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가지 다양한 먹을거리 가운에 따로 유기농 식품(organic food)이라고 부르는 것이 있다. 이 말은 이제 하나의 유행어 혹은 지체 높은 신분이 되었지만, 불과 수 십 년 전만 해도 소외당하던 용어였다. 식량자급과 증산을 국가적 과제로 추진하던 시대가 있었다. 그 때에는 유기농이란 불온하고 불순한 것으로 취급되었다.

그런데 이제는 유기농 아니면 안 되는 것 같은 조류가 넘치고 있다. 흙을 지키고, 자연 생태계를 살린다는 관점에서 볼 때,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과연 한국에서 유기농 혹은 유기농 식품은 어떻게 가능할까? 이에 대한 답변과 장기적 전략을 차분히 생각하지 않은 채, 유기농을 하나의 유행이나, 바람처럼 바라보는 것은 유기농과 식품산업 모두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다.     


한국의 유기 농업의 현 주소를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농림부가 지난 1월에 입법예고한 친환경농업육성법 시행규칙 개정안이다. 아시다시피, 한국의 축산은 미국의 유전자 변형 옥수수 사료가 없으면 유지될 수 없다. 그런데 코덱스(Codex)의 유기농 기준을 맞추려면, 유전자 변형 사료를 먹인 가축의 똥을 거름으로 쓰면 안 된다. 코덱스의 <유기농 식품(organically produced foods) 생산ㆍ가공ㆍ표지ㆍ마케팅 가이드라인(GL 32-1999, Rev. 1-2001)>은  유기농으로 생산한 사료가 아닌 ‘공장형 농업’에서 나온 사료로 가축을 먹여 나오는 축분을 유기농에서 사용금지하고 있다.(Annex 2, Table 1) 여기서 공장형 농업(factory farming)이란 유기농업에서는 인정되지 않은 동물약품이나 사료에 주로 의존하는 농업을 의미한다.

무슨 말이냐면, 지금의 한국 축산 구조가 변하지 않는 한, 한국에서는 본격적인 유기농업이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바로 이러한 고민에서, 농림부는 2001년에 유기농 기준을 마련하면서 일시적 예외를 단서로 달았다. 당시 친환경농업육성법 시행규칙은 ‘공장형 농장’에서 생산되는 축분비료는 2004년 12월 31일까지만 사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제9조 별표 3)    

 

이 때만 해도, 농림수산부는 2005년부터는 코덱스 기준에 맞는 명실상부한 유기농산물 생산을 지향하였다. 그러나 한국 축산 방식의 개혁은 성취되지 못하였다. 유기축산은 농림부의 계획대로 성장하지 못했다. 결국 농림수산부는 올 1월에 사실상 위의 임시적 예외를 아예 합법화하는 시행규칙을 입법예고하였다. 이번에 예고된 내용의 핵심은 ‘공장형 농장’에서 생산되는 축분 사용 금지 조항을 아예 폐지한 것이다. 대신 사실상, 코덱스에서 금지되는 공장형 농장의 축분이라도, 이를 충분히 퇴비화시켜 항생물질이 포함되지 않고 중금속 함량이 공정규격의 2분의 1을 초과하지 않으면 유기농업에 사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우리는 여기서 두 갈래의 길 앞에서 고민할 수 밖에 없는 한국을 보게 된다.  미국의 유전자 변형 옥수수 사료를 먹이는 한국 축산의 현실을 인정하여 ‘한국적’ 유기농으로 갈 것인가? 아니면 코덱스 기준이라는 국제 규범에 맞도록 보다 더 지속적으로 한국의 축산을 바꾸며 노력해 갈 것인가? 농림부의 이 번 입법예고는 전자를 선택한 것이다.


