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산업의 FTA 통상정책
 
국제 계약에서 일하는 변호사들은 ‘악마는 각론에 숨어 있다(Devil is in the detail)’는 격언을 늘 염두에 두고 있다. 각론이 승부처이기 때문이다. 총론은 근사하고, 화려하기조차 하다. 1994년의 세계무역기구 설립협정문(Agreement establishing the World Trade Organization)의 서문에는 완전 고용(full employment)이라는 단어까지 나온다. 그러나 이러한 미사여구를 찾느라, 우루과이라운드 협상(UR)이 두 차례나 시한을 어기면서 7년이 넘게 걸린 것이 아니다. 문제는 각론이다. 이미 정점을 향해 치닫고 있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서 식품분야의 각론이 어떻게 되어야 한국의 식품산업에 유익할 것인가?  
 
미국의 식품산업은 FTA를 어떻게 설계하는가?
 
캘빈 둘리(Calvin Dooley)는 미국식품협회(FPA;Food Products Association)의 회장이다. 부시 대통령은 2004년 겨울, 둘리를 통상정책·협상자문위원회(ACTPN; Advisory Committee for Trade Policy and Negotiation)의 위원으로 임명했다. 이 위원회는 미국 통상법(Trade act of 1974, 제 2155조)에 따라 법제화된 필수 기구이다. 둘리는 다른 위원들과 함께, 대통령에게 통상정책 전반에 대하여 자문을 할 법적 권리와 의무가 있다. 둘리는 대통령의 통상협상권한(TPA) 연장의 필요성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할 권한이 있다. 그리고 둘리는 미국이 추진하는 자유무엽협정(FTA)의 내용에 대한 평가보고서를 작성하여 대통령과 의회에 제출해야 한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둘리가 위원으로 활동하는 데에 필요한 인력과 정보를 둘리에게 제공하지 않으면 안 된다.(제 2155(b)(3)조) 

캐더린 카포니(Catherine A. Caponi)는  미국의 세계적 식품회사인 하인즈( H.J. Heinz)사의 피츠버그 본사에서 미국의 식품정책 담당 부회장을 맡고 있다. 그녀는 미국 통상법에서 법제화된 위원회인 ‘세부 농업분야 통상자문위원회 가공식품 분과(Agricultural Technical Advisory Committees for Trade (ATACs) in  Processed Foods)’라는 긴 이름을 가진 위원회의 위원으로 임명되었다. 이 ATACs에는 이 분과를 포함하여 축산분과, 곡물분과, 채소과일분과, 설탕분과, 면화분과 등 모두 6개의 분과가 있다.

물론 농업통상자문위원회(Agricultural Policy Advisory Committee for Trade ;APAC)라는 좀 더 포괄적인 기구는 따로 법제화되어 있다. 어쨌든 카포니는 미국 무역대표부(USTR)에게 가공식품 분야의 국제 협상의 목적과 협상 전략에 대하여 조언을 할 법률적 권리가 있다. 그리고 그녀는 미국의 새 통상법(Trade Act of 2002)에 의하여, 미국이 추진하는 모든 FTA의 가공 식품 분야에 대한 평가보고서를 작성하여 미국 무역대표부와 미국 의회에 제출할 권리가 있다.

이처럼, 미국의 식품업계는 법적으로 보장된 여러 제도를 활용하여, FTA의 내용을 평가하고, 그 방향에 관여한다. FTA를 미국 정부와 같이 설계할 권리가 보장되어 있는 것이다.
 
한미 FTA 설계에 식품산업은 참여하고 있는가?
 
반면, 한국의 식품산업에게는 그러한 법률적 권한이 없다.  현재 정부는 한미FTA추진 과정에서 ‘전문가 자문단’을 운영하고 있다. 이 자문단은 제조업·농수산 분야 55명, 서비스 분야 72명, 전자상거래 · 지적소유권 등의 일반 분야 90명을 포함하여 모두 213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전문가 자문단의 설치는 법률상 근거가 없다. 따라서 자문단은 아무런 법적 권한이 없다.

그런데 과연 여기에라도 한국의 식품산업의 참여가 보장되었는가? 213명 의 자문단 가운데, 식품과 관련된 사람은 위생검역분야 전문가로 식품영양학과 교수 한 명, 농수산물분야 전문가로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 한 명이 있을 뿐이다. 국내의 내노라고 하는 식품회사들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다만 어느 한 식품회사의 제약파트 임원이 의료서비스 분야의 전문가 자문단으로 참여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사실상 국내 식품산업의 이익을 직접적으로 대변하고, 정부와 같이 식품분야를 설계할 통로가 없는 셈이다.   
 
식품산업에 미칠 한미FTA의 민감 변수들
 
필자가 우려하는 것은 한미FTA에 내재하여 있는 민감한 변수들에 대하여 식품업계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할 가능성이다. 예컨대 식품산업의 중요한 트렌드인 유기농 식품문제를 보자. 유기농 시장은 막연한 낙관보다는 성장의 속도나 한계에 대한 치밀한 분석이 필요한 분야이다. 그리고 소비자의 신뢰와 선택이 다른 일반식품 분야보다도 더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유기농산물과 유기식품에 대한 인증제도가 큰 의미를 갖는 시장이다. 한국은 현재 ‘친환경농업육성에관한법률’을 통하여 유기농산물 인증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현재의 식품위생법령상의 유기식품 표시제도를 인증제도로 발전시키려고 준비하고 있다.

그런데 ‘식품저널’2006년 6월호에서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의 이중근, 김수웅 연구원도 같은 내용으로 지적한 대로, 미국은 그동안 여러 경로를 통하여 비의도적으로 혼입된 유전자변형농산물(GMO)이 전체 원료의 3%이내인 경우에는 유기농 식품으로 간주하라는 요구를 하고 있다. 과연 이는 한국의 유기농 식품업계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까?

