자극이 같지는 않다. 새로운 소재만이 새로움을 주는 것이 아니고, 익숙한 소재도 다루는 방법에 따라 얼마든지 새로움의 기쁨을 줄 수 있다. 음악으로 치면 새로운 악기가 아니라 기존의 악기를 가지고 새로움을 창조하는 것과 같은 방식이다. 음식 재료나 감각이 고정된 악기라면 새로움을 주는 리듬은 악보와 같은 것이다.

세상에 정말 다양한 맛있는 음식이 있다. 하지만 한 끼 식사 전부를 믹서에 넣고 갈아서 먹어보면 모두 비슷한 맛이 될 것이다. 분명 음식의 맛 성분과 향 성분도 그대로이고 양도 그대로인데 맛이 사라져 버린다. 사라져 버린 것이 단지 씹는 맛이라면, 겔화제 등을 이용하여 원하는 물성은 만들 수 있다. 하지만 물성을 다시 만들어준다 하여도 아무도 그 음식을 좋아하지 않은 것이다.

맛이 음식의 성분이 아니라는 결정적인 증거이다. 사실은 성분은 맛의 구성요소일 뿐이다. 믹서에 갈 때 사라지는 것은 성분이 아니라 다이나믹 컨트라스트(Dynamic contrast) 즉, 리듬이다.

식품의 성분은 단지 음악의 ‘도레미파솔라시’에 해당할 뿐이고 음악의 감동은 그것이 적절히 배열될 때 나온다. 믹서기로 갈아놓은 음식은 악보에서 ‘도’는 30번 나오고 ‘레’는 15번 나오고 ‘미’는 25번 나온다는 식으로 분해하여 ‘도’를 연달아 30번, ‘레’를 연달아 15번치는 식으로 연주하거나, 노래의 전체 평균이 ‘파’에 해당한다고 고저장단 없이 ‘파’를 300번 치는 것과 같은 행위이다.

나는 식품을 25년 이상 하였지만 세상 누구에게서도 맛의 가장 중요한 속성이 이 리듬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없다. 모두 맛의 허상만 보고 있었던 것이다. 맛이나 향기 성분에서 맛의 쾌감이 나온다고 하는 것은 좋은 그림의 감동이 단지 물감에서 나온 것이라고 하는 것과 같다. 물감은 단지 재료일 뿐 감동은 그 물감이 어떻게 종이 위에 배치되는가에 달려 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감상자의 능력과 태도이다. 그냥 느낌만으로 감동적인 그림이 있고, 알면 알수록 제대로 감동을 느낄 수 있는 그림이 있듯이 식품도 먹는 사람에 따라 그 감동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우리가 평가하는 음식의 가치가 식품 성분에서 오는 안전, 영양, 건강 등이라면 우리는 한 끼 식사를 통째로 믹서에 넣고 갈아놓은 식품을 택해야 한다. 이 음식은 보관과 취급도 편하고 음식물 쓰레기도 안 나오는 가장 친환경적인 식품이기도 하다. 더구나 음식을 갈아 먹으면 포만감도 가장 오래 유지되기에 다이어트에도 좋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식품의 가치가 성분이 전부인냥 온갖 성분을 따지고 이야기 하면서 이런 음식을 먹지 않는 것인가? 우리는 맛이 무엇이고 맛의 쾌감이 진정 어디에서 오는지 제대로 생각해 보지 않은 것이다.

인간의 뇌는 항상 새로운 것에 스릴을 느낀다. 타고난 모험가인 것이다. 인간은 모험에 대하여 엔돌핀을 분비해 촉진한다. 새로운 향과 촉각도 이 스릴을 자극한다. 새로운 것을 좋아하는 모험심이 없었다면 연약한 인간이 지금까지 생존하여 번영을 누리지 못했을 것이다. 인간의 역사는 미지에 대한 도전과 탐험에 대한 역사이며 이것을 보조한 것이 쾌감의 구조이다.

그래서 우리는 안전한 음식의 맛을 볼 때에도 모험을 즐긴다. 그래서 한 끼의 음식도 여러 메뉴가 있고, 단 한 그릇으로 된 음식도 생각보다 여러 리듬이 있다. 정말로 리듬이 부족한 죽 같은 것은 진짜로 몸이 아파서 이런 모험조차 부담스러울 때 적당한 음식이기도 하다.

맛의 리듬을 내는 방법은 생각보다 다양하다. 단맛의 중첩보다는 단맛과 짠맛 등의 대비가 효과적이고, 물성도 단단한 것만 있는 것보다 단단한 것과 무른 것, 또는 단단하다가 녹는 것, 쫀득한 것, 밍밍한 온도 보다는 따끈하거나 시원한 것 등을 좋아한다. 음식의 세팅도 전체, 주식, 후식으로 구분하여 대비되는 음식을 제공한다. 택스춰에서 모험이란 단단함이 부서짐이기도 하다. 껍질은 부드럽지만 입 안에서는 바스러지면서 부드러워지는 것은 많은 쾌감을 준다. 처음부터 부드러웠던 것과 단단해졌던 것이 부드러워지는 것은 대비 효과에 의하여 쾌감을 준다.

뇌과학이 쾌감의 비밀을 구체적으로 풀기 시작했다. 조직감에서 대비 효과는 놀람으로 노르아드레날린의 분비를 촉진하고 이것이 보상계를 자극하여 쾌감이 발생한다는 설명도 있다. 텍스춰 대비의 예로는 딱딱한 초콜릿으로 부드러운 아이스크림을 코팅한 초코바, 속에 부드러운 크림이 들어간 과자, 샌드 과자의 크림, 초코파이의 초코와 빵, 마쉬멜로우 등 사실 이런 대비를 활용한 제품은 상당히 많다.

색의 랜덤과 농도 차이 효과는 자연의 특권이다. 가공식품은 전체적으로 균일한 색을 내기는 쉬워도 적당한 대비는 곤란하다. 그나마 베이킹이 비균일한 색의 효과가 보이는데 만약에 구운 빵이 흰색이나 황갈색의 단일한 색상이라면 식욕을 당기는 효과는 훨씬 적을 것이다. 이런 다양한 대비 효과를 다이나믹 컨트라스트라고 하는 것이 과학적인 표현이겠지만, 나는 음악의 리듬으로 설명하려고 한다.

사실 후각과 미각은 분자에 의한 감각기관에 감지된다는 감각단계를 제외하고는 나머지 뇌에서 처리되는 과정의 이해는 음악(청각)을 대비하여 이해하는 것이 훨씬 명확하기 때문이다.

최낙언 (주)시아스 이사
서울대학교와 대학원에서 식품공학을 전공했으며, 1988년 12월 제과회사에 입사해 기초연구팀과 아이스크림 개발팀에서 근무했다. 2000년부터는 향료회사에서 소재 및 향료의 응용기술에 관해 연구했다. 저서로는 ‘불량지식이 내 몸을 망친다’, ‘당신이 몰랐던 식품의 비밀 33가지’, ‘Flavor, 맛이란 무엇인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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