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이 없는 것은 간(소금)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나는 켈로그의 기존 간판제품에서 소금을 전부 빼버린 시험제품을 맛볼 기회를 얻었다. 그리고서 그들이 아무리 소금 중독에서 벗어나고 싶어도 선뜻 나서지 못하는 이유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소금을 빼니 하나같이 엽기요리 경연에서나 맛볼 수 있을 법한 맛이 났기 때문이다.
콘프레이크는 금속 맛이 났고 냉동와플은 마치 지푸라기를 씹는 느낌이었다. 치즈-잇(CHEEZ-IT : 켈로그의 American snack food cracker)은 특유의 황금색 광채를 잃고 누르튀튀한데다가 입천장에 쩍쩍 들러붙었다. 키블러(Keebler) 버터 크래커의 버터 향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다.
“소금은 사실상 음식 맛 전체를 좌우합니다. 이것들도 소금만 뺐을 뿐인데 소금이 상쇄해주던 나쁜 맛이 살아나 전체 맛이 망가져버렸습니다.” 이 엽기 시식회를 동행했던 켈로그 식품공학자 존 케플링거의 설명이다.
아마 소금이 인류 최초의 식품첨가물이자 인류 최후의 식품첨가물일 것이다. 소금만큼 적은 양으로 요리에 강력한 효과를 주는 것은 없다. 분자요리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엘 불리의 페랑 아드리아는 한때 소금을 “요리를 변화시키는 단 하나의 물질”이라고 말한 바 있다.
소금은 음식에 짠맛을 주는 것이 아니라 음식의 전반적인 풍미를 더 강하고 맛있게 한다. 또한 쓴맛을 없애주고 단맛을 강하게 만들며, 이취는 줄이고 향을 더 풍부하게 만들어 준다. 음식에서 짠맛이 난다는 것은 소금을 넣어도 너무 많이 넣었다는 이야기일 뿐이다.
이처럼 소금이 여러 맛의 비밀 병기인 이유는 소금이 생존에 절실한 물질이기 때문이다. 소금의 욕구는 초식동물처럼 소금 섭취가 제한적인 동물일수록 강력하다. 육식동물은 잡아먹는 동물에서 대부분의 나트륨을 섭취한다. 그러나 식물은 나트륨보다 칼륨 위주 체계라 이것을 위주로 섭취하는 채식주의자나 초식동물은 충분한 나트륨을 섭취할 수 없다. 그래서 소금에 대한 갈망이 대단히 강해서 죽음조차도 마다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실제로 사냥꾼들은 짐승들을 총 쏘기 좋은 곳으로 유인하기 위해 소금 덩어리를 이용하거나 천연 소금이 쌓여있는 곳 부근에서 짐승을 기다리기도 한다. 초식동물은 늪이나 습지나 강가의 수초를 찾는다. 수초에는 육상식물보다 많은 나트륨이 함유되어 있기 때문이다. 바다 가까이 사는 개미는 설탕을 좋아하고 바다에 멀리 떨어져 사는 개미는 설탕보다 소금을 좋아한다. 사자는 소금기 있는 내장을 먼저 먹는다. 알래스카에선 육식동물인 북극곰조차 바다표범이 없는 계절엔 해조를 즐겨 먹는다. 그들이 찾는 것은 소금기이다.
소금은 생명활동의 근원이다. 인간의 선조는 물고기이다. 그래서인지 인간의 체액이나 양수의 성분이 바닷물의 성분과 같고, 다만 그 농도가 인간의 경우 0.9%인데, 해수의 농도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차츰 진해져서 3.5%가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병원에서 쓰는 포도당 주사는 포도당 5%에 식염수가 0.9%이다.
소금은 몸의 많은 대사에 관여하며 필요시 장기에 배출하여 소화를 돕고 사용된 소금은 다시 99% 재흡수하여 소모율은 낮다. 하지만 그래도 소량씩은 끊임없이 손실되어 꾸준히 섭취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 몸속에는 항상 소금에 대한 욕망이 숨어 있다. 우리 몸에서 나트륨이 부족하면 몇 분 안에 사망한다. 나트륨이 없으면 신경에서 전위차가 발생하지 않아 인체의 어떤 기관도 작동할 수 없다. 탈수 후 과도한 수분 섭취가 위험한 것은 체액의 나트륨 농도가 낮아져 신경전달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몸은 하루에 1g 이상의 소금 섭취가 필수적이다. 그래서 예전부터 소금 생산자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경제적ㆍ사회적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서기 500~1,000년대를 유럽의 암흑기라고 말한다. 당시 지구의 온난화 현상으로 바다 수면이 1m 가까이 높아져 모든 염전들의 소금 생산량이 급격히 줄어들었고 소금 품귀현상이 생겼다. 소금이 줄자 여기저기서 탈수 현상과 미친 증세를 보이면서 사망자가 속출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소금 품귀현상은 내륙지방으로 들어갈수록 더욱 심해졌다. 결국 사람들이 미쳐 날뛰고 몰골이 흡사 귀신처럼 되어버리면서 소금 성분을 대신 섭취할 수 있는 동물이나 사람의 피를 빨아먹기까지 이르렀다. 동물과 사람의 피는 항상 어느 정도의 염분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아프리카 내륙지방에서는 소금이 모자라 소의 동맥에 뾰족한 대나무관을 꽂고 피를 빨아먹는다. 이랬던 소금이 근래에는 너무 흔하고 저렴해지면서 하루 섭취량이 10g이 넘는 시대가 되었다.