필자가 보기에는 한국 유기농 식품에 대한 소비자의 신뢰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코덱스 기준에서도 유기농산물은 유전자변형농산물과 양립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한미FTA로 인하여 유기농 식품인증에서 GMO 혼입이 인정한다면, 유기농 식품과 일반 식품의 차이에 대한 소비자의 인식과 신뢰에 혼란이 조성될 수 있다. 이는 시장의 크기 자체를 위축시킬 수 있다. 이러한 민감한 변수에 대한 국내 유기농 식품업계의 대응이 필요하다. 
 
미국의 식약청·특허청 연계 요구
 
미국이 요구하는 식약청·특허청 연계 요구는 아직은 그 대상이 의약품분야이다. 미국은 미국 제약회사의 특허권을 침해한 의약품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식약청이 판매허가를 해 주고 있다며, 아예 한국 식약청의 판매허가 단계에서 특허권 위반여부를 일괄하여 조사하여 판매허가 자체를 금지하여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 문제는 결국 식품분야로도 확산될 것이다.

그런데 미국의 요구는 타당한가? 물론 특허권은 보호되어야 한다. 하지만 한국의 식약청은 특허문제를 다룰 법적 권한과 경험이 없는 기관이다. 현행 특허법상의 특허 심사를 거쳐 유효하게 등록된 특허권에 대해서도 무효심판이 제기되어 무효가 된 특허권이 2002년을 기준으로 무효심판제기 건수의 36%나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의 식약청이 특허권자가 제출한 정보만을 근거로 하여 의약품이나 식품의 판매 허가 여부를 결정하도록 한다는 것은 법적 안정성을 해칠 염려가 있다. 특허권은 보호되어야 한다. 그러나 만일 다른 사람의 의약품이나 식품으로 인하여 자신의 특허권이 침해될 것으로 우려된다면, 특허권자는 사전적 예방조치를 법원에 청구하여 법원의 판결을 구할 수 있다.

이와 별도로, 아예 식약청이 사전적인 판매 허가 단계에서부터 특허권과 연계하여 허가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특허권자의 보호에 너무 치중하는 것이다. 그리고 국내 식품산업의 신제품 개발에 장애가 될 소지가 있다. 이 점에 대해서도 한국의 식품산업의 관심이 필요하다.
 
미국의 한국산 축산물과 축산식품 수입 금지 문제    
 
 미국은 현재 미국에 육류, 가금류, 달걀 및 관련 식품을 수출할 수 있는 외국의 축산물 처리 시설 지정 제도(Eligible Foreign Establishment)를 운영하고 있다. 현재 홍콩, 일본, 멕시코, 아르헨티나 등을 포함한 모두 33개의 나라가 미국에 축산물을 수출할 자격을 부여받고 있다. 반면, 여기에 대한민국은 제외되어 있다. 외교통상부의 2005년 판 ‘외국의 통상환경’은 이 점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한국은 고기류, 가금류 식품의 수출국가로 승인되어 있지 않으므로 원칙적으로 한국산 고기류, 가금류 식품의 수입은 금지된다. 예외적으로 소량의 고기류, 가금류를 함유하고 Soup의 기본재료로 사용되며, 기타 소량 함유 제품에 한해 일정한 질병구제 조치를 취한 경우에만 수입이 허용된다.”(563면)

소비자의 식품선택이 기본적으로 매우 보수적인 특징을 고려할 때, 미국 시장 자체에 대한 진입이 차단될 경우, 미국 소비자의 입맛을 길들일 방법은 없다. 그러므로 이 문제에 대한 한국 식품업계의 대응이 필요하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의 양면성
  
마지막으로, 미국산 쇠고기 수입문제가 있다. 한미FTA와 맞물려, 미국산 쇠고기가 다시 수입되고 현행 30%의 수입관세율도 결국 폐지될 것이다. 이럴 경우 소비자의 선택이 확대되고 후생이 증가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문제는 결코 단순한 문제는 아니다. 만일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인간광우병(vCJD) 위생 검역에 허점이 드러날 경우 그 충격은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발병원인 물질인 프리온 단백질은 고기를 굽는 온도에서도 거의 파괴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쇠고기를 끓이거나 삶아 먹어도 사실상 vCJD를 예방할 수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만일 이 병의 발생이 국내에서 확인될 경우 한국의 쇠고기 관련 산업은 총체적 타격을 받을 것이다. 그러므로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미국산 쇠고기 수입 과정에 대한 철저한 점검과 안전대책이 필요하다. 전염병예방법에 ‘인수공통 전염병’의 의미를 정의하는 조항이 전염병예방법에 처음 들어간 때가 겨우 작년 7월이었다. 더 늦지 않게, 인수공통 전염병 지정고시 등 충분한 안전대책을 정부가 강구할 필요가 있다.

이미 한미FTA는 정점을 향해 치닫고 있다. 한국의 식품산업에 중요한 영향을 줄 민감한 변수들이 논의되고 있다. 이에 대한 우리 식품산업의 관심이  절실한 때이다. 그리고 식품산업계가 한미FTA 진행 과정에 참여하는 제도적 통로의 마련도 중요하다. 한국의 식품산업계가 미국의 캘빈 둘리나 캐더린 카포니와 같은 역할을 하는 대표자를 배출하기를 기대한다. 그래야 앞으로 한미FTA뿐만 아니라, WTO DDA 등 여러 통상협정의 각론에서 우리 식품산업의 이익이 존중될 것이다.   

☞ 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식품저널 foodnews를 만나세요. 구독하기 클릭

저작권자 © 식품저널 foodnews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