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과 김치는 발효식품

와인은 우리나라 고유의 술도 아니고 우리가 자주 마시던 술도 아니다. 전혀 다른 풍토와 문화적 배경을 가진 서양의 대표적인 술이다. 그러니 그 맛과 멋을 이해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 차라리 마음이 편할 상 싶다. 그렇지만 와인을 우리의 된장이나 김치처럼 옛날부터 서양 사람의 식탁을 차지한 하나의 발효식품이라고 생각한다면, 수천 년 동안 찬란한 발효문화를 가꾸어 온 우리나라 사람은 약간만 입장을 바꾸어 생각한다면 오히려 더 쉽게 와인을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가벼운 와인부터

입장을 바꿔서 김치의 맛을 느껴 보려고 노력하는 서양 사람에게 김치의 맛을 보여주면서 김치의 깊은 맛을 알려주려고 한다고 가정해 보자. 김치 맛을 잘 모르는 사람에게 작년 김장 때 담근 묵은 김치의 맛이 최고라면서 맛을 보라고 주면 묵은내 때문에 거부감을 더 가질 것이다. 먼저 맵지 않은 동치미 국물의 맛을 보여주면서 거기 있는 무나 배추의 사근사근한 맛을 익히고, 차츰 익숙해지면 여러 종류의 붉은 색 김치를 맛보게 한 다음, 오래 묵은 김장김치의 맛을 과연 느끼는지를 살펴야 한다. 그리고 별도로 깍두기의 맛도 보이고, 파김치, 갓김치, 고들빼기와 같은 특별한 김치의 맛도 알게 해주는 게 좋다.

와인도 마찬가지다. 와인을 잘 모르는 사람에게 오래 묵은 값비싼 와인을 따라 주면서 그 깊은 맛을 느껴보라고 해야 소용없는 일이다. 먼저 신선하고 가벼운 화이트와인의 맛을 보여주고 그 색깔과 향 그리고 맛을 느끼게 하고, 그것을 즐길 수 있는 단계를 지난 다음에 가벼운 레드와인을 권하는 게 좋다. 그러면서 육류요리와 레드와인의 떫고 씁쓸한 맛과 조화를 즐길 줄 알고, 더 발전하면 오래된 고급 와인의 깊은 맛을 좋아하지는 못할망정 “아하 이런 맛을 그들은 좋아하는구나.”하고 그 맛을 이해할 수는 있을 것이다.
 
김치보다 더 다양한 와인

우리나라 김치의 종류는 많기도 하지만, 지방마다 그 특색이 있고 또 집안마다 그 솜씨가 다른 만큼 그 종류를 헤아리기도 어렵거니와 그 맛을 다 알 수도 없는 일이다. 대개 서울 김치는 담백하고, 전라도 김치는 짜고 맛이 진하다는 식으로 지방별 특성을 이해하는 정도면 우리나라 김치의 맛을 안다고 할 수 있다. 와인도 포도의 품종이 수없이 많고, 각 나라나 지방에 따라 맛이 다르고 또 해마다 그 맛이 변하기 때문에 역시 그 종류를 다 알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대개 유명한 생산지의 와인의 특성을 파악하는 선에서 만족하고, “맛있다”, “맛없다” 둘 중 하나만 선택하면 충분하다. 그러면서 그 맛을 가격과 비교해서 구입을 할 것인지 결정해서 맛있게 마시면 된다.
 
오래된 와인
 
김치와 비교해서 와인을 생각하면 오래된 와인이란 것도 어떤 것인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일 년 내내 김치를 먹지만 김장은 일 년에 한 번하면서 다른 때보다 훨씬 더 정성스럽게 담근다. 즉 오래 보관하기 위해서 짜고 진하게 담그고 겨울에 먹을 것과 봄에 먹을 것 그리고 여름까지 먹을 것을 따로 따로 만들어 온도가 일정한 땅속에 저장한다. 와인도 마찬가지로 오랜 시간 숙성시켜 깊은 맛을 내는 와인은 담글 때부터 보통 와인과 다르게 취급된다. 먼저 장기간 숙성에 적합한 품종을 선택하고, 레드와인의 경우 껍질과 함께 침지시키는 시간을 길게 하여 껍질과 씨에서 우러나오는 타닌 성분을 증가시키고 아울러 색소도 많이 추출되도록 배려한다. 그래야 오래 두어도 맛이나 향이 변질되지 않고 오히려 더 나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바로 바로 소비되는 값싼 와인은 오래 두면 맛이 개선되는 것이 아니라, 얼마 있지 않아 맛이 변하게 된다. 즉 겉절이를 아무리 오래 두어도 묵은 김치가 될 수 없는 원리나 마찬가지이다.
 
