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법예고의 식품법
 
식품법에 전문적 관심을 가지고 있는 변호사로서, 빼놓지 않고 챙겨야 할 것의 하나가 바로 입법예고와 같은 입법 절차이다. 어떤 법령이 제정되거나 혹은 개정된 후에 그 내용을 소개하고 해석론을 전개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식품산업과 소비자에게 더 유익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입법 단계에서 필요한 지적과 문제제기를 할 필요가 있다.  

최근 한국 식품법에서 주목할 만한 제도 변경이 잇따르고 있다. 예를 들면, ‘식품 등의 표시 기준’이 올해 9월에 개정된 결과, 내년 12월부터는 포화지방 트랜스지방 및 콜레스테롤 영양 성분 표시가 의무화된다. 소비자들은 이 새로운 표시 사항에 민감히 반응할 것이고, 식품산업은 큰 영향을 받을 것이다.

또 다른 예를 든다면 현재 식품위생법 시행령과 그 시행규칙 개정안에 대한 입법 절차가 진행 중이다. 그 결과가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쇠고기 원산지 표시제의 구체적 적용 대상이 달라진다. 또한, 농산물과 일반 식품의 ‘유용성’표시가 과연 어느 정도로 허용될 것인지 그 밑그림이 나온다. 이미 지난 7월에 입법 예고 기간은 종료하였고, 지금은 법제처 심사 등 본격적 입법 절차가 진행 중에 있다.

필자의 경험으로는, 식품법의 입법 과정에서 식품산업과 소비자의 의견과 이해관계가 좀 더 활발하게 반영되었다면, 입법의 목적 달성에 더 도움이 되었을 경우가 적지 않았다. 결국 입법예고 기간을 좀 더 길게 잡을 필요가 있다. 그리고 입법 예고 사실을 이해관계자에게 미리 알려주는 시스템을 좀 더 보강하는 것이 좋겠다.  
 
학교급식법령 입법 예고
 
그런데, 10월 현재 아직 입법 예고 중인 것으로 학교급식법 시행령과 시행규칙 개정안이 있다. 이 또한 위탁급식 및 캐터링 산업에 큰 영향을 줄 것이다. 그런데 이 개정안들은 필자가 식품저널 2006년 10월호에서 제기한 식생활 교육에서의 영양교사제도의 성공과 관련하여 주목할 만한 내용이 들어 있다.  

필자는 지난 호에서, 한국의 푸드 시스템의 신뢰 회복을 위한 소비자의 적극적 역할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이른바 ‘100% 안전’이라는 불가능한 신화가 만연되지 않도록 소비자에 대한 바른 식생활 교육이 매우 절실하다고 기고하였다. 그리고 학교급식이라고 하는 중요한 식교육(食敎育)을 담당할 영양교사의 적극적 역할에 주목하자고 하였다. 
  
하지만, 이번에 입법 예고된 학교급식법 시행령 개정안은 필자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입법 예고된 영양교사의 업무 규정(시행령 개정안 제 8조)을 보면, 도대체 영양교사를 의무 배치한 까닭을 알 수 없게 되어 있다. 무슨 말이냐 하면, 그 의무적 배치가 규정되기 전과 비교해 볼 때, 영양교사의 업무가 달라진 것이 없다. 전과 마찬가지로 영양교사의 첫째가는 업무가 다름 아닌 ‘식단 작성’으로 되어 있다.

한국사회가 학교 영양사의 사회적 신분을 ‘교사’로 상승시킨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영양교사로서 적극적으로 학생에 대한 식생활 교육을 감당하라는 것이다. 비교  법적으로 볼 때, 학교 급식을 실시하는 의무 교육 학교마다 영양 ‘교사’를 의무적으로 배치하도록 한 입법례는 다른 나라의 경우 찾기 어렵다. ‘영양교유(榮養敎諭)’라는 이름으로  영양교사제를 마련한 일본 학교급식법도 모든 학교에 영양교사 배치를 의무화하지 않고 있다.(일본 학교급식법 제 5조의 3) 일본의 경우 학교에 영양 ‘교사’를 배치할 것인지, 아니면 영양사라는 직원을 배치할 것인지는 지방자치단체와 학교의 판단에 달려 있다.

더욱이 일본은 영양교사를 배치할 경우 그 공익적 직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명확히 정하고 있다.(일본 문부성) ‘식(食)에 관한 지도와 급식 관리를 통일적으로 수행함으로써, 지역에서 생산한 농산물을 활용하여 급식과 식을 관한 지도를 실시하는 등, 교육상의 높은 상승효과를 거둔다.’이에 의하면 영양교사의 첫째가는 업무 범주는 ‘식에 관한 학생 지도’이다. 결코 식단 작성이 아니다. 일본 영양교사의 첫째 업무 범주를 좀 더 구체적으로 보면,  비만, 편식, 음식 알레르기 등 학생 아동에 대한 개별 지도 수행이 첫 번째 항목이다.

