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훈 교수의 농식품 비즈니스 이야기]

필자는 친분이 있던 한 중견 설탕가공품 제조업체 대표를 도와드린 적이 있다. 그 업체의 주력상품은 사탕, 솜사탕, 초콜릿가공품 등이다. 몇 년 전 그 업체 대표가 찾아와서 새로 개발하고 있는 제품에 대해 논의했다. 그 신제품의 콘셉트는 튜브에 든 짜먹는 초콜릿이었고, 주 고객층은 제주면세점을 방문하는 외국 관광객이었다. 필자는 카카오 매스의 함량 조절과 함께 포장에 대한 이야기를 강조했다. 얼마 후 가지고 온 시제품은 시중에 흔히 팔리던 짜먹는 형태의 풍선껌의 튜브와 유사했다. 나는 대표에게 용량을 늘리고 포장을 달리 하자고 제안했다.

오랜 싸움(?) 끝에 새로운 튜브 포장 제품이 나왔고, 그 제품은 예쁜 종이상자에 담겨있었다. 종이박스에서 튜브를 꺼내서 쥐어보니 사이즈도 커져서 손에 잡히는 그립감이 개선돼 있었다. 나는 시제품 몇 개를 수업시간에 가지고 갔다. 강의실 앞에 서서 학생들에게 박스를 들어서 열면서 튜브를 꺼내며 물었다. ‘이게 무엇인 것 같습니까?’ 학생들 사이에서 ‘핸드크림!’, ‘화장품!’이라는 목소리가 나왔다. 수업 시작 전에 아무 말 없이 학생들 곁으로 가서 박스를 열어 튜브를 꺼내고 손을 내보라고 하고, 학생들의 손에 초콜릿(분명히 초콜릿색과 향이 강하게 났다)을 짜주었더니, 다들 그것을 손에 바르고 심지어는 얼굴에 바르려는 학생들도 있었다. 나는 그 때 성공을 직감했다.

이 제품은 제주도 면세점에 진열됐고, 제주도에 놀러 온 일본과 중국의 주부들에게 불티나게 팔렸음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일단 그들 관심 카테고리의 포장형태로 시선을 끌었고, 제품을 쥐었을 때 남성을 연상할 수 있는 사이즈와 그립감, 그리고 라벨을 읽었을 때 이것이 화장품이 아닌 초콜릿이라는 놀라움(arousal)이 제대로 작동했던 것 같다. 나중에 내가 그 업체 대표에게 다시 제안한 것은 튜브의 주둥이 부분을 개선하자는 것이었는데, 안타깝게도 반영되지는 못했다.

전자제품이나 가구, 옷 등과 비교해 식품의 구매는 정보가 부족한 상태에서 구매행위가 일어난다. 전자제품을 사기 전에 인터넷으로 찾아보고, 매장에서 작동을 해 본다. 가구나 옷도 그러하다. 하지만 맛보고 난 후 식품을 구매하는 일은 거의 없다. 영업사원이 설명해 주지도 않는다. 식품은 일단 시선을 끌어야 하고, ‘손으로 잡아 보고 싶다’라는 욕망이 생겨야 하고, 잡았을 때 기분이 좋아야 한다. 그래야 장바구니에 들어갈 확률이 발생한다.

식품안전과 건강은 그 다음이다. 맛은 재구매와 직결돼 있다. 매대 위에 진열돼 있는 수많은 식품 중 손으로 잡아 보고 싶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소비자 행동을 이해해야 하고, 문화코드를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식품 그 자체에도 적용이 돼야 하겠지만, 그것을 담는 그릇이나 포장에도 적용이 돼야 한다. 내용도 중요하지만, 형식도 중요하다.

   
문정훈 서울대 교수
문정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Food Business Lab 교수는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에서 식품 마케팅ㆍ식품 및 바이오산업 전략 등을 가르치며, 농식품 분야 혁신 경영 연구를 위한 Food Business Lab.을 운영하고 있다. Food Business Lab.은 농업, 식품가공, 외식 및 급식, 유통을 포함한 먹고 마시고 즐기는 비즈니스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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