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향신료 자체만으로는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다. 소금이 그 자체로는 짜기만 한데 음식에서 놀라운 효과를 내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인간의 새로운 맛과 향에 대한 애정은 실로 대단하다. 대표적인 것이 아마 중세의 향신료에 대한 사랑일 것이다. 중세 유럽에서는 후추가 매우 귀해서 말린 후추 열매 1파운드(약 453g)이면 중세 영주의 토지에 귀속돼 있는 농노 1명의 신분을 자유롭게 할 수 있었다. 후추는 오늘날 전 세계 식탁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한 것이 됐지만 중세에서는 후추를 비롯한 계피, 정향, 육두구, 생강 같은 향신료는 소수만이 마음껏 소비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런 욕구를 채워줄 향신료는 어디에나 있는 작물이 아니었다. 특별한 지역에 자라는 아주 특별한 식물이었다. 그래서 이것을 구하려는 경쟁이 서양의 운명을 바꾸기도 했다. 향신료에 대한 거대한 수요로 말미암아 대항해 시대가 열리게 됐다.

향신료는 향에 대한 많은 이해와 기술을 낳았다. 식물(천연물)은 품종과 산지에 따라 향취가 다르다. 사용하는 부위도 과실이나 꽃, 줄기나 잎이냐에 따라 다르다. 과일도 껍질과 과즙 등 부위에 따라 향이 다르고 추출하는 방법의 영향도 받는다. 압착이냐 수증기 추출이냐 용매 추출이냐 어떤 용매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다르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만들어지는 형태가 에센셜오일인지, 에센스인지 올레오레진인지에 따라 향취와 용도가 달라진다. 향에 대한 애착이 이런 기술을 발전시킨 것이다.

향신료 자체만으로는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다. 소금이 그 자체로는 짜기만 한데 음식에서 놀라운 효과를 내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매운맛 하나도 종류에 따라 느낌이 다르다. 후추는 혀의 앞쪽 끝 부분을 따라 기분 좋게 얼얼한 감각을 유발하나, 정상적인 양을 많이 초과해서 섭취하지 않는다면 목 조직을 넘어가서는 거의 효과가 없다.

고추는 이와 달라서, 아주 낮은 농도로도 목구멍 깊숙이 날카로운 통증이 감지되지만 입 주변이나 혀에는 거의 효과가 없다. 생강은 혀의 양옆과 뒷부분에서 더 분명하게 좀 더 풍부하고 원숙한 매운 맛을 내지만 목 부분에서는 그렇지 않다. 겨자는 독특한 매운맛을 내는데 휘발성이 있고, 분쇄한 겨자분말이 물과 혼합했을 때 효소작용에 의해 생겨난다. 겨자의 온화하고 날카로운 방향성의 매운 맛은 입 표면을 뒤덮는다.

더구나 매운 맛은 폭군이기도 하다. 다른 원료의 효과를 떨어뜨리고 궁극적으로는 이를 압도해 버리기 때문이다. 모든 매운 향신료는 후미를 가지고 있는데 이들은 상당히 오래간다. 이와 같은 향신료를 제대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많은 조화의 기술과 경험이 필요한 것이다.

최낙언 (주)시아스 이사
서울대학교와 대학원에서 식품공학을 전공했으며, 1988년 12월 제과회사에 입사해 기초연구팀과 아이스크림 개발팀에서 근무했다. 2000년부터는 향료회사에서 소재 및 향료의 응용기술에 관해 연구했다. 저서로는 ‘불량지식이 내 몸을 망친다’, ‘당신이 몰랐던 식품의 비밀 33가지’, ‘Flavor, 맛이란 무엇인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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