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훈 교수의 농식품 비즈니스 이야기] 감정과 식품 선택

영화를 보면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여자 주인공이 아이스크림을 마구 떠먹으며 스트레스를 극복하는 장면이 등장한다(우리나라 드라마에서는 양푼비빔밥이 그 대체제로 등장한다). 우리는 기쁜 일이 있을 때 좋은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그 즐거움을 함께 나눈다. 슬플 때는 함께 술잔을 나누니 그 슬픔도 나누어진다. 돌잔치에도, 결혼식에도, 장례식에도, 제사에도 음식은 등장한다. 남도의 대표적인 건강음식인 홍어는 즐거운 자리에 빠져서는 안 되는 음식이다. 그 알싸함을 즐기면서 막걸리와 함께 담소를 나누다 보면 어느새 그 즐거움이 그 자리의 모든 사람들과 함께 공유된다. 이처럼 식품은 우리의 감정과 많은 관련이 있다.

 
슬픈 감정에 휩싸이게 되면 음식 섭취에 대한 절제력을 잃을 수 있다. 세계적인 식품 소비 행동학자인 코넬대학교의 완싱크(Wansink) 교수 연구진은 사람의 이러한 감정과 식품 소비에 관련된 연구를 했는데(Garg, Wansink & Inman(2007). The influence of incidental affect on consumers' Food intake. Journal of Marketing, 71(1), 194-206.) 몇 가지 재미있는 결과를 찾아냈다.

이 실험은 흔히 심심풀이 식품(Hedonic Food)으로 소비되는 팝콘에 관련된 것이었는데, 일단 발견한 것은 즐거운 감정에 있는 사람들에 비해 슬픈 감정에 있는 사람들이 팝콘을 더 많이 소비한다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영양성분 표시의 영향력이었다. 즐거운 감정에 있는 사람들은 팝콘이 담긴 봉지에 영양성분 표시가 있는 경우든 표시되어 있지 않는 경우든 팝콘 소비량에 유의한 차이가 없었다. 반면, 슬픈 감정에 있는 사람들은 팝콘이 담긴 봉지에 영양표시가 없을 때, 있는 경우에 비해 3배 이상의 팝콘을 소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실험은 사람이 슬픈 감정에 휩싸이게 되면 음식 섭취에 대한 절제력을 잃을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으며, 또한 적절한 정보가 제공되면 무절제한 식품 소비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초콜릿에 대한 동일한 실험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도출되었다. 슬픈 감정에 있는 사람들이 즐거운 사람들에 비해 4배 이상의 양을 소비했다. 반면, 비교적 건강식품이라고 알려진 건포도의 경우에는 반대의 결과가 도출되었다. 오히려 즐거운 감정에 있는 사람들이 더 많은 건포도를 소비하는 성향을 보였다.

저자는 감정 관리의 관점에서 이와 같은 현상을 설명하고 있다. 슬픈 감정에 휩싸인 사람들은 그 감정에서 빠져 나오기 위해 고칼로리의 식품을 더 많이 섭취하고, 기쁜 사람들은 그 즐거운 감정을 유지하기 위해 건강식을 더 많이 섭취한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즉, 스트레스에 가득 찬 여주인공의 아이스크림을 마구 떠먹는 모습에는 행동 과학적인 근거가 상당히 있다.

하지만 그 여주인공이 아이스크림 옆면의 영양성분표를 잠깐이라도 보게 된다면 그런 행동은 하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높을 것이다. 물론, 영화에서 이런 장면이 나온다면 행동 과학적으로는 대단히 훌륭한 연출이겠지만 극의 재미에는 별로 도움이 안될 것이 분명하다. 왕따 당하는 학생들 중에서 과체중인 학생들이 많다.

우리 서울대학교 Food Business Lab.에서도 이와 유사한 실험을 수행하였다. 당시 왕따 문제가 사회적인 이슈로 등장하였는데, 왕따 당하는 학생들 중에서 과체중인 학생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는 식품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문제이다. 우리 연구진이 고민했던 문제는 과체중이기에 왕따를 당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왕따를 당하게 되면 좋지 않은 식습관을 가지게 되어 과체중의 문제가 더 심각해 질 수 있겠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상담과 실험을 통해서 사회적 고립감을 느끼는 그룹의 학생들과 그렇지 않은 학생들과의 식품 선택 행동의 차이를 관찰하였다. 그 결과, 자신이 사회적으로 고립되었다고 느끼는 학생이 상담을 마치고 나갈 때 고칼로리의 음식을 선택하는 경우가 훨씬 많았다. 학생들에게 상담을 마친 후 무설탕 건강빵과 고칼로리 패스트리 중에서 하나를 고르게 하고, 또 무가당 오렌지 주스와 콜라 중에서 하나를 고르게 하였는데, 사회적 고립감을 느낀 학생일수록 고칼로리 패스트리와 콜라를 고르는 비율이 훨씬 높게 나타났다.

이 결과는 왕따를 당하는 학생이 자신을 휘감고 있는 사회적 고립감으로 인해 부적절한 식품 선택을 하게 되고 이로써 과체중으로 발전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악순환의 고리가 심화되는 것이다. 우울감에 빠지게 되면 식품 선택할 때 건강한 의사결정에 어려움이 생긴다.

얼마 전 진도 앞 바다에서 대단히 불행한 사건이 발생하였고, 전 국민이 큰 충격에 고통 받게 되었다. 몇 주 동안 모든 TV 방송에서는 이 사건과 관련한 내용들만 방영되었고 전 국민은 집단적 우울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위의 연구들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우울감에 빠지게 되면 식품 선택 및 소비에 있어 건강한 의사결정을 내리는 데에 어려움이 생긴다.

이런 우울감은 단지 개인의 감정적인 슬픔에 그치지 않고 식품 선택 및 소비 행동에 영향을 미쳐, 결과적으로 국민 건강에 큰 위협이 된다. 정신적 건강과 육체적 건강은 식품 선택 및 소비의 측면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잘못된 것은 함께 힘을 모아 고쳐 나가야 한다. 또한 우리의 건강을 위해서라도 슬픔을 극복해야 할 시기이다.

 
문정훈 서울대 교수
문정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Food Business Lab 교수는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에서 식품 마케팅ㆍ식품 및 바이오산업 전략 등을 가르치며, 농식품 분야 혁신 경영 연구를 위한 Food Business Lab.을 운영하고 있다. Food Business Lab.은 농업, 식품가공, 외식 및 급식, 유통을 포함한 먹고 마시고 즐기는 비즈니스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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