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추의 매운 맛 성분 캡사이신과 후추의 피페린이 온각을 자극하여 통증을 유발하고, 화상을 입었다고 판단한 뇌에서 진통성분을 방출해 기분이 좋아지는 효과가 있다. 진통성분과 자극에 끌리는 것이다.
향신료에 애착을 갖는 배경에 대한 설명은 그렇게 확실하지가 않다. 셔먼과 빌링은 4500종 이상의 고기요리에 사용된 향신료를 분석하여 향신료가 보존성을 높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처음에는 식품의 보존성을 높이기 위해 향신료를 썼는데 결국에는 이 자극이 익숙하고 좋아져서 스파이스를 쓰는 단계로 진화했다는 해석이다.

예전에는 냉장시설이 없었고 상하기 쉬웠다. 인도나 브라질처럼 무더워서 음식물이 상하기 쉬운 지역의 전통 요리법이 핀란드처럼 추운 지역의 요리법보다 더 많은 종류의 향신료를 더 많이 사용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더운 곳에서는 여러 가지 향신료를 쉽게 구할 수 있기 때문에 그런 결과가 나왔을 뿐이라고 반박할 수 있지 않을까?

향신료가 여러 나라의 요리에서 쓰이는 빈도를 조사한 결과 마늘, 양파, 칠리, 큐민, 계피 같이 세균을 특히 잘 퇴치하는 독한 향신료들은 추운 나라보다 더운 나라의 요리법에 더 자주 등장했다. 반면 파슬리나 생강, 레몬, 라임처럼 항균작용이 약한 향신료들이 쓰이는 빈도는 더운 나라든 추운 나라든 별로 차이가 없었다.

그리고 식물보다는 동물 위주의 메뉴에 향신료가 많이 쓰였다. 식물은 죽은 다음에도 단단하고 질긴 세포벽이 미생물의 침입을 상당부분 막아주어 보존성이 길기 때문이다. 셔먼은 세계 각국의 야채 요리책을 조사한 후속 논문을 통해 야채 요리에는 실제로 고기 요리보다 향신료가 적게 쓰임을 입증했다. 우리나라에서도 향신료(고추가루)를 많이 쓰는 매운 요리를 보면 철판낙지볶음, 불닭, 매운탕, 육개장, 아귀찜 등 주로 고기 요리가 많다.

그런데 향신료를 보존료로 쓴다는 것은 좀 무리가 있는 것 같다. 오히려 이미 약간 상한 음식을 좀 더 먹을 만하게 해준다는 해석이 그럴 듯 하다. 중세 유럽에서는 향신료 가격이 정말 비쌌다. 거의 금값이었다. 그런데 향신료를 넣어서 보존성을 높였다는 것은 상상하지 힘든 일이다. 향신료를 넣어서 상한 음식을 먹을 수 있게 했다는 것도 조금 상식 밖이기는 하다. 당시에는 귀족이나 향신료를 쓸 수 있었는데 상한 재료를 먹을 리도 없다. 그냥 고기를 훨씬 맛있게 먹는 용도라고 해야 할 것이다. 약간 상한 느낌 또는 잡취를 없애주는 것은 보너스였을 것이다.

그리고 향신료가 나쁜 맛을 완전히 개선하지는 않는다. 아주 약한 냄새는 강한 냄새를 통해 주의를 돌릴 수 있겠지만 나쁜 냄새 자체가 없어지지는 않는다.

사실 향신료에는 다양한 풍미가 있고 다양한 풍미는 맛에 대한 흥미를 끈다. 이런 특징은 강력하여 본인이 먹어본 음식을 기억하는데 도움이 된다. 배가 고플 때 맡은 향신료 냄새는 그 향신료가 들어간 과거의 음식에 대한 추억을 불러온다.

요리의 특징이 향신료의 특징인 경우가 많다. 또한 향신료는 침이 잘 나오게 하여 소화를 돕는다. 음식을 먹을 때 침의 역할이 중요하다. 맛있으면 침이 나오고 침이 나오면 맛이 있기도 하다. 향에 따라 침이 나오는 정도가 다른데 고추와 후추도 자극성이 있고 침이 나오게 하는 향신료이다. 흑후추는 소화 흡수를 돕고 치유의 기능도 인정이 된다. 소화 흡수에 도움을 주었던 물질은 몸이 기억하고 이물질이 다시 들어오면 쾌감을 준다는 이론이 크게 이상하지는 않다.

