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의 시작

미국 와인의 대부분은 캘리포니아에서 생산되는데, 이 곳은 이상적인 기후조건에 풍부한 자본과 우수한 기술을 적용하여 세계적인 품질의 와인을 생산하고 있다. 전통과 명성에 있어서 유럽 와인에 뒤지지만, 맛은 유럽 와인과 비교하여 차이가 거의 없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초기, 유럽에서 건너온 이민자들은 미국 동부에 유럽에서 가져온 포도를 심었으나 기후조건이 맞지 않아 잘 자라지 못하고, 1848년 캘리포니아가 미국 영토로 편입되어 골드러시가 시작되자 캘리포니아에 많은 사람이 모이면서 지중해성 기후에 적합한 와인용 포도나무를 재배하고 와인산업이 시작되었다. 이 때부터 소노마와나파에 부에나 비스타, 찰스 크룩 등 와이너리가 자리를 잡기 시작하였다. 이어서 1869년 대륙횡단 철도가 완성되면서 캘리포니아는 미국의 중요한 와인산지로 자리를 잡게 된다.

필록세라

1880년대에 캘리포니아 대학에서 포도재배와 와인제조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고, 주 정부에 포도재배 위원회도 설립함으로써 기술적인 대책을 수립하기 시작하여, 캘리포니아 와인은 국제대회에서 우승도 하는 등 상당한 발전을 하게 된다. 그러나 와인양조에 대한 지식이나 기술적 바탕이 없는 상태로 이어오다가, 필록세라(Phylloxera vastatrix)의 침범으로 큰 타격을 받는다.

이 필록세라는 원래 미국 동부의 토종 포도와 공생하던 것으로 미국 토종 포도는 저항성이 있어서 그렇게 해를 주지 않았지만, 새로 들어온 유럽종 포도에게는 치명적이었다.

이 필록세라는 캘리포니아보다는 유럽에 먼저 전파되어 유럽 전역의 포도밭을 황폐화시키고, 그 후에 캘리포니아에 전파되어 한참 성장하는 미국의 와인산업을 뒤흔들었지만, 저항력이 있는 미국종 포도 대목에 유럽 종 포도를 접붙이기를 함으로서 해결할 수 있었다.

금주령

다시 빠른 속도로 회복하여 20세기 초에 캘리포니아에는 300여종의 품종이 자라고, 800여 개의 와이너리가 생기는 등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루지만, 1920년부터 시작된 금주령은 와인산업을 완전히 붕괴시킨다. 1800년대 말부터 신앙부흥운동의 일환으로 금주서약, 금주동맹 순서로 발전하다가 1920년부터 모든 술의 상업적 제조와 판매를 금지시킨 것이다.

단, 미사용과 가정용만 허용하였는데 이 때문에 일시적으로 포도값이 상승하고 와인 소비량이 오히려 증가하는 기현상을 보인 적도 있다. 그러나 밀주, 밀수 등 불법거래가 성행하는 등 부작용 때문에 1932년 민주당에서 금주령 폐기를 들고 나와 선거에 승리하여 이를 폐지하기에 이른다.

부흥

미국은 금주령 이후 와인제조 시설과 와인메이커, 와인용 포도 부족 등으로 곤란을 겪게 되지만, 많은 포도밭이 생기고 세제개선, 기술연구, 광고, 교육 등 다방면으로 노력하면서 오늘날의 캘리포니아 와인의 기초를 확립하게 된다.

그러나 대공황으로 인한 경제적인 어려움과 이어서 일어난 2차 대전의 영향으로 1950년대에 이르러서 비로소 안정을 찾게 된다. 그러니까 캘리포니아 와인의 역사는 200년이 넘지만, 실제로는 2차 대전 이후에 비약적인 발전을 한 셈이다. 가장 짧은 시간에 와인의 명산지가 된 것이다.

천혜의 조건과 과학적인 발전

캘리포니아 와인이 짧은 시간에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나파와 소노마 카운티 등 고급와인 생산지역이 샌프란시스코에서 불과 한시간 거리에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여 와인의 맛을 보고, 또 사업에 참여하는 등 일반인의 관심을 끌 수 있었기 때문이다.

둘째는, 일조량이 많고 온화한 기후로써 어떤 포도라도 잘 자랄 수 있는 기후조건을 갖추고 있다. 물론 다른 지역의 날씨처럼 급작스런 변화도 있지만 적어도 이 곳만은 날씨에 관한 걱정을 안 해도 좋을 정도이다.

셋째는, 대기업이 참여하고, 유럽과 일본에서 자본이 유입되어, 자본과 시장에서 비교적 여유를 갖게 된 것이다.

그리고 결정적인 것은 데이비스(U.C. Davis)와 프레즈노(Fresno State University) 주립대학에 와인양조학(Enology)과가 설립되어 젊은 와인 메이커를 교육시킬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하여, 포도재배, 토양, 비료, 기술개발 등에 관한 연구와, 와인산업에 종사할 수 있는 우수한 인재를 양성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천혜의 조건에 우수한 자본과 시장 그리고 과학적인 뒷받침이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프랑스 와인과 대결

이윽고 1976년 파리의 화이트와인 테이스팅에서‘샤토 몬텔레나(Ch. Montelena)’의 샤르도네가 우승을 하고, 또 레드와인 테이스팅에서‘스태그스 립(Stags Leap)’의 카베르네 소비뇽이 우승하면서 국제적인 인식이 바뀌게 된다.

1972년 프랑스 보르도의 바롱 필립 드 롯쉴드(Baron Philippe de Rothschild)는“미국 와인은 다 똑같다. 코카콜라 맛이 난다.”라고 했는데, 1979년에는 로버트 몬다비하고 합작하여‘오퍼스 원(Opus One)’이라는 명작을 만들게 된다.

현재 캘리포니아에는 1,000개 가까운 와이너리가 있으며, 와인 생산량은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에 이어 네 번째이다.

과학기술의 성과

요즈음 미국인들의 와인에 대한 자존심은 대단하다. 이제는 유럽의 전통이나 명성에도 귀를 기울이지 않으며, 웬만한 포도밭은 인공위성과 정보를 주고받을 정도의 과학적인 방법으로 포도를 재배하고 와인을 만들고 있다.

캘리포니아는 이탈리아보다 크며, 그 기후와 토양의 다양성 때문에 세계 어느 스타일의 와인이든 다 만들 수 있다. 사실, 자연 혜택, 자본, 시장, 기술, 어느 것 하나 유럽에 비해 뒤질 것이 없다는 점에서 잠재력이 무한하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김준철 김준철와인스쿨 원장

고려대 농화학과 졸업
고려대 대학원 식품공학과(농학석사)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와인양조학과 수료
동아제약 효소과 및 연구소 근무
수석농산 와인메이커
서울와인스쿨 원장
한국와인아카데미 원장
한국와인협회 및 (사)와인생산협회 부회장
2007 제1회 대한민국 주류 품평회 심사위원(국세청장)
2009 주류품질인증제품심사위원(국세청장)
2009 한국 전통주 품평회 심사위원(농촌진흥청 국립과학원장)

 


<식품저널 2011년 10월호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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