그리고 학급 활동, 교과, 학교 행사 등의 시간에 학급 담당 등과 연계하여 단체 식생활에 관한 지도를 수행하는 것이 두 번째 사항이다. 그리고 다른 교직원의 가정과 지역과 연계하여 식에 관한 지도를 추진하기 위한 연락과 조정역할이 세 번째 내용이다. 이처럼 일본의 경우 학교에 영양 교사를 둘 경우 그 일차적 직무 범주는 어디까지나 학생 지도이다. 학교 급식의 관리는 그 다음의 두 번째 업무 범주이다. 여기에는 영양관리, 위생관리, 검식, 물자 관리 등이 있다.         

그러나 한국의 학교급식법령의 규정은 앞뒤가 바뀌어 있다. 일본과 달리 영양교사제를 모든 급식 학교에 의무 배치하도록 규정해 놓고도, 막상 그 업무로 ‘교사’로서의 역할을 적극적이며 중심적인 것으로 부여하지 않고 있다. 이런 체제라면 새 학교 급식제도는 종래의 영양사의 신분을 교사로 만드는 것 외에 달라진 것이 없다.

그러므로 입법 예고된 영양교사 업무 규정은 옳지 않다. 영양교사를 배치하기로 한 이상, 이들이 적극적으로 학생에 대한 개별적 식교육을 담당하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이 범주를 업무 규정의 첫째가는 사항으로 규정해야 한다. 이러한 식교육을 위한 구체적이고 자세한 업무 규정이 마련되어야 한다. 대신 학교급식에서 실제로 조리를 담당하는 조리사들의 역할을 보장해 주어야 한다. 우리의 아이들이 먹는 학교 급식의 맛은 좋은 식재료와 조리사들의 손에 달려 있다. 바로 이 점에서 새 학교급식법은 식재료의 기준을 마련하였고, 조리사의 배치 규정을 신설하였다.(제 7조 , 제 10조)

그러함에도 입법 예고된 학교급식법 시행령은 앞에서 본 영양교사의 업무 규정만을 두었을 뿐, 조리사의 직무 규정에 대해서는 아예 침묵하고 있다. 매우 놀라운 일이다. 학교급식법 시행령에서 조리사의 직무 규정을 두는 것이 학교급식법의 조리사 배치 규정 신설 취지에 맞다. 맛을 담당하는 조리사와 조리 종사원들이 학교급식 현장에서 제대로 된 대우를 받을 때, 맛있는 학교 급식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영양교사의 적극적 식생활 지도와 연계되어, 학생들의 바른 식생활이라는 학교 급식의 목적이 실현될 것이다.       
 
일반 식품의 ‘유용성’ 표시 허용
 
서두에서 일부 소개하였지만, 식품위생법 시행규칙 입법예고 안은 일반 식품의 유용성 표시, 예를 들면 ‘건강 증진’, ‘식이 요법’, ‘환자에 대한 영양 보조’와 같은 표현을 일부 허용하였다. 하지만 필자가 식품저널 2006년 8월호에서 지적한 대로, 위 입법 예고안은 외식산업에 대해서는 허위표시와 과대광고 적용대상에서 제외시켜 준 대신, 여전히 일반식품에 대해서는 적용 대상으로 삼고 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식당에서 조리하여 판매하는 식품의 표시 광고에서는 허위표시와 과대광고 금지 규정을 적용하지 않기로 하면서도, 일반 식품에 대해서는 여전히 그 규정을 적용한다는 것이다.

필자는 본지의 첫 연재에서 현행 건강기능식품제도에서의 기능성 개념이 너무 넓어 일반 식품의 본래의 유용성과 건강기능성의 표시 광고가 제약되는 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 (식품저널 2006년 3월호) 이런 필자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일반식품의 유용성 표시를 일부 허용한 입법예고 안은 아직 충분하지 않다. 소비자들은 갈수록 식품이 건강에 미치는 중요성을 깨닫고 있다. 이러한 추세를 잘 살리는 것이 전체 식품산업의 발전에 매우 긴요하다. 그러므로 입법 예고된 안보다 더 진일보한 내용으로 입법이 되기를 기대한다. 일반 식품의 여러 기능성 표시를 더욱 넓게 허용하는 식품법이 한국의 푸드 시스템에 필요하다. 사법부가 판결문에서 표현하였듯이, 소비자들은 식품과 약품을 쉽게 혼동하지 않는다. 약품과의 혼동 방지를 강조하는 것은 항상 소비자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지나치게 제약 산업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일 수 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새로운 식품법이 입법 예고되고 있을 지도 모른다. 입법 예고가 하나의 형식적 통과 의례에 그치지 않고, 식품산업과 소비자들이 적극적인 참여 속에, 식품산업의 발전과 소비자의 보호에 이바지하는 제도로 발전하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이를 위한 입법예고 제도의 개선을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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