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와 장은 훨씬 정교하게 맛을 판단한다.

우리가 음식을 선택하고 맛을 느끼는데 있어 미각과 후각의 중요성은 어느 정도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내장에서 느끼는 감각의 중요성은 잘 알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위와 장의 감각 수용체도 우리가 먹은 음식의 품질을 평가하는 데에 쓰인다. 실제로 위에서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많은 수용체를 가지고 있다.

물성수용체 : 내장벽이 당겨지고 늘어나는 감각 등을 감지한다.
화학수용체 :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과 pH를 감지한다.
온도수용체 : 먹은 음식물의 온도를 감지한다.
삼투압수용체 : 삼투압을 감지한다. 만약 삼투압이 높으면 물을 분비하여 삼투압을 정상 수준으로 끌어내리는 기능을 수행하고 낮으면 반대작용을 한다. 우리가 너무 달거나 짜게 먹으면 위에서 통증이 일어나는 이유이다

이런 감각 수용체는 시상하부나 감각 연합영역과 연결돼 있어서 이 수용체로 소금, 아미노산, 지방산, 포도당 등을 감지한 정보를 전달한다. 실제 내장의 미각 수용체 수가 혀의 미각 수용체 수보다 많다고 한다. 그리고 영양성분 외에 음식물의 양, 삼투압, 음식물의 온도, 형태와 크기, 촉감을 감지한다. 또한 단지 유리글루탐산만 느끼는 것이 아니라 단백질이 분해되어 나오는 20가지 아미노산을 각각 감지한다. 유리 포도당을 느끼는 정도가 아니라 탄수화물을 분해하여 총 포도당 양을 평가한다. 지방을 분해하여 종류별로 총량을 감지한다.

▲ 혀의 감각수용체는 고분자 물질을 감지하지 못하는데 위를 지나 소장에 도달하면 분해가 일어난다. 탄수화물은 분해되어 포도당이 되고, 지방은 분해되어 지방산이 되고, 단백질은 분해되어 아미노산이 된다.
혀의 감각수용체는 고분자 물질을 감지하지 못하는데 위를 지나 소장에 도달하면 분해가 일어난다. 탄수화물은 분해되어 포도당이 되고, 지방은 분해되어 지방산이 되고, 단백질은 분해되어 아미노산이 된다. 혀에서는 음식의 극히 일부인 저분자물질을 느끼지만 장에서는 분해된 총량을 느끼고 각각의 성분 하나하나를 느끼는 것이다.

이런 감각을 통해 무엇을 먹었는지 알고, 소화과정을 분비하고, 음식을 기억한다. 기억은 흔히 뇌로만 한다고 생각하지만 몸도 기억력이 있다. 사물을 인식하기 전인 아주 어릴 때에 뭔가를 먹었다가 죽을 만큼 고통을 당했다면 나중에 커서도 그 음식은 먹지 못한다고 한다. 본인은 왜 그런지 모르지만 몸은 그때의 고통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장에서 느끼는 감각은 여러 호르몬에 연결되는데 그래서 소화의 일련작용도 일어나고 포만감도 느끼는 것이다.

얼마나 놀랍고 정교한 감각 시스템인가? 그런데 이런 감각이 뇌의 무의식적 영역으로 전달되기에 우리는 그런 것이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입맛만 속이면 될 것이라고 노상 헛꿈을 꾸는 것이다.

무의식의 대표적인 맛이 지방이다.

지방은 그 놀라운 효과 덕분에 가공식품 업계의 대체 불가능한 비법 재료로 사랑 받는다. 지방을 넣지 않으면 무슨 수를 써도 감자칩이 바삭해지지 않고, 식빵의 촉촉한 결이 살아나지 않으며, 통조림 가공육에 탐스러운 선홍색 윤기가 돌지 않는다. 쿠키를 부드럽게 한다. 지방 자체는 ‘느끼하다, 기름지다, 묵직하다’는 별로 긍정적이지 못한 평가를 받지만, 실제 제품의 일부가 되면 ‘부드럽다, 단단하다. 탱탱하다. 야들야들하다. 사르르 녹는다. 매끈하다, 쫄깃쫄깃하다, 촉촉하다, 따뜻하다’는 등의 아주 매력적인 식감을 만든다.

