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진수
한국식품연구원 책임연구원
[오피니언] 맹진수 한국식품연구원 융합기술연구단 단장

바이러스는 유전물질인 핵산과 성된 가장 원시적인 미생물로 분류되며 유전 기능과 복제를 통한 대량 증식이라는 생명체의 고유한 특성을 갖고 있어 불완전하지만 생명체로 간주된다. 그런데 바이러스라고 하면 에이즈, 사스, 신종플루, 조류독감 등과 같은 범세계적 유행성 전염병을 일으키는 무서운 병원균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질병을 일으키는 세균에게는 무서운 존재이지만 인간에게는 전혀 해를 입히지 않는 이로운 바이러스가 있다. 세균을 잡아먹고 사는 박테리오파지(Bacteriophage)가 그런 바이러스인데, 지구상에 가장 많은 종류와 개체수를 갖는 생명체로서 담수나 해수 1CC에 약 5천만에서 1억 개가 있다고 추산되고 있다. 먹이가 되는 세균에 감염해 많게는 천개로 증식한 후 세균을 터트리고 나와 다시 감염한다. 또한 이 종류의 바이러스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특정 종류의 세균만을 먹이로 하며 인간을 비롯한 다른 동식물, 심지어 다른 종류의 세균에도 전혀 감염을 하지 못한다.

최근 전세계적으로 항생제가 듣지 않는 슈퍼박테리아가 출현해 인류를 위협하면서, 항생제를 대체해 슈퍼박테리아를 제압할 수 있는 새로운 생물학적 항생물질로서 박테리오파지가 주목받고 있다. 이렇게 세균을 박테리오파지로 제어하는 기술을 파지요법(Phage Therapy)이라고 한다.

미국에서는 이미 바이러스에 의한 식중독 세균의 제어가 상용화되고 있으며 2006년 리스테리아균을 제어하는 박테리오파지 제제가 FDA에서 승인을 받은 것을 시작으로 대장균 O157:H7, 살모넬라균 등에 대한 제제가, 그리고 토마토, 고추 등의 채소의 세균병을 제어하는 박테리오파지 제제가 EPA의 승인을 받고 출시되었다. 2010년부터 카길社는 가축용으로 항생제 대신 대장균 O157:H7을 제어하는 박테리오파지 스프레이 제제를 사용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이와 관련된 연구가 최근 시작됐으며 기업체에서 가축용 제품이 출시되기도 했다. 그러나 식약처 식품첨가물 관련 규정에 의하면 아직까지 바이러스는 위해물질로 분류돼 식품에 첨가할 수 없는 것으로 돼 있다.

식중독세균의 검출 시스템으로 박테리오파지를 항체 대신 검출소자로 사용하는 연구가 최근 시도되고 있다. 박테리오파지는 항체나 인공항체인 앱타머와 같이 생산에 필요한 노력과 비용이 상대적으로 적다. 이 바이러스에 표지물질을 부착해 숙주세균에 대해 특이성이 매우 높은 검출소자로 만들어 효율적인 검출시스템으로 사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첨단 유전자분석기술을 미생물군집 분석에 적용하게 되면서 발효식품, 인체의 장내(腸內) 등에 대한 미생물의 군집 차원의 분석을 가능하게 한 마이크로바이옴(Microbiome) 연구가 최근 활발하다. 이에 의하면, 우리나라 발효식품의 숙성과정에서 단계별로 번성하는 미생물 종류가 달라지는데 어떤 미생물군집이 번성하느냐에 따라 그 발효식품 맛이 좌우된다는 연구 결과가 최근 발표됐다. 또한, 발효식품에서 숙성에 따른 미생물 군집과 박테리오파지 군집 생장의 변이가 동시에 일어나는 것이 확인됐고, 특정 세균군집의 감소는 특정 박테리오파지들의 번성에 의한 것으로 추정돼 이를 이용하면 발효식품의 품질을 조절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박테리오파지는 세균이 지구상에 나타난 40억 년 전부터 세균을 먹이로 공격해 온 천적으로서 아직도 세균에 대해 우위를 점하고 있는 포식자이다. 한편 인간은 항생제라는 무기를 개발한 후 약 100년간 세균과 싸워왔고 한 때 인간의 승리처럼 보였다.

그러나 새로운 항생제를 개발하는 인간의 능력을 돌연변이라는 무기로 신속하게 대처하며 전세를 역전시킨 세균의 우세로 보이는 시점에 도달하였다. 자연계에서 이미 오래전부터 세균에 대해 효율적인 제어능력을 가진 바이러스인 박테리오파지를 이용하는 연구는 첨단 생물학 연구를 접목한 새로운 기술임과 동시에 생태계 환경을 보전하는 지혜로운 대처 방안이 될 것이다.

주간 식품저널 2014년 5월 28일자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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