이처럼 한국에서 본격적인 의미의 유기농, 코덱스 수준의 유기농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이는 식품산업에도 마찬가지이다. 해외에서 매우 관심이 높은 한국 음식, 특히 한국 김치의 경우를 보자. 어느 식품회사가 유기농 김치를 생산하여 해외에 판매한다고 하자. 이럴 경우 세계 공통적으로 인정되는 코덱스 유기농 기준을 맞추는 것이 마켓팅에 유익하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유기농 기준이 코덱스에 미치지 못하면 어떠한 일이 생길까? 아무리 한국에서 유기농 김치로 인정을 받더라도, 유럽 시장에서는 유기농으로 평가받지 못하는 상황을 맞을 수 있다.     

그런데 농림부의 입법예고에는 또 하나의 중요한 내용이 있다. 유전자 변형 농산물(GMO) 문제이다. 그동안 농림부의 기준으로는 유전자 변형 농산물 또는 여기에서 유래한 사료를 먹이는 고기는 유기축산물로 인증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농림부는 이번에 이 조항에 단서를 집어넣어,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장이 정한 범위 내에서 비의도적인 혼입은 인정될 수 있다는 예외를 두기로 하였다.(제 9조 별표 3)


이 조항의 의미를 설명하면, 비록 유전자 변형 농산물로 된 사료를 소에게 먹인 경우라도 의도적으로 먹인 경우가 아니면, 일정 비율, 예컨대 3% 범위 내에서는 괜찮다는 것이다.  

이는 실로 놀라운 변화이며, 엄청난 영향을 주는 내용이다. 앞에서 본 코덱스의 유기농 식품 기준은 GMO에서 생산된 어떠한 물질이나 제품도 유기농의 원칙에 부합하지 않으며 유기식품으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규정했다.(1.5조) 이는 호주의 유기농 기준도 마찬가지이다. 호주는 GMO에 노출된 생산물을 유기농산물로 판매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결국 한국의 유기농 기준은 공장형 축분과 유전자변형농산물 두 가지의 결정적 기준에서 코덱스로부터 멀어지는 상황을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우리 식품 산업에 과연 이로울까? 한국 농업의 현실에서 어쩔 수 없다는 현실론도 가능하다. 유기농 인정 기준이 더 넓어졌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견해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소비자이다.

유기농이라는 트렌드는 과학적 논거 그 이전에 문화적이며 사회 심리적 결과물이다. 소비자는 왜 상대적으로 더 비싼 가격을 지불하고 유기농을 소비할까? 필자는 소비자들이 유기농이 일반 식품보다 직접적으로 건강에 더 이바지한다는 엄밀한 과학적 데이터를 보았기 때문에 유기농을 선택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유기농이 몸에 더 좋을 것이라는 기대는 있다. 그러나 더 궁극적으로 소비자는 유기농을 소비함으로써, 단순한 식품의 구매 행위를 넘어, 자신의 선택이 흙과 농업과 자연 환경의 보존에 이바지하기를 바란다. 유기농의 소비는 일반 식품의 소비와는 무엇인가 다르다는 문화적 요소가 있는 것이다.


만일 유기농은 유기농답지 않다는 판단을 소비자 할 경우, 소비자의 유기농 선호는 지속되지 않는다. 만일 소비자가 한국의 유기농은 코덱스 기준으로는 유기농이 아닐 수 있다고 여긴다면, 한국의 유기농 시장은 어떻게 될까?

농림부의 유기농 인증 기준 변경은 결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이는 한국의 유기농 산업에 커다란 영향을 줄 중요한 변화이다. 아무리 한국의 농업 현실이 척박하다 하더라도, 유기농의 표준 자체를 국제 기준보다 저급하게 낮추는 것은 장기적으로는 한국의 식품산업과 농업에 이롭지 않다. 식품산업계가 이 문제를 유기농업계 혹은 일반식품업계 여부를 떠나, 한국의 전체 식품산업의 발전이라는 대승적 관점에서 바라보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농림부가  입법예고에 들어온 여러 의견을 수렴하여, 입법예고 사항을 철회하여 미래에 유익한 결정을 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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