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 최고의 바리스타로 뽑힌 적인 있는 폴 바셋을 이용한 커피 매장이 성공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물론 그가 직접 만들어 주는 커피는 아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세계 최고의 바리스타가 만들어준 커피, 또는 그가 만든 것과 똑같은 수준의 커피를 제공받았다는 느낌에 프리미엄을 느낀다.

사람들은 와인을 마시면서 쾌락을 얻는 이유가 맛과 향 때문이고, 음악이 좋은 이유는 소리 때문이며, 영화를 즐기는 이유는 스크린에 나타나는 영상 때문이라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일부만 맞는 말이다.

사실은 우리가 쾌락을 얻는 대상의 참된 본질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영향을 받는다. 예술에서 얻는 쾌락의 대부분은 작품 이면에 존재하는 인간의 역사를 감상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진품이라고 믿었던 그림이 위작으로 밝혀지면 그 순간 그림에서 느꼈던 즐거움은 눈 녹듯 사라진다.

물건을 소유하고 싶어하는 인간의 욕망에는 끝이 없다. 특히 중요한 인물의 손길이 닿은 물건이면 가치가 크게 상승한다. 케네디의 집안에 있던 줄자를 4만8875달러에 구입한 사람은 맨해튼의 인테리어 디자이너 후안 몰리넥스였다. 그는 ‘줄자를 사고 맨 먼저 내가 제정신인지 재 보았다’고 말했다. 그렇게까지 자책할 필요는 없다. 줄자의 내력 때문에 좋아한 사람보다 줄자의 실용성을 좋아한 사람이 현명하거나 이성적이라고 주장하기는 애매하다.

광고에 비용이 비싼 유명한 탤런트가 등장하는 것은 그 만큼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탤런트라 잘 생겨서? 잘 생긴 사람은 정말 많다. 하지만 잘 생긴 것으로는 소용없다. 유명해야 한다.

이런 유명인에 대한 집착은 우리에게만 해당한 것은 아니다. 영국인 36%가 병적일 정도로 유명인들에게 집착한다고 한다. ‘유명인 숭배증(Celebrity Worship Syndrome·CWS)’이란 병명이 공식적으로 생길 정도다.

왜? 그것은 유명하다는 것이 권력자란 뜻이고, 과거에는 진짜 권력자를 알아보고 그 권력자에게 잘 보이는 것이 최고의 생존 수단의 하나가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권력자의 손길이 스친 것은 그에게서 나온 뭔가가 스며든다고 믿는다. 모조품 보다 진품에 집착하는 이유이다. 동일한 그림도 유명한 사람이 직접 그린 그림에는 그 사람의 무언가가 남아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똑같은 음악도 유명한 연주가가 연주한 것은 뭔가가 그 기운이 스며들어 있다고 믿는 것이다.

조지 클루니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물어보았다. “조지 클루니의 스웨터를 얼마에 사실 겁니까?” 답변은 괜찮은 가격이었다. “당신은 스웨터를 되팔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자랑할 수 있습니다”하면 가격은 더 올라간다. 그런데 “당신에게 스웨터를 드리기 전에 그것은 완벽하게 세탁될 것입니다”라고 하면 가치는 급락한다. 클루니를 완전히 씻어버렸다고 말이다.

우리는 이처럼 보이지 않는 힘을 믿는다. ‘보이지 않는 힘’ 하면 생기론이 유명하다. 고대의 과학자는 생명력이 우주에 퍼져있다고 생각했고, 19세기말의 생물학자들도 생명체에는 쪼개면 없어지는 독특한 생기(vitality)가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생기론자(vitalism)들은 생명체가 죽을 때 없어지고 마는 생기를 검출하려고 애를 쓰기도 했다.

요즘은 그런 미신이 완전히 없어졌을까? 아니다. 우리는 여전히 화식을 하면 생기가 없어지고 몸에 좋은 성분이 마구 파괴된다고 믿는다. 하지만 대부분의 영양은 그대로이고 오히려 좋아진 점이 많다는 것이 최종적 결론이기도 하다. 하지만 여전히 아직 맛도 들지 않은 닭으로 만든 영계백숙을 찾고, 아직 풋기가 가시지 않은 녹즙, 생즙, 새싹을 내 몸에 생기를 채워줄 특별한 음식으로 찾기도 한다.

이런 보이지 않는 힘에 대한 믿음은 항상 우리 안에 있다. 동일한 스포츠 중계를 생방송이라고 하면 집중하고 즐겨도 녹화방송이라면 그 결과를 전혀 모른다고 하여도 열기가 확 떨어진다고 한다. 생방송은 자신의 응원이 TV를 통해 운동장에 뛰고 있는 사람에게 전달되지만, 녹화방송은 이미 끝난 게임이라 자신이 영향력을 미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한 인정받고 싶은 욕망은 여전하다. 자신이 최고가 되든 최고로부터 대접을 받는 최고로 인정받고 싶어하는 욕망이 있다. 세계 최고의 바리스타로 뽑힌 적인 있는 폴 바셋을 이용한 커피 매장이 성공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물론 그가 직접 만들어 주는 커피는 아니다. 그가 매장의 직원을 지속적으로 교육시켜 그와 똑같은 수준의 커피를 만든다는 보장도 없다. 하지만 사람들은 세계 최고의 바리스타가 만들어준 커피, 또는 그가 만든 것과 똑같은 수준의 커피를 제공받았다는 느낌에 프리미엄을 느낀다.

이런 사례는 너무 많다. 아이폰을 사면서 스티브 잡스의 영감과 아이디어가 아직도 묻어있는 것 같고, 에어조단 신발을 사면서 전성기 때 코트 위를 날아다니던 마이클 조단을 느낀다. 비록 한국에서 OEM 납품한 명품 가방이어도 이탈리아 장인이 한 땀 한 땀 만들었을 것 같은 만족감을 느끼고, 멕시코에서 생산된 독일차에서도 독일차의 철학이 들어있다고 말한다. 설사 이탈리아 명품백이 전부 이탈리아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라도 그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구체적으로 그 환상이 깨어지지만 않으면 되는 것이다. 기꺼이 속아주는 대신에 자신의 욕망이 충족되기를 바란다. 바로 최고라는 명성이다. 우리가 사는 것은 자신을 인정받을 수 있는 명성이다. 대접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 욕망이다. 우리가 느끼는 맛이 단지 생물학적, 진화적 목적에 국한된 것이라면 쉽고 간결한 설명이 가능할텐데 이런 초정상 자극, 본질주의의 욕망과 얽혀서 복잡한 것이다. 따라서 맛을 진화적 맥락과 그의 부산물적인 성격으로 구분하여 해석하면 유용한 것 같다.

최낙언 (주)시아스 이사
서울대학교와 대학원에서 식품공학을 전공했으며, 1988년 12월 제과회사에 입사해 기초연구팀과 아이스크림 개발팀에서 근무했다. 2000년부터는 향료회사에서 소재 및 향료의 응용기술에 관해 연구했다. 저서로는 ‘불량지식이 내 몸을 망친다’, ‘당신이 몰랐던 식품의 비밀 33가지’, ‘Flavor, 맛이란 무엇인가?’가 있다.

☞ 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식품저널 foodnews를 만나세요. 구독하기 클릭

저작권자 © 식품저널 foodnews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