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음식을 먹을 때 몸에 좋은 음식을 먹고자 할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음식이 좋은 음식일까? 영양가가 풍부한 음식? 신선한 음식? 비싼 음식? 유기농 음식? 대답은 다양하겠지만, 꼭 알아두어야 할 점은 좋은 음식에 대한 여러 가지 조건 중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소화가 잘 되는 음식’이라는 사실이다. 아무리 영양가가 높고 몸에 좋은 성분을 풍부하게 함유한 식품이더라도 경우에 따라서는 흡수가 잘 되지 않을 수가 있다. 개개인의 체질이 다르고 환경도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소화가 잘 되지 않으면 제아무리 신선하고 비싼 음식이라 해도 좋은 음식이라 할 수 없다.” <우리집 건강식탁 프로젝트 _ 노봉수>

밥과 빵처럼 매일 먹어도 좋은 음식이 있고, 한두 번 먹기에는 좋지만 계속 먹기에는 부담스러운 음식도 있다. 곡식을 주식으로 하고 나머지를 반찬으로 삼는 것은 농경사회 이후에 전 세계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유목민이나 수렵민처럼 짐승의 젖과 고기를 주식으로 하지는 않는 농경사회에서는 거의 다 곡식이 주가 되었다. 농사가 시작되면서 활동에 필요한 에너지의 거의 전부를 탄수화물 위주의 곡식에서 얻는 삶이 된 것이다.

▲ 쌀밥은 입과 코는 별로 즐거운지 모르나 뇌에는 대단히 즐거운 맛이다.
쌀을 주로 재배하는 곳은 밥으로, 밀을 주로 재배하는 곳은 빵으로, 옥수수를 주로 재배하는 곳이면 옥수수를 가공해서 주식을 삼는다. 요즘이야 ‘햇반’ 같은 상품이 있어 전자레인지에 몇 분만 가열하면 바로 따끈따끈한 밥을 먹을 수 있고, 물만 붓고 바로 밥을 지을 수 있는 ‘씻은 쌀’도 팔며, 아무리 번거롭다 해도 기껏해야 정미소에서 기계로 도정하여 돌을 고른 다음 쌀을 물에 씻어 밥솥에 넣고 밥을 지어 먹는 세상이니 밥 짓는 어려움은 아예 잊고 산다.

하지만 쌀농사의 어려움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볍씨의 싹을 틔워 모판을 만들고, 봄에는 논에 물을 대고 모를 심고 김을 매면서 낱알이 익기를 기다려야 한다. 가뭄이나 홍수도 벼농사를 짓는 농부들을 괴롭히지만 병충해도 만만치 않은 적이다. 벼농사의 어려움에 빗대어 한 톨의 쌀이 익기까지는 여든여덟 번의 손이 간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니 그 어려움이야 말할 것도 없다.

밥을 지어 먹으려면 이 곡식을 절구에 넣고 찧어 이를 체에 거른 다음 겨를 대충 골라내고 다시 키질을 해서 벌거벗은 알곡을 얻어내야 한다. 기계로 벼를 찧은 20세기에 와서야 해방된 과정이었다. 그렇게 힘들여 찧은 쌀을 다시 키를 써서 겨를 날리고 물로 씻어 밥을 지어야 한다. 한 마디로 흰쌀밥을 먹기까지의 과정은 정말로 험난하다.

하지만 이렇게 번거로운 과정을 열거한 것은 그래도 벼가 가장 먹기 쉽고 밥을 짓기 가장 쉬운 것임을 설명하기 위해서다. 보리도 이 험난한 과정을 겪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지만 밥을 짓는 과정은 벼보다 훨씬 어렵다. 좁쌀이나 기장은 아예 껍질 벗기기가 불가능하기에 도정은 하지 않지만, 낱알이 작기 때문에 탈곡을 하여 잡티가 섞이지 않게 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또 쌀밥에 비해 입에 여간 깔깔한 것이 아니다.

서민들은 여전히 명절 한 때나 제사상에 올릴 때에만 하얀 쌀밥을 먹을 수 있을 정도였다. 나라나 지주에게 바치는 세금은 그들의 소용에 닿는 벼로만 해야 했으니 이처럼 귀한 쌀은 화폐의 구실까지 했다. 농민들은 농사 지은 쌀은 이렇게 바치고 잡곡으로 연명하며 흰쌀밥을 그리워했다.

흰우유, 흰쌀밥이 뭐 맛있나요? 입에는 별 특징 없는 맛이지만 내장에게는 그렇지 않다. 내장에는 혀에 있는 만큼의 미각세포가 있다. 위를 거쳐 분해된 탄수화물은 포도당이 되고, 단백질은 글루탐산 같은 아미노산으로 분해가 된다. 이런 맛 물질이 내장의 맛 수용체를 폭격을 한다. 더구나 내장에는 혀에 없는 온갖 종류의 아미노산 수용체, 지방산 수용체가 있어서 혀 보다 훨씬 정교하게 맛을 본다. 단지 그 신호는 내부 고유 감각의 영역으로 전달되어서 우리가 눈치 채지 못하는 것이다. 먹을 때 입과 코는 별로 즐거운지 모르나 뇌는 대단히 즐거운 맛이다.

최낙언 (주)시아스 이사
서울대학교와 대학원에서 식품공학을 전공했으며, 1988년 12월 제과회사에 입사해 기초연구팀과 아이스크림 개발팀에서 근무했다. 2000년부터는 향료회사에서 소재 및 향료의 응용기술에 관해 연구했다. 저서로는 ‘불량지식이 내 몸을 망친다’, ‘당신이 몰랐던 식품의 비밀 33가지’, ‘Flavor, 맛이란 무엇인가?’가 있다.

☞ 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식품저널 foodnews를 만나세요. 구독하기 클릭

저작권자 © 식품저널 foodnews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