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생활교육에 관심 있는 지인들과 대화를 나누다가 20년 전 경험담을 나누게 되었다. 미국에서 3년간 머문 적이 있는데 그때 아이들이 초등학교 저학년이었다.

큰 아이가 아들인데 하루는 학교에서 돌아와 오늘 숙제는 요리책을 보고 재미있어 보이는, 만들어 보고 싶은 요리를 찾아오는 것이란다.

식성이 좋고 무엇이든 맛있게 먹는 이 아이가 신이 나서 엄마의 요리책을 이리저리 책장을 넘기며 침을 꿀꺽 삼키기까지 한다.

드디어 자기가 만들 수 있을 것 같은 간단한 과자 종류를 하나 찾아냈다.

그런데 이것이 무슨 시간에 하는 공부냐고 하니까 Math(수학) 시간이란다.

의아했다. 다음 날은 그 요리의 분량을 적어가야고 한다면서 5인분 레시피를 적어가지고 갔다. 그러더니 다음날은 다시 20인분을 만들 수 있는 분량을 적어오라는 숙제를 가지고 왔다.

아하! 지금 곱하기 공부를 하고 있는 모양이구나. 그제서야 깨닫고 이렇게도 가르치는구나 생각했다.

옛날 나의 초등학교 시절 한 반 친구들이 다 같이 서서 구구단을 외우다가 잘 외우는 친구는 자리에 앉고 못 외우는 친구들은 끝까지 서있었던 기억이 아련히 떠오른다. 요즘 들어 오바마 미국대통령은 무슨 이유인지 한국 교육을 미국이 본받아야 한다고 자주 말하고 있지만 이렇게 문제해결을 위한 접근 방식을 가르치는 미국교육이 그 당시 나에게는 참신하게 다가왔었다.

그 프로젝트는 거기에서 끝나지 않고 하루는 집에서 그 요리를 만들어 보아라. 그리고 한 반 학생 20명이 먹을 수 있을 만큼 만들어 오라고 하였다.

엄마의 도움을 받아도 좋다고 하였으므로 나도 좀 도와주면서 서툴지만 친구들과 나누어 먹을 생각에 열심히 만들어서 학교에 가지고 갔다.

다른 친구들도 그리했을 것이다. 만들어 온 음식을 먹어보며 즐거운 하루를 보내면서 나누는 기쁨, 뷔페 파티의 예의 등을 배운 것 같았다.

그런데 이렇게 먹기까지만 하고 끝내는 것이 아니었다. 다음부터는 요리책을 만드는 공동 작업을 하였다.

반 친구들이 모두 한가지씩 만들었으니 20가지 요리가 나온 것이다.

편집, 일러스트, 제본, 홍보, 판매 등등의 역할을 맡아 조를 짜서는 서툴지만 초등학생으로서는 훌륭하게 요리책을 하나 만들어 내더니 이것을 학기가 끝나는 마지막 날 학부모들이 선생님과 공식 면담이 있는 시간에 판매를 하였다.
 
책값은 한 권에 1달러. 책을 사지 않을 어머니가 어디 있겠는가? 책을 사는 마음도 뿌듯하기만 하였다.

다음 학기 시작하는 날 그 요리책을 팔아서 모은 돈으로 학교에 벤치를 하나 구입해서 어느 장소에 놓았다는 안내문을 아이가 가지고 왔다.

이런 과정을 지켜보면서 깊은 감명을 받고, 교육에 관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여러 번 지인들에게 소개했다.

마침 이번에는 식생활교육이 화제가 되었고, 기존 지식 위주 영양교육의 틀을 깨고 식생활 체험을 하면서 저절로 깨닫게 되는 교육 방식을 논의 하던 중 생각이 나서 또 한 번 소개를 했던 것이다.

조리를 통하여 우리의 식생활에 관련된 것만 가르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면 수학, 과학은 물론 역사, 문화, 사회생활, 환경문제 등 선생님의 창의력과 열성으로 무엇이든지 가르칠 수 있겠다는 생각에 모두 공감하였다.

조리는 정말 창조적인 활동이고 창의성을 기를 수 있는 교육활동이라는 점에 의견일치를 보고 유쾌한 시간을 함께 한 계기로 교재개발 등의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어린이의 키 높이에 맞는 조리시설, 안전한 조리도구 사용, 적절한 교재의 개발 등 앞으로 할 일이 많이 있겠지만 창의적인 생각으로 지금부터 할 수 있는 것은 해 나가야겠다.

김향숙
한국식품조리과학회장
충북대학교 식품영양학과 교수

 
 

주간 식품저널 2011년 4월 13일자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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