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의 시각화와 소비자 행동

[문정훈 교수의 농식품 비즈니스 이야기]

소비자는 식품을 구매할 때 불확실성이 줄고
내 입맛에 맞다고 확신하면 구매량을 늘린다

지금은 맥주와 막걸리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지만, 카이스트 경영과학과 재직시절 와인에 심취했던 적이 있다. 와인 병의 라벨만 가지고는 그 제품이 과연 내 입맛에 맞을 지 모르기 때문에 와인을 고를 때에는 대단히 신중해야만 했고, 그럴 때마다 세계 제일의 온라인 와인업체인 wine.com에 접속하여 와인의 정보를 찾곤 했다. Wine.com에는 ‘로버트 파커’나 ‘와인 스펙테이터’ 같은 공신력 있는 품평 점수가 나와 있어서 상당한 도움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wine.com에서 와인들을 검색하다가 어떤 그림에 내 시선이 꽂혔다. 각 와인의 맛을 당도, 바디감, 산도, 탄닌향, 오크향의 정도로 분류하여 표시한 일종의 ‘맛의 시각화’ 표였다.

전통식품의 맛을 시각화하면 어떨까?
당시 wine.com은 이 시각화 표를 베타 테스트하고 있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러한 방식의 표시는 그 사이트에서 사라졌다(현재는 좀 더 단순화된 형태의 표를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내 머리 속에서는 ‘이러한 방식의 시각화를 우리 전통 식품의 온라인 쇼핑몰에 적용해 보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이런 나의 고민을 농촌진흥청에서 이해해 주었고, 농촌진흥청의 지원 하에 충남대 식품영양학과 김미리 교수님과 김치와 고추장에 대한 맛의 시각화 연구에 들어가게 되었다.

   
▲ 배추김치와 알타리김치.

김치는 짠맛-단맛-신맛-매운맛-젓갈맛의 다섯 가지 맛을, 고추장은 단맛-짠맛-신맛-매운맛-메주맛의 다섯 가지 맛을 기준으로 삼았다. 먼저 맛의 기준점을 찾기 위해, 한 달 여 훈련 받은 관능 전문가 그룹이 시중에 판매되는 일반적인 김치 20여종의 맛을 분석하였다. 물론 맛의 평가에 사용되는 다양한 장비들도 동원이 되어서 기준점을 찾아 내었다. 이러한 기준점을 바탕으로 각 지역에서 제대로 만든 우리 전통의 김치와 고추장 약 10종을 대상으로 맛의 시각화표를 제작하였다.

김치와 고추장 10종을 대상으로 맛의 시각화표 제작
관능 전문가 그룹은 꽤 오랜 기간 동안 다양한 김치와 고추장를 공복에 먹는 고통을 감수하며 실험을 도왔고, 실험에 돌입한지 석달여 만에 전통 방식의 김치와 고추장에 대한 시각화 표가 완성되었다.

이 맛의 시각화표를 만들 때 신경을 가장 썼던 부분은 맛의 기준이 제품의 품질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들의 취향에 관련된 것이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즉, 짠맛, 단맛, 신맛, 매운맛, 젓갈맛(김치), 메주향(고추장)은 모두 취향에 관련된 기준들이지 객관적인 품질을 나타내는 기준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감칠맛은 품질을 나타내는 기준이 될 수 있으므로 기준 항목에서 제외하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감칠맛이 높으면 품질이 높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김치와 고추장의 맛을 시각화하는 과정에 있어서 재미있는 사실 몇 가지도 알게 되었다. 우리는 주로 경기도 지역의 전통김치와 전통고추장을 대상으로 실험하였는데, 경기도의 김치들은 확실히 젓갈맛이 강하지 않은 평균이거나 평균 이하의 젓갈맛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반면, 고추장의 경우는 매우 놀라웠다. 시중의 고추장에서 거의 느낄 수 없는 메주향이 경기도 전통 방식의 고추장들에는 상당히 강하게 느껴진다는 점을 발견하였다.

10여개 맛의 시각화표를 온라인 쇼핑몰에 적용
당시 우리의 가설은 이러하였다. 소비자들이 새로운 식품을 구매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그 제품이 과연 내 입맛에 맞을 지 판단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트에서는 맛뵈기 아주머니께서 열심히 신제품을 소비자들에게 맛보게 하여 구매의 불확실성을 낮추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온라인 구매 환경에서는 절대 맛을 볼 수가 없으므로 이러한 맛의 시각화 표가 소비자의 구매 의사결정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그러나 위험요소도 존재하였다. 이 시각화표를 통해 이 제품이 내 입맛에 맞을지는 쉽게 판단할 수 있어 구매를 촉진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이 제품이 내 입맛에 맞지 않을지도 쉽게 판단할 수 있어 오히려 매출 감소로 이어질 수도 있었다.

우리는 완성된 10여개의 맛의 시각화표를 실제 온라인 쇼핑몰에 적용하였고, 두 달여 동안 소비자들의 실질적인 구매 행동을 관찰하기로 하였다.

맛의 시각화가 매출에 크게 기여
두 달 후 온라인 쇼핑몰에서 전통김치 혹은 전통고추장을 구매한 소비자들의 구매 데이터가 수집되었고, 떨리는 마음으로 분석에 들어갔다. 시각화표가 적용되기 전과 적용된 후, 그리고 적용된 제품들과 적용되지 않은 제품들 간에 차이가 있을까? 과연 우리가 개발한 맛의 시각화 표는 전통 김치와 고추장의 매출에 도움을 주었을까?

분석의 결과는 자명하게 드러났다. 다행스럽게도 이 맛의 시각화가 매출에 크게 기여를 한다는 것이 밝혀졌고, 그 이유는 매우 흥미로웠다. 소비자들의 구매 빈도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1회 구매 시 구매 양이 크게 증가하였다. 즉, 소비자들은 이 시각화표를 통해 이 제품이 내 입맛에 맞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니 큰 용량의 제품을 더 많이 구매하는 행동을 보이는 것이었다.

구매 불확실성의 감소가 더 많은 양의 구매를 촉진한 것이다.우리는 이 연구 결과를 국제 학술대회에 발표하였고, 현재 저명 학술지에 게재하기 위해 준비 중에 있다. 우리의 연구가 현장에 실질적인 도움이 된다는 것은 매우 보람 있는 일이다. 물론 이 맛의 시각화는 비단 전통 식품뿐만 아니라 다양한 다른 식품의 경우에도 소비자들의 구매 불확실성을 낮추는 데 도움이 될 것임이 분명하다.

이 시각화 표가 일반 소비자들이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는 아쉬움의 이야기도 있었지만, 적절히 단순화하면 해결 가능하다. 우리의 연구 결과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이 연구가 우리 식품의 온라인 판매 경쟁력 강화에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문정훈 서울대 교수
문정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Food Business Lab 교수는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에서 식품 마케팅ㆍ식품 및 바이오산업 전략 등을 가르치며, 농식품 분야 혁신 경영 연구를 위한 Food Business Lab.을 운영하고 있다. Food Business Lab.은 농업, 식품가공, 외식 및 급식, 유통을 포함한 먹고 마시고 즐기는 비즈니스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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