숙성과 저장

김치는 익어야 맛이 난다. 어느 정도 숙성기간을 거치면 고추의 매운맛이 부드러워지고 젓갈도 분해되면서 여러 가지 성분과 조화되어 특유의 맛이 생긴다. 그렇지만 꼭 익힌 김치만 맛있는 것은 아니다. 생김치나 겉절이도 그대로의 맛이 있다. 와인도 어느 정도 숙성기간을 거쳐야 이스트 냄새가 사라지고 떫은맛도 부드러워지면서 제 맛이 나지만, 생김치나 겉절이와 같이 와인도 그 해 담가서 그 해가 가기 전에 소비하는 타입이 있다.
생김치를 좋아하는 사람, 적당히 익은 것을 좋아하는 사람, 시큼한 김치를 즐기는 사람 그리고 묵은내를 최고로 치는 사람이 있듯이, 와인도 마시다 보면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타입이 따로 있기 마련이다. 그러면서 때에 따라 변하는 자기 입맛에 맞추어 와인을 선택하는 것도 식도락의 즐거움이 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와인에 대해 잘 이해가 되지 않으면 김치를 생각해 보면 답이 나올 수 있다. 김치는 어느 정도 숙성기간이 필요한데 이 기간이 너무 길어도 좋지 않다. 자기 입맛에 가장 적합하다고 느낄 때 꺼내서 먹는다. 와인도 어느 정도 숙성을 시키다가 최상의 품질을 갖출 때 병에 담아 내놓는다. 와인이나 김치 모두 식품으로서 그 수명에 한계가 있는 것이다. 또 와인이나 김치는 보관을 잘 해야 제 맛을 낼 수 있다. 특히 낮고 일정한 온도에서 보관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우리는 김장독을 땅에 파묻고, 서양에서는 와인을 동굴에서 보관한 것이다. 다만 와인의 수명은 김치에 비해서 상당히 길다는 차이만 있을 뿐이다.
 
와인 문화

김치는 수천 년 동안 조상 대대로 우리 입맛에 길들여 온 것이다. 이 오묘한 맛을 어찌 외국 사람이 짧은 시간에 제대로 감지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와인을 대하는 우리의 입장도 마찬가지다. 외국 사람이 김치의 맛을 알기까지는 쌀밥이나 된장국 맛도 알아야 하고, 젓가락도 사용할 줄 알아야 함은 물론, 우리 역사나 문화까지 어느 정도 이해해야 하듯이, 우리가 와인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서양 요리는 물론 그 역사적, 문화적 배경에 대한 이해도 따라야 한다. 결국 다른 나라의 유서 깊은 술이 들어왔다는 것은 그만큼 그쪽 문화를 수용한다는 의미도 된다.

 
 

김준철 김준철와인스쿨 원장

고려대 농화학과 졸업
고려대 대학원 식품공학과(농학석사)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와인양조학과 수료
동아제약 효소과 및 연구소 근무
수석농산 와인메이커
서울와인스쿨 원장
한국와인아카데미 원장
한국와인협회 및 (사)와인생산협회 부회장
2007 제1회 대한민국 주류 품평회 심사위원(국세청장)
2009 주류품질인증제품심사위원(국세청장)
2009 한국 전통주 품평회 심사위원(농촌진흥청 국립과학원장)

<식품저널 2011년 2월호 게재>

☞ 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식품저널 foodnews를 만나세요. 구독하기 클릭

저작권자 © 식품저널 foodnews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