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에는 쾌락 적응(hedonic adaptation) 현상이 있다. 쾌감도 통증도 시간이 지나면 약해지는 것이다. 그리고 부정적인 것보다 긍정적인 것에서 빨리 일어난다. 꿈에 그리던 멋진 전망을 가진 아파트에 입주하거나, 승진해도 그 기쁨은 몇 주, 몇 달이면 시들어 버린다.

결혼도 마찬가지이다. 행복한 신혼 기간도 2년을 넘기기 힘들다. 이것을 진화심리학은 짝을 짓고 아이를 낳기 위해서는 그 정도 기간의 사랑은 호르몬의 작용으로도 자동으로 생기지만, 그 이후도 오랫동안 사랑하고 안정된 배우자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호르몬이 없이도 유지되는 동반자적 사랑이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자동적이고 열정적인 사랑 대신에 인위적으로 주기적으로 새로움, 다양성, 놀라움을 주입하면 초기의 열정적인 사랑의 유지에 도움이 된다. 서로가 익숙해지는 과정을 교란하고, 경험을 ‘리셋’ 시켜서 더 강한 즐거움을 느끼게 해주는 역할을 수행한다.

맛에 있어서도 이런 적응에 의한 피로(적응, 순응) 현상이 있고, 피로를 교란시켜 쾌감을 증폭시키는 원리가 똑같이 적용된다.

후각의 피로(순응, Adaptation) 현상은 잘 알려진 현상이다. 같은 냄새를 맡고 있으면 매초 2.5%씩 민감성이 감퇴되어 분 이내에 70%가 감소한다. 특정 장소를 자주 방문하면 그 장소의 냄새에 둔해지는 습관성 순응도 있고, 익숙한 냄새는 무시하지만 다른 냄새는 잘 구분하는 선택적 순응도 있다.

사실 우리는 냄새물질에 포위되어 산다. 완전한 무취상태를 만드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후각이 주변 냄새에 쉽게 마비되는 것은 새로운 냄새를 언제든지 맡을 수 있도록 예민함을 유지하기 위한 장치이기도 하다. 이런 기작은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뇌의 직접적인 통제로 매우 적극적인 생명활동으로 가능한 현상이다.

페로몬을 생각해보자. 정말 사소한 양에 극도의 쾌감을 느끼도록 설계돼 있다. 만약에 나비가 4㎞ 밖에서 페로몬을 감지하고 즐거워서 만족한다면 아무 의미가 없을 것이다. 잠시 후에는 그 쾌감이 줄어들어야 한다. 그래야 나비는 조금이라도 농도가 진한 쪽으로 이동하려는 욕구가 생긴다.

4㎞ 밖에 나비가 1㎞만 안으로 이동했다고 해도 그 농도 차이는 수백 배일 것이다. 효과적으로 감각이 둔화되지 않는다면 나비는 거기에서 머무르고 짝짓기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다른 감각도 후각과는 다르지만 피로 기작을 가지고 있다. 피로 기작이 우리 몸에서 다양한 음식을 먹도록 권장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최낙언 (주)시아스 이사
서울대학교와 대학원에서 식품공학을 전공했으며, 1988년 12월 제과회사에 입사해 기초연구팀과 아이스크림 개발팀에서 근무했다. 2000년부터는 향료회사에서 소재 및 향료의 응용기술에 관해 연구했다. 저서로는 ‘불량지식이 내 몸을 망친다’, ‘당신이 몰랐던 식품의 비밀 33가지’, ‘Flavor, 맛이란 무엇인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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