지방이 부리는 마법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지방은 특정 맛은 숨기면서 동시에 또 다른 맛을 드러내는 신비함이 있다. 이 능력의 덕을 톡톡히 본 대표적인 예가 사워크림이다. 사워크림의 신맛 자체는 어느 누구에게도 매력적인 맛이 아니다. 하지만 사워크림에 든 지방성분이 혀를 감싸서 신맛이 미뢰에 너무 많이 닿지 않도록 적당히 걸러준다. 그리고 사워크림의 은근하고 향기로운 풍미를 더 깊게, 그리고 더 오래 느낄 수 있게 한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지방이 설탕을 능가하는 보물이 될 만큼 뛰어난 장점은 맛이 입 안에서 휘몰아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방은 설탕이나 소금과 달리 입 안에서 은근하고 꾸준하게 매력을 발산하게 한다. 두 성분을 마약에 비유한다면 설탕은 뇌를 급습해서 강타하는 면이 필로폰과 같다면, 지방은 은밀하지만 강력하게 효과를 발휘하는 아편과 비슷하다.

유니레버는 20명이 참여하는 연구팀에 3000만 달러의 연구비를 투입하여 뇌 영상 검사 등을 이용해 음식 중독을 연구했다. 연구팀을 이끄는 프랜시스 맥글런이 가장 몰두한 것은 특정 제품의 인기 비결을 정확히 밝히는 것이었다.

“사람들에게 왜 그런 것을 좋아하냐고 대놓고 물어도 별로 알아낼 게 없다. 본인도 그 이유를 모르기 때문이다. 바로 무의식적인 본능이 그런 기본 행동을 이끌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나는 묻고 답하는 번거로운 과정을 생략하고 바로 뇌 사진을 찍었다. 어떤 신경반응 경로를 거쳐 행동을 하게 되는지 알아보기 위해.”

실제로 그는 실험 참가자에게 말을 한마디도 걸지 않고 뇌 사진만을 들여다보고 식품이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는 복잡다단한 과정을 조금씩 밝혀낼 수 있었다.

3대 영양소 중에서 탄수화물은 단맛으로 단백질은 감칠맛으로 느끼는데, 지방을 맛으로 느끼지 못한다는 것은 상당히 이해하기 힘든 현상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지방은 촉감 정도로만 느끼는 것으로 생각되어 왔다. 그리고 지방 자체는 맛이 없지만 지방이 많은 식품을 고소하다, 맛이 풍부하다. 부드럽다 하면서 본능적으로 좋아한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지방을 감각함이 구체적으로 밝혀지고 있다. 비록 입에서는 촉감으로 느낄지라도 다른 부분에서는 지방 자체를 느끼는 것이다. 대표적인 곳이 위나 소장 같은 내장기관이다. 내장에는 CD36 말고도 G수용체 중에서 지방을 감지하는 것이 몇 가지 더 발견되었다. GPR40은 탄소수 C12~C18개 정도의 지방산을 감지하고, GPR41과 GPR43은 짧은 지방산 분자를, GPR84는 중쇄(10~12)지방산을 감지한다. GPR119와 GPR120은 α-리놀레닉산(ALA)와 다가불포화지방(PUFA) 등을 감지한다.

코로도 느낀다. 최근 모넬연구소의 발표에 따르면 음식의 지방을 냄새로 감지한다고 한다. 사실 지방은 휘발성 물질이 아니어서 냄새로 감지하기 힘들다. 포함된 미세한 지방산을 바탕으로 추론하는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지방 함량이 약간씩 다른 우유의 냄새를 맞추게 하면 정답율이 높다고 하니 무의식적 감각 능력은 있다고 해도 될 것 같다.

최낙언 (주)시아스 이사
서울대학교와 대학원에서 식품공학을 전공했으며, 1988년 12월 제과회사에 입사해 기초연구팀과 아이스크림 개발팀에서 근무했다. 2000년부터는 향료회사에서 소재 및 향료의 응용기술에 관해 연구했다. 저서로는 ‘불량지식이 내 몸을 망친다’, ‘당신이 몰랐던 식품의 비밀 33가지’, ‘Flavor, 맛이란 무엇인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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