향신료가 온도 감각 수용체를 자극하여 맛은 더 강하게 느껴진다. 고추의 매운 맛 성분 캡사이신과 후추의 피페린이 온각을 자극하여 통증을 유발하고, 화상을 입었다고 판단한 뇌에서 진통성분을 방출해 기분이 좋아지는 효과가 있다. 진통성분과 자극에 끌리는 것이다.

자극은 맛을 기억하는데 많은 영향을 준다. 우리는 평범함을 기억하지 않고 강한 자극을 기억한다. 자극은 기억을 유발하고 기억은 익숙함을 낳는다. 위험한 것으로 생각했는데 실제 위험하지 않는 것은 즐거운 추억이다. 타는 듯이 매웠는데 화상의 상처가 남지 않고 순간적인 착각이었음을 알면 웃으면서 기억할 수 있는 것이다.

고추의 캡사이신은 온각인 TRPV1을 자극할 뿐 아니라 짠맛과 단맛 수용체도 자극한다고 한다. 심지어 항우울제 기능도 있다고 한다. 그리고 후추의 피페린은 도파민, 세로토닌, 노르에피네프린을 분해하는 효소 활성을 억제하기도 한다. 이들 호르몬은 쾌감, 운동, 우울증 등 기분을 좌우하는 하는데, 이를 분해하는 효소를 억제하면 뇌에는 이들 호르몬이 높은 수준을 유지하여 기분이 좋아지는 것이다.

향신료가 단지 자극성만 높았으면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을 것이다. 숨겨진 기능이 꽤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캡사이신이 다이어트에 효과가 있다는 사실은 이미 상식이 돼 버렸다. 캡사이신을 먹으면 몸에서 카테콜아민류 물질이 나오는데, 이 물질이 몸에 열을 발생시키고 지방을 분해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살을 빼겠다고 매운 캡사이신 가루를 먹을 수는 없다. 코팅 같은 기술이 필요하다. 실제 연구진은 쥐 실험을 통해 음료를 먹은 쥐가 일반 캡사이신을 먹은 쥐보다 혈액 속 지방이 31%나 더 분해되는 것을 발견했다.

후추 피페린의 효과
- 소화효소의 생산을 늘린다.
- 비아그라 효과를 높인다. 간과 장에서 비아그라(sildenafil)를 분해하는 효소(CYP3A4)를 억제하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아직 충분한 자료는 없다.
- 항산화력을 가져서 지방의 산패를 억제한다.
- TRPV1을 활성화시킨다. 피페린의 통증 완화력은 캡사이신 보다 강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 염증 기작을 막는다. 골관절염의 통증을 줄여주기도 한다.
- 카테킨의 흡수를 돕는다.
- 흑후추는 아이유베다에서 치유용으로 많이 사용한다.

하지만 향신료가 완벽한 조미료는 아니다. 인구 중에 1/4은 미각 민감자로 이들은 쓴맛을 잘 느끼는데 스파이스는 이 쓴맛 수용체를 자극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향신료를 사용하는 식품을 꺼리는 사람이 생긴다.

매운맛의 화합물은 분자구조에 유사점이 있는데 방향족의 특성에 두 개의 마주보는 산소를 가지고 있다. 캡사이신은 페닐알라닌에서 바닐린을 거쳐 만들어진 물질이므로 분자구조가 유사한 면이 있다. 그래서 바닐라를 아주 과량으로 먹으면 매운맛이 느껴진다고 한다.

그리고 장에도 매운맛 감지능력이 있다. 캡사이신은 잘 흡수되지 않고 장내에 남는다. 장내에 존재하는 수용체는 입에 매운맛 수용체와 동일한 자극을 전달한다. 그런데 이 수용체는 순응(피로) 현상이 발생하지 않아 지속적인 자극을 전달한다. 따라서 매운 것을 먹은 사람이 다음 날까지도 고통을 받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장에서 수분의 분비를 촉진하므로 설사를 하는 경우가 있다.

최낙언 (주)시아스 이사
서울대학교와 대학원에서 식품공학을 전공했으며, 1988년 12월 제과회사에 입사해 기초연구팀과 아이스크림 개발팀에서 근무했다. 2000년부터는 향료회사에서 소재 및 향료의 응용기술에 관해 연구했다. 저서로는 ‘불량지식이 내 몸을 망친다’, ‘당신이 몰랐던 식품의 비밀 33가지’, ‘Flavor, 맛이란 무엇인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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