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자기로 된 막걸리잔을 맥주잔으로 바꿨더니 깜짝 놀랄만한 기적이...

[문정훈 교수의 농식품 비즈니스 이야기]
 

 
국내에서 전통 유기농 막걸리로 크게 성공한 한 외식업체가 한류, 한식 세계화의 바람을 타고 일본 미식의 본고장인 오사카로 진출했다. 이 외식업체는 퓨전 한식과 다양한 전통 막걸리로 일본 소비자를 공략, 몇 개월 후에 주 고객층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한류의 영향권에 있는 20대 후반에서 30대 후반의 직장 여성들이 퇴근 후 들러서 수다를 떨면서 한식요리와 막걸리로 그 날의 피로를 푸는 장소로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이 업체의 대표는 고민에 빠졌다. 손님들이 음식은 맛있게 먹으면서도 막걸리는 홀짝거리기만 할 뿐이었다. 당연히 막걸리 매출이 오르지 않으니 영업이익률이 높지 않은 상황.

그래서 업체 대표와 친분이 있던 필자가 문제점을 찾아 해결하기 위해 오사카로 건너갔다. 가서 보니 큰 문제는 없어 보였다. 정갈한 한식이 아름다운 그릇에 담겨 나오고, 홀은 깨끗했다. 서빙은 훤칠한 외모의 한국 남성이 세련된 매너로 일본 여성 고객에게 잘 하고 있었다. 막걸리도 아름다운 크리스털 병에 담아 우리 전통 도자기 잔과 함께 제공되고 있었다.

필자는 서비스에서는 큰 문제를 찾을 수 없었고, 오히려 일본에서 ‘여성을 위한 술’로 인식되고 있는 막걸리의 이미지를 바꿔 놓을 방안과 음주량이 상대적으로 많은 남성 고객층을 끌어 들일 방안에 대한 팁만 드리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즉,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온 셈이다.

한 달 후 그 외식업체 대표를 다시 만났는데, 그녀의 얼굴에 미소가 가득 차 있었다. 객당 막걸리 소비량이 급증했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 어찌된 일이냐고 물었더니, 한 재일교포 외식업체 전문 컨설턴트가 매장에 와서 손님들을 꼼꼼히 살펴보더니 도자기로 된 막걸리 잔대신 맥주잔이나 와인잔으로 바꾸라고 했다는 것이다.

외식업체 대표는 맥주잔이나 와인 잔에 막걸리를 따르면 색이 탁하고 앙금이 남아서 한국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고 했으나, 그 컨설턴트는 믿고 한 번 해보라고 했다. 업체 대표는 속는 셈 치고 다음 날부터 도자기 잔 대신 맥주잔으로 바꿨더니 여기서 기적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손님들이 막걸리를 쭉쭉 들이키기 시작한 것이다.

비결은 이러하다. 다도문화가 일반화된 일본인들은 도자기 잔을 잡으면 자신도 모르게 다도 문화에 젖은 행동이 나오게 된다. 잔을 두 손으로 잡고 입술을 살짝 갖다 대고 조심스럽게 홀짝이는 바로 그 행동이다. 이 도자기 잔 대신 맥주잔을 잡으니 다도에서 나온 행동은 사라지고, ‘음주’할 때의 행동이 나오기 시작한다. 똑같은 내용인데 형식을 바꾸니 모든 것이 달라졌다. 그 외식업체는 그 날을 기점으로 브레이크 이븐 포인트를 넘어설 수 있었고, 한류의 거품이 꺼진 지금도 일본에서 좋은 성과를 올리고 있다.

문정훈 서울대 교수
문정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Food Business Lab 교수는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에서 식품 마케팅ㆍ식품 및 바이오산업 전략 등을 가르치며, 농식품 분야 혁신 경영 연구를 위한 Food Business Lab.을 운영하고 있다. Food Business Lab.은 농업, 식품가공, 외식 및 급식, 유통을 포함한 먹고 마시고 즐기는 비즈니스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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