자체로는 짜기만한 소금이 모든 음식 맛의 기본이 되기에 참 줄이기가 힘들고 욕을 먹는 것이다. 간이 맞지 않은 음식은 맛이 있을 수 없다. 달지 않은 과일은 맛이 없는 것과 같다. 주식은 짠맛과 감칠맛, 간식은 감미와 산미가 기본이다. 짠맛이나 단맛만의 문제가 아니고 맛의 중심이 없어져 다른 모든 맛과 향이 빛을 내지 못한다. 맛없다는 것을 결정적으로 좌우하는 것은 소금의 양이다. 그래서 가장 과학적이고 정교한 요리책마저 소금의 양은 확정하지 못하고 적당량으로 표시하는 경우가 있다. 다른 재료는 양이 조금 변해도 최종 맛에 영향은 적지만 음식의 간은 나머지 재료의 차이에 따라 미세한 조정을 필요할 정도로 예민한 탓일 것이다
소금의 마술은 거의 무한하다. 보통 자연물은 아주 복잡한 성분의 조합이다. 이들 구성성분을 순수한 물질로 분리하면 맛은 대체로 무미이거나 그다지 좋지 않는 경우가 많다. 우유가 별 특징 없이 담백하기 때문에 우유에 염을 빼도 맛은 그대로일 것이라 기대할 것이다. 그리고 우유에서 지방을 뺀 탈지분유도 맛은 괜찮다. 하지만 탈지우유에서 염을 제거하면 맛은 아주 나빠진다. 여기에 다시 소금을 넣으면 원래 우유 맛이 난다. 소금 때문에 우유 맛이 나는 것은 아니지만 우유에 원래 들어있는 염이 우유 맛의 비밀 병기인 셈이다.
소금은 이처럼 나쁜 맛은 감추고 좋은 맛은 더 좋게 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대표적으로 쓴맛을 억제하는데 심지어 커피를 추출하기 전에 매우 적은 양의 소금을 넣거나 소금에 절인 올리브는 와인의 쓴맛을 감추는 기능을 한다고 한다. 단맛이나 감칠맛 같이 좋아하는 맛을 더 강하게 느끼게도 한다. 그리고 가장 강력한 것은 향마저 강하게 느끼게 한다. 뇌의 최종 감각연합 영역에서 맛과 향의 감각 연합이 이루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간을 맞추는 기술이야 말로 요리에서 가장 중요한 기술이다.
소금이 건강에 해롭다고 적게 쓰는 것을 권하는데 간이 약하면 맛도 약해져 쉽지 않다. 물론 모든 음식을 싱겁게 먹으면서 재료 본연의 맛을 세심하게 느끼려고 하는 것은 매우 좋은 태도이다. 하지만 막상 그렇게 하기는 쉽지 않다. 더구나 외식의 경우 맛을 경쟁하다보니 자기만 싱겁게 하기는 더욱 어렵다. 싱겁게 먹는 것이 힘들면 소금을 적당히 넣고 제 맛을 즐기면서 적게 먹는 것이 차선일 것이다. MSG와 조화를 통해 소금의 양을 30% 줄이는 전략도 나름 훌륭하다. 핵산 조미료와 병행하면 10~15% 더 줄일 수 있다. 이런 것들이 짠맛을 더 잘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식사량을 줄이는 것만큼 좋은 해결책은 없다. 식사량을 줄이면 비만도 해결되고 탄수화물, 지방, 설탕, 소금, 잔류농약 등 모든 나쁘다는 것도 줄어드니 가장 훌륭한 전략일 것이다. 소금이 건강에 나쁘다고 다른 것을 찾으려는 노력은 더 위험하다. 소금만큼 과량에 적응한 미네랄은 없다. 1g이면 가능한 소금을 10g 넘게 먹고 있다. 다른 미네랄은 필요량의 3배만 넘겨도 부작용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소금은 나름 가장 안전한 짠맛 물질이다. 소금의 대안을 찾기보다는 또는 싱겁게 먹고, 싱겁게 먹기 힘들면 식사량이라도 줄여야 할 것이다. 즐겁게 맛있게 먹지만 절제할 줄 아는 것이야 말로 가장 내 몸을 위하는 셈이다.
최낙언 (주)시아스 이사
서울대학교와 대학원에서 식품공학을 전공했으며, 1988년 12월 제과회사에 입사해 기초연구팀과 아이스크림 개발팀에서 근무했다. 2000년부터는 향료회사에서 소재 및 향료의 응용기술에 관하여 연구했다. 저서로는 ‘불량지식이 내 몸을 망친다’, ‘당신이 몰랐던 식품의 비밀 33가지’, ‘Flavor, 맛이란 